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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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 유타 馬場 憂太 | Baba Yu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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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바바 유타 馬場 憂太 | Baba Yu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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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등록명 | 바바 | |
출생 | 1984년 1월 22일 ([age(1984-01-22)]세) | |
도쿄도 이타바시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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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건 | 176cm, 71kg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 FC 도쿄 (1999~2001) | |
소속팀 |
FC 도쿄 (2002~2007)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2008) 몬테디오 야마가타 (2008, 임대) 도쿄 베르디 (2009) 대전 시티즌 (2011~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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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은퇴한 남자 축구 선수이자 FC 도쿄의 유소년 코치2. 클럽 경력
2.1. J리그
바바 유타는 2002년 FC 도쿄에서 프로로 데뷔, 클럽의 유스 출신 1호 프로 진출 선수로서 데뷔 이래 J리그에서만 145경기를 소화했던 베테랑 미드필더 일본 국가대표에서도 U-17 대표팀부터 U-23 올림픽 대표팀까지 순차적으로 밟아오며 성장했던 기대주였으며, 한때는 하세베 마코토를 능가할 천재로 불리기도 했다.2007년까지 FC 도쿄에서 활약하다 2008년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로 이적하였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이후 세간의 기대에서 멀어졌다.
2010년부터는 유럽 진출을 노렸고, 2010년 12월 독일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입단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이에 낙담해 멍한 상태로 지낸던 와중인 2011년 4월경 공항에서 유상철 감독 측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대전 시티즌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으며 몸을 만들어갔다.[1]
2.2. 대전 시티즌
2011년 7월 유상철 감독이 부임 직후인 7월 29일 정식으로 대전 시티즌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거의 1년 6개월 가량을 무적 선수로 보냈던지라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으나, 10월 말부터 대전 시티즌 전술에 녹아들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2011시즌 종료 후, 박은호 등 기존의 대전 외국인 선수들이 모두 방출될 때에도 바바만은 잔류하여 2012시즌에도 대전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대전의 중원을 이끌며 분투하였으며, 유상철 감독에 의해 줄곧 공격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경기에 투입됐다.
특히 날카롭고 정확한 패스를 무기로 대전의 공수를 유연하게 연결하며 대전의 든든한 중원 사령관으로서 김형범과 함께 대전 선수단을 잘 다독이며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2013년 김인완 감독 체제로 새출발하는 대전과 재계약하는데 성공했지만 전반기에는 부상으로 큰 도움이 되질 못하였고, 후반기에는 김인완 감독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다시 폼이 올라올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시즌 중반 들어서 김인완 감독이 자신의 사생활에 있어 지나친 간섭을 하자 이에 불만을 가지면서 감독과 불화를 겪기 시작하였고,[2] 결국 감독과의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대전 선수단을 무단으로 이탈해 이후 대전에서 방출되었으며, 바로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3. 근황
대전 시티즌을 떠난 이후로는 선수 생활을 정리한 뒤 자신의 친정팀인 FC 도쿄의 유소년 지도자로 부임하며 지도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루피누스 축구 교실을 설립하며 주로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4. 여담
- 그의 동생인 바바 도루는 영화 배우다. 참조
- 2021년 유상철 감독이 사망하자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고,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유 감독은 한국말을 못하는 바바를 위해 일본인 스태프도 붙여줬고, 일어가 능통했던 탓에 일어로 바바의 영입 이유를 직접 말해줬었다고도 했다. 유 감독의 인간성이 팀의 잔류를 이끌었기에, 이 사람을 위해 경기에 나가고 이 사람을 위해 강등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으며, 여간해서는 화내지 않는 진짜 젠틀맨이었다고 회상했으며, 2017년까지 정기적으로 메시지 앱을 통해 대화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