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밀워키 벅스
1. 개요
밀워키 벅스의 1990년대-2000년대 초반 관련 내용임. 아래 문단에 기재된 내용은 밀워키 벅스 문서의 개정 제598판 '2.5. 빅3의 등장, 중흥기' 항목이며 과거 내용인 관계로 별도 분리함.2. 내용
1990년 오프시즌 때 프레시를 샌안토니오의 프랭크 브릭코스키랑 맞바꾸고, 정규시즌 도중에 피어스를 시애틀의 데일 엘리스랑 맞바꿔가며 48승 34패로 또 플옵에 갔지만 찰스 바클리의 필라델피아에게 3전 전패를 당했다. 1991-92 시즌 들어서 팀 내에 베테랑이 전무한 데다 드래프트에서 유능한 신인을 제대로 뽑지 못해 정규시즌에서 연패만 거듭하자, 해리스 단장은 팀 운영에 집중코자 지휘봉을 프랭크 햄블렌 코치에게 맡겼으며, 엘리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31승 51패로 추락했다. 1992년에 콜 구단주는 델 해리스 단장을 쫓아낸 후 LA 레이커스 감독이던 마이크 던리비 시니어를 새 감독으로 부르고 운영부사장 및 단장 자리도 주며 전권을 부여해줬다. 던리비 감독은 챔피언을 목표로 한 '8년 계획'을 천명한 후, 올 코트와 러닝 플레이 중심의 오펜스를 적용하고자 했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3번으로 리 메이베리를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제이 험프리스와 래리 크리스트코비악을 유타 재즈의 블루 에드워즈 및 에릭 머독이랑 맞바꿨으며, 7월에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및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삼각 트레이드를 벌여 데일 엘리스를 샌안으로 팔고 포틀랜드로부터 이집트인 선수 알라 압델나비를 샀다. 8월에는 레스터 코너를 올랜도 매직의 샘 빈센트하고 맞바꾸는 등 팀을 다시 짰다. 정규시즌 들어 모제스 말론이 부상을 당하는 등 어려움이 생겨 연패를 거듭했고, 1992년 12월에는 압델나비를 보스턴 셀틱스의 신인 존 배리랑, 1993년 3월에는 앨빈 로버트슨을 디트로이트의 노장 올랜도 울릿지랑 각각 맞바꿨음에도 28승 54패를 찍었다.1993년 오프시즌 때 팀은 로고 및 팀 색깔을 보라색 및 짙은 녹색으로 바꾸고, 드래프트에서 무명 대학 하트포드대 출신 빈 베이커를 전체 8번으로 뽑은 뒤 LA 클리퍼스의 켄 노먼을 FA로 영입했다. 머독과 신인 베이커가 최선을 다했지만 연패를 거듭했고, 1994년 1월 15일 앤써니 에이벤트를 올랜도 매직의 앤써니 쿡 및 동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 1995 드래프트 2라운드 픽 셋이랑 맞바꾸고, 2월 24일 프랭크 브릭코스키를 샬럿 호네츠의 마이크 그민스키 및 1997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이랑 맞바꾸는가 하면, 대니 쉐이즈도 LA 레이커스로 파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20승 62패를 찍었다.
1994년 드래프트에서 퍼듀대 출신의 '빅 독' 글렌 로빈슨을 전체 1번, 피츠버그대 출신 에릭 모블리를 18번으로 각각 뽑는 한편, 트레이드 시장에서 노먼을 애틀랜타 호크스의 로이 힌슨, 블루 에드워즈 및 데릭 스트롱을 보스턴 셀틱스의 에드 핑크니 및 러시아인 선수 안드레이 페티소프와 각각 맞바꿨다. 또한 워싱턴 불리츠의 마티 콘론, 뉴저지 네츠의 조니 뉴먼 등 3명을 FA로 영입해가며 팀을 고쳤다. 정규시즌에선 베테랑의 부재 상태에서 힌슨의 부상, 머독의 부진 등으로 9연패를 찍음에도 불구하고 34승 48패로 성적을 올렸다. 1995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1번으로 오하이오대 출신 게리 트렌트를, 43번으로 에릭 스노우를 각각 뽑았지만 포틀랜드의 8번 픽 숀 레스퍼트(미시건 주립대) 및 시애틀의 54번 픽 에우렐리우스 주카우스카스랑 각각 맞바꿨고,[1] 핑크니를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토론토 랩터스로 내보냈다. CBA 팀 쿼드 시티 썬더의 랜돌프 키즈를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 초반에 밥 맥캔을 워싱턴 불리츠의 케빈 덕워스랑 맞바꾸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뛰던 테리 커밍스를 다시 영입하기도 했지만, 덕워스는 여전히 부상에 시달려 25승 57패로 추락했다. 1996년 오프시즌 때 던리비 감독이 단장직에 전념코자 전 보스턴 셀틱스 감독 크리스 포드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조지아 공대 출신 스테판 마버리를 뽑았지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5번으로 뽑은 레이 앨런(코네티컷대)이랑 맞바꿔서 베이커, 로빈슨과 함께 3총사 진용을 만들었다. 트레이드 시장에선 뉴저지의 아몬 길리엄을 FA로 영입 후 콘론을 피닉스 선즈의 엘리엇 페리랑 맞바꾸는 등 팀을 다시 짜서 정규시즌 초기에 15승 11패로 순항하다가 1997년 초 들어 연패를 하면서 33승 49패로 5할조차 못 들었다.
1997년에 던리비 단장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감독으로 이직하자, 콜 구단주는 밥 웨인하워 코치를 단장으로 승진시킨 뒤 포드 감독을 유임시켰다. 웨인하워 단장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및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3각 트레이드를 벌여 빈 베이커를 시애틀로 팔고 셔먼 더글러스를 클블의 터렐 브랜든, 타이론 힐, 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 1장이랑 맞바꿔가며 가드 중심의 빠른 공격 템포로 바꾸려 했으나 36승 46패로 플옵에 못 갔다. 애초에 연고지 밀워키가 스몰마켓이라 2001년 플레이오프 전까지 전국구 중계권을 잘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1998년 오프시즌 때 콜 구단주는 포드 감독을 내친 후,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성공적으로 지휘했던 조지 칼을 감독으로 맞아들여 로빈슨-앨런-브랜든 3인방을 필두로 한 공격 농구를 선보이고자 했다.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독일인 선수 디르크 노비츠키, 19번으로 노트르담대 출신 팻 개리티를 각각 뽑았으나 댈러스 매버릭스가 6번으로 뽑은 '트랙터' 로버트 테일러(미시건대)랑 맞바꿨다. 또한 샬럿 호네츠에서 FA로 풀린 베테랑 델 커리도 영입했다. 정규시즌 도중이던 1999년 3월 11일, 트레이드 마감 목전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및 뉴저지 네츠와 3각 트레이드를 벌여 브랜든을 미네소타의 폴 그랜트, 페리를 뉴저지의 샘 카셀 및 크리스 개틀링과 각각 맞바꾼 후, 타이론 힐 및 제럴드 허니컷을 필라델피아의 팀 토마스 및 스캇 윌리엄스와 맞바꿔가며 28승 22패로 플옵에 다시 갔지만 인디애나에게 3전 전패를 당했다.
1999년 오프시즌 때 팀은 웨인하워 대신 전 뉴욕 닉스 단장 어니 그룬필드를 모셨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개틀링 및 길리엄을 올랜도 매직의 대니 매닝 및 데일 엘리스와 맞바꿨고, 스페인에서 뛰던 다빈 햄을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에서 빅3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42승 40패를 찍어 플옵에서 인디애나랑 또 맞붙었지만, 2승 3패로 탈락했다.
2000-01 시즌을 앞두고 드래프트에서 조지아 공대 출신 제이슨 콜리어를 15번, 오하이오 주립대 출신 마이클 레드를 43번으로 각각 뽑았지만, 콜리어는 휴스턴의 조엘 프리즈빌라 및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맞바꿔졌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빌리 오웬스를 디트로이트의 린지 헌터랑 맞바꿔서 정규시즌에선 빅3의 완성된 공격, 식스맨 팀 토마스와 린지 헌터의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1~2위를 다투어 지구 1위를 땄고, 플옵에서 올랜도 매직과 샬럿 호네츠를 차례로 꺾어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 올랐지만, 인사이드진의 득점력이 취약한 관계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끌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3승 4패로 지면서 아깝게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이 때 밀워키 선수들은 NBA 사무국이 흥행을 위해 필라델피아를 밀어주는 부커짓을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가 벌금 크리를 맞기도 했다.
2001-02 시즌을 앞두고 프론트라인 보강을 위해 마이애미 히트에서 FA로 풀린 앤서니 메이슨을 영입했으나, 앨런과 로빈슨, 카셀, 토마스, 레드 등 주 득점원 5인방이 부상으로 결장을 하는 등의 악재가 생겨 41승 41패로 5할을 찍었음에도 플옵에 나가지 못했다. 2002년 오프시즌 때 로빈슨이 애틀랜타 호크스의 토니 쿠코치, 레온 스미스,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맞바꿔지면서 빅3 체제에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메이슨은 조지 칼 감독 및 팀 동료들과 갈등이 심해 제 몫을 못했고, 정규시즌 때 카셀이 클블전 때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고 레드도 3점 슛에서 선두를 달렸으며, 2003년 2월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앨런을 로널드 머레이, 케빈 올리, 드래프트 픽 1장이랑 묶어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게리 페이튼 및 데스몬드 메이슨과 맞바꿔서 42승 42패로 플옵에 다시 나갔지만, 뉴저지 네츠에게 2승 4패로 굴러떨어졌다.
[1]
다만 주카우스카스는 고국 리투아니아 리그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