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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선수 경력/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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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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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의 국가대표 경력을 담은 문서.

2. 참가 대회

2.1. 2000 시드니 올림픽

파일:시드니올림픽 야구 동메달.jpg
맨 뒷줄 오른쪽 두번째에 있는 선수가 박경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2 7 2 2 0 0 1 1 .286 .444 .571 1.016 0 1 2 -
뛰어난 공격과 수비로 대한민국 대표 포수로 자리매김한 박경완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주전포수로 선발되었다.

야구 대표팀의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2회초, 박경완은 2루타를 쳐서 나갔고, 후속타자 김기태가 희생플라이를 치며 박경완은 홈 인, 선취득점을 따 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3회초, 박경완은 또 다시 2루타를 치며 김동주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적시 2루타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 득점과 타점을 함께 적립한다.
경기도 10:2로 대한민국의 승리. 야구 대표팀의 두번째 경기인 호주전에서도 박경완은 선발로 출장 하였다. 그러나 8회초 2아웃 상황에서 박경완은 홈으로 들어오는 호주 대표팀 주자와 충돌하고 말았다. 박경완은 골반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앞으로의 대회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대회가 끝날 때 까지 백업포수로 선발됐던 홍성흔이 주전포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다행히 홍성흔은 주전포수의 역할을 무리 없이 잘 이행해 주었다.
경기는 5:3으로 대한민국의 패배. 그 뒤로 대표팀은 계속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결국 동메달을 따냄과 동시에, 한국 구기종목 최초 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대표팀은 동메달을 따냈지만, 박경완 개인으로써는 아쉬움이 조금 남을 법 한 대회.

2.2.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파일:박경완 아시아야구선수권.jpg
이와세에게 루킹삼진을 당한 뒤.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2 3 0 0 0 0 0 0 .000 .000 .000 .000 0 3 0 -

박경완은 2007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이 대회는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려있던 매우 중요한 대회였으며,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우승이 간절했다.

12월 1일, 대표팀이 치른 첫 경기인 대만전에 선발포수로 출전하여 선발투수였던 류현진과 호흡을 맞췄고, 경기 중반
조인성과 교체되었다.

류현진은 5회까지 2실점을 했으나, 류현진 다음으로 등판한 투수들인 박찬호, 장원삼, 정대현이 깔끔하게 막아내며 5:2 승리를 거두었고, 대표팀은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에 한 발 다가섰다.

바로 다음 날인 12월 2일, 대표팀이 치른 두 번째 경기인 일본전 8회말, 4:3으로 대한민국이 한 점 뒤져있는 2사 1,3루 찬스에서 이대형을 대신하여 대타로 투입되었으나, 이와세에게 루킹삼진을 당하며 힘없이 물러났고, 대표팀은 결국 찬스를 살리지 못한 채 일본에게 4:3 1점차 석패를 당했다.

그 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12월 3일에 열린 필리핀전 에서는 콜드게임승을 거두었으나, 일본에게 득실차에서 밀리며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었고, 대표팀은 다음해 3월에 열리는 대륙별 플레이오프를 노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2.3. 2009 WBC

파일:박경완 wbc.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9 23 2 0 0 0 0 1 .087 .192 .087 .279 0 8 3 -

2009년 시즌 시작 전,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 2회 WBC에 주전포수로 나가 고생하였다. 왼 손목 부상 상태로 타격에서는 전혀 기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상황. 김인식 감독은 이런 사정을 알고도 뽑았을 정도로 투수진의 안정에 기여하였다. 타격은 신경 안 쓸테니, 수비만이라도 어떻게 좀 해달라고 뽑았다고...[1] 대회에서 유독 큰 스윙으로 일관했었는데, 그게 손목 부상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그나마 손목 통증이 적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역시 수비력 하나 만큼은 최고였다.

이 때 윤석민과의 호흡이 최강이었는데, 준결승 베네수엘라전에서는 미국 해설자들도 감탄한 볼배합으로 한두달 훈련한 윤석민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2] 박경완이 기자들 앞에서도 "윤석민이 SK로 오면 내가 20승 만들어준다"라는 발언도 했을 정도였다.

2.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파일:박경완 광저우.jpg
양쪽 발목이 좋지 않아 시즌이 끝나고 바로 수술할 예정이었으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3] 은사였던 국가대표팀 조범현 감독을 위해 수술을 미루고 출전하여 공수에서 맹활약,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1] 당시 KBO 포수 젊은 자원이 강민호 빼면 암울했었다. 30이 넘는 진갑용과 조인성이 있었고, 실제로 진갑용은 바로 전년도 2008 베이징 올림픽 주전 멤버였지만, 김인식의 확고한 고집이었다. [2] 심지어 베네수엘라전에선 안타까지 쳐서 나갔다. 참고로 이 경기 전까지 박경완은 안타가 없었다! 그야말로 윤석민과 함께 둘이서 베네수엘라를 쳐바른 경기였다. [3] 강민호는 광저우 현장 덕아웃에서도 또 수비 못한다고 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