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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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맷 엘리엇 Matt Ellio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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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매튜 스티븐 엘리엇 Matthew Stephen Ellio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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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8년 1월 11일 ([age(1968-01-11)]세) | ||||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 런던주 원즈워스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1]|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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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91cm | ||||
직업 |
축구 선수 (
수비수[2]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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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
레서헤드 FC (?) FC 엡솜 앤 이웰 (1986~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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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
찰턴 애슬레틱 FC (1988~1989) 토키 유나이티드 FC (1989~1992) →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 (1992 / 임대)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 (1992~1993)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 (1993~1997) 레스터 시티 FC (1997~2004) → 입스위치 타운 FC (2004 / 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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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헤드네스포드 타운 FC (2008~2009 / 수석 코치) 오아비 타운 FC (2010 / 수석 코치) 스태포드 레인저스 (2010~2011 / 수석 코치) 스태포드 레인저스 (2011) 아미 유나이티드 (2013~2014) 레스터 시티 FC 유스 (2014~2015 / 코치) 드 몽포르 대학교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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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8경기 1골 ( 스코틀랜드 / 1997~2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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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기타 | 레스터 시티 FC 경기 해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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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선수.2. 클럽 경력
1988년, 찰턴 애슬레틱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후 1년만에 토키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후 1992년,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고 이듬해 완전이적에 성공하였다.2.1.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1년이 지난 후인 1993년, 약 22만 5천 유로로 당시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소속이었던 옥스퍼드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옮기게 되었다.
꾸준히 준수한 활약을 보인 덕에 은퇴 이후 옥스퍼드 유나이티드가 공식적으로 선정한 올 타임 드림팀에 뽑혔다.
2.2. 레스터 시티 FC
1997년 1월 1일,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적료는 €1.6M으로 당시 레스터 시티 영입 레코드와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의 방출 레코드를 모두 갈아엎은 금액이었다. 후술하겠지만 엘리엇은 자신을 데려오기 위한 마틴 오닐의 모습에 감동받아 레스터 시티로 오게 되었다.
엘리엇은 윔블던 FC와의 프리미어리그 24R 경기에서 레스터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는 에밀 헤스키의 결승골로 1:0 승리 이로부터 약 2주 뒤 뉴캐슬 원정을 떠나 팀의 1:1 균형을 맞추는 동점골로 레스터에서의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스티브 클라리지와 에밀 헤스키의 추가골이 있었지만 앨런 시어러에게 미친 해트트릭을 내주며 4:3 역전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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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은사, 마틴 오닐과 함께. |
그 중 1999-2000 시즌, 엘리엇은 워딩턴컵 결승전 트랜미어 로버스 FC와의 경기에서 전반 29분, 팀에게 리드를 안겨주는 헤더 선제골, 이후 동점골을 먹힌 후 후반 81분, 다시 한번 리드를 안겨주는 헤더골로 1년전 토트넘에게 지며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실패한 워딩턴컵 우승 트로피를 레스터의 품으로 가져오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결승전 MOM은 덤.
엘리엇은 오닐 감독의 신임 아래 레스터의 수비의 주축이자 주장으로써 개리 타가트, 스티브 구피 등의 선수들과 함께 크게 활약하며 약 300경기를 출전하였다.
이후 자신의 은사였던 마틴 오닐 감독이 셀틱 FC로 팀을 옮기면서 스티브 구피, 닐 레넌 등을 데려갔다. 오닐은 엘리엇 역시 데려가려 했으나 끝까지 팀에게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하였다.[3]
이후 몇 년간 주전으로 뛰었으나 한 차례 강등 이후 다시 올라온 03-04 시즌 경기에 뛰지 못하는 일이 늘었고, 잔여시즌 동안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소속의 입스위치 타운 FC로 임대를 떠났다.
그 다음 시즌인 04-05 시즌 EFL 챔피언십으로 강등된 레스터 시티에서 카디프 시티 FC와의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자신의 외할머니의 국적인 스코틀랜드 국가대표의 길을 선택하였다.1997년, 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A매치 명단에 발탁 되었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하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고 15분 가량을 뛰었다. 다음해 1998년,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첫 국가대표 선발출전의 기회를 가졌다. 팀은 아쉽게 1:0으로 석패했다. 이후 꾸준한 폼을 유지하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로 향하는 명단에 탑승했지만 0경기 출전에 그치며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마무리 하였다.[4]
4. 플레이 스타일
큰 키를 바탕으로 하는 제공권 장악 능력이 뛰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골 중에 헤더골도 상당 수 있다.또한 오른발킥 역시 괜찮은 편이라 PK 득점도 있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인 투쟁심 역시 높게 살 부분이다. 이마가 찢어지고 상대와의 경합 상황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이런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선수시절 카드를 많이 수집하였다.
또한 클러치 기질 역시 강했다. 자신의 골이 결승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트랜미어전 외에 96-97 시즌, 프리미어리그 31R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터진 극장골, 1999-2000 시즌, 워딩턴컵 4강 2차전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터진 헤더골이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풋볼 리그 디비전 3: 1992-93
- EFL컵 앨런 헤데커 트로피[5]: 2000
6. 여담
- 레스터 시티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했는데 당시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엘리엇에게 사우스햄튼과 레스터 시티에게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먼저 사우스햄튼의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을 만나러 갔는데 사우스햄튼의 회장과 풋볼 디렉터가 오지 않았고 이에 짜증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옥스퍼드로 돌아오는 길 M40의 주유소에서 레스터의 마틴 오닐 감독을 만났다고 한다. 당시 마틴 오닐은 경기가 끝난 후 스티브 월포트, 존 로버트슨 코치와 톰 스미튼 회장과 같이 있었다. 마틴 오닐은 엘리엇을 영입하기 위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에 반해 레스터 이적으로 마음을 굳히며 엘리엇과 오닐 감독, 그리고 레스터의 역사는 바뀌었다. 이러다보니 레스터와 오닐에 대한 충성심은 당연한 결과.
- 엘리엇의 레스터 시티에서의 위상은 레전드로 취급된다. 중요한 순간 터지는 득점, 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 은퇴 이후에도 레스터 시티 유스 코치, Foxes Hub[6]에 출연하면서 현재까지도 레스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