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흐얀마의 중심도시 바사 vaasa[핀] | vasa[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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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580><colcolor=#FFFFFF> 국가 |
[[핀란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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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포흐얀마 | ||||
면적 | 545.14km2 | ||||
인구 | 68,880명[A] | ||||
인구밀도 | 188.8명/km2[A] | ||||
지방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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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 UTC+02:00 (E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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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사는 핀란드 포흐얀마(Pohjanmaa)[5] 지역의 주도다.2. 역사
14세기 경 스웨덴인 선원들이 정착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1370년대에 가톨릭 교회가 세워졌으며, 1606년 10월 2일 스웨덴 국왕 칼 9세가 무스타사리(Mustasaari)[6]라는 마을을 세우고 1611년 자신의 왕가 이름인 바사(Vasa)로 도시 이름을 개칭했다. 해상 교통의 요지이자 선박 건조, 특히 타르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으며 1794년에는 핀란드 최초의 도서관이 세워졌다.나폴레옹 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핀란드 전쟁을 일으키면서 러시아 제국군의 침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809년 프레드릭스 조함으로 스웨덴이 러시아 제국에 핀란드를 할양하면서 러시아 제국 산하 핀란드 대공국이라는 괴뢰국에 속하게 되었다. 1852년 대화재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3년 뒤인 1855년 시를 복구하면서 스웨덴 문화의 영향력을 일소시키고자 당시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이름을 따 니콜라이스타드(Nikolajstad)[7]로 개칭되었다.
핀란드 내전 당시 남부 대부분을 빼앗겼던 백군의 임시수도 역할을 했다. 1930년대에 핀란드 민족주의가 강해지면서 기존의 스웨덴어 표기인 Vasa에서 핀란드어 표기인 Vaasa로 시 이름이 바뀌었다.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이 끝난 후 산업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인구와 사회
인구는 2021년 기준 67,631명. 해안 지대의 도시인 만큼 스웨덴어 사용 인구가 24.8%에 달한다. 스웨덴에서 건너온 스웨덴인도 제법 되는 편.4. 스포츠
[핀]
핀란드어
[스]
스웨덴어
[A]
2023년 9월 30일 기준
[A]
[5]
스웨덴어: 외스테르보텐(Österbotten)
[6]
스웨덴어로는 코르스홀름(Korsholm)
[7]
핀란드어로는 니콜라잉카우풍키(Nikolainkaupunki),
러시아어로는 니콜라이스타다(Николайстад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