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1 18:58:25

므낫세 드 히어리제



1. 개요 및 가족2. 생애

1. 개요 및 가족

므낫세의 출생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예루살렘 왕국 전의 삶 또한 알려진 바 없다. 다만 1110년대에 태어났다고 추측만 할뿐이다. 므낫세는 히어리제(Hierges)와 부이용(Bouillon)[1]의 영주 헤리브랜드 3세 드 히어리제(Héribrand II de Hierges)와 호디에르나 드 레텔(Hodierna of Rethal)[2]의 아들이다. 아버리 헤리브랜드는 1차 십자군에 종사했고, 따라서 므낫세는 예루살렘 왕가인 플랑드르 가문, 레텔 가문과 인척관계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보두앵 2세는 그의 외삼촌이고 멜리장드는 외사촌이다. 그는 1150년 바리장 디벨린[3]의 미망인 헬비스 드 람라(Helvis de Ramla)와 결혼했다. 그 결과 므낫세는 왕실 친적들의 호의와 더불어 아내 헬비스의 영지인 람라, 미라벨, 전 남편의 아들이 가진 이벨린을 제외한 사실상 팔레스타인 남부 전체를 통치하게 되었다. 므낫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첫번째 아내와의 슬하에 두 딸 파디에(Fadie)와 호디에르네(Hodierne)이 있었다.

2. 생애

므낫세는 1140년 초 예루살렘 왕국에 도착하여 1143년 풀크가 사망하자 그의 사촌 멜리장드에 의해 왕국 최고위직인 예루살렘의 집정관으로 임명되었다. 1144년 에데사가 장기의 군대에 포위 당하자 예루살렘 군대를 총괄하여 출발했지만 에데사에 당도하기전에 함락되었다. 이후 에데사 백국의 멸망에 대응하여 2차 십자군이 1148년 예루살렘에 집결했다. 므낫세는 아크레 공의회에 참석했는데 예루살렘 왕국과 다마스쿠스의 동맹관계에 대하여 십자군에게 해명하지 못하고 결국 에데사나 장기왕조의 근거지인 알레포가 아닌 장기왕조와 혼인관계로 어그로가 끌렸던 다마스쿠스로 목표가 변경되는 촌극이 발생했다. 결과는 실패로 이어졌고 십자군은 덧없이 해산했다.

당대 역사가 기욤 드 티레의 저서 바다 너머에서 행해진 일의 역사(Historia rerum in partibus transmarinis gestarum)에서는 므낫세는 '매우 오만하게 행동했다. 그는 왕국의 장로들에게 무례하고 우월한 태도를 취했으며 적절한 존경심을 나타내기를 거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왕실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별안간 떨어진 낙하산으로 무능했다. 새로 얻은 권력으로 십자군 왕국의 건국자들 대다수를 적으로 만들었으며, 멜리장드에게 섭정 받던 5촌 조카 보두앵 3세를 정부 권력에서 도태시키고 모후 멜리장드와 멀어지게 하는 등 보두앵을 특히나 미워했다. 결국 최고 회의에서 보두앵은 왕국의 북쪽 아크레와 티레를 분리 통치하고 멜리장드가 왕국의 남쪽 전역인 예루살렘과 나블루스를 유지하게 되었다.

1152년 왕국은 보두앵이 완전한 권력 이양을 주장해서 내전으로 번졌다. 므낫세는 보두앵 3세에 맞서 멜리장드를 지원했다. 보두앵은 예루살렘의 집정관 토롱 드 험프리(Humphrey II de Toron)[4]를 위시로 므낫세의 본거지였던 미라벨 성채를 먼저 섬멸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멜리장드에게 항복을 강요하여 내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후 모후 멜리장드는 나블루스로 은퇴하고, 당숙 므낫세는 험프리 집정관에 의하여 왕국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온 므낫세는 세번째로 재혼 치니의 백작 알버트 1세(Albert I de Chiny)와 아그네스 드 바(Agnès de Bar)의 딸 알릭스 드 치니(Alix de Chiny)와 결혼하여 5명의 아들을 두었다.[5] 1176년 그는 브로그네 수도원(Brogne Abbey)에서 수도사로 서원했고, 1177년 1월 8일 중병에 걸려 그곳에서 죽었다.
[1] 예루살렘 왕국 건국 후 고드프루아의 부이용 유럽 영지를 승계했었다. [2] 보두앵 2세의 누이 [3] 발리앙 드 이벨린의 아버지이자 이벨린 가문의 시초 [4] 당시 내전 전에 합의로 인하여 므낫세가 토롱에게 집정관을 내줬었다. [5] 헤리브랜드 3세(히어리제의 영주), 헨리, 알버트 2세(히어리제와 베르됭의 영주), 루이스(베르됭의 세인트 반(Saint-Vanne) 수도사), 고티에(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