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9:20:23

만인보

1. 개요2. 각 권의 출간년도3. 평가

1. 개요

萬人譜

고은의 연작시집으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

만인보라는 말은 수없이 많은 사람(萬人)에 대해 적은 기록(譜)이라는 뜻이다.[1] 1986년부터 2010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30권에 시(詩) 총 4001수를 수록하여 발간했다. 2010년에 창비에서 완간을 기념해 출간 시기별로 합본해 총 11권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승만, 김구, 박정희, 선조 임금 등등 한국사의 역사적인 인물들부터 작가 본인의 가족, 친척, 어린 시절 이웃, 친구, 학교 선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평하여 시로 남겼는데,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5600여 명에 이른다.[2]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 및 유가족들을 다룬 시로,[3] 대단원을 장식하는 27~30권은 거의 대부분이 이들의 이야기이다. 역사 인물을 다룬 시도 있지만, 현대 인물은 작가 본인이 그를 직접 만난 경험을 서술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얽힌 인물들을 다룬 시가 상당히 많다. 그 중에는 고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반독재, 반미, 반자본주의, 민족주의 관점이 깊게 밴 시도 많으므로, 이 작품들을 읽는다면 작가의 성향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

시집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생각하다가 분량을 보고 당황할 수도 있다. 상술하였듯이 총 3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며, 한권 한권은 평균적인 두께지만, 2~3권을 묶어 낸 합본판이라면 한 권당 두께가 법전쯤 된다. 그래서인지 동네 소규모 도서관에는 책이 거의 없다.

2. 각 권의 출간년도

  • 1986년 1~3권
  • 1988년 4~6권
  • 1989년 7~9권
  • 1996년 10~12권
  • 1997년 13~15권
  • 2004년 16~20권
  • 2006년 21~23권
  • 2007년 24~26권
  • 2010년 27~30권

3. 평가

고은 서정주같이 악마의 재능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그 문인으로서의 명성조차도 전부 문학성이 아닌 정치력에 의해 쌓아올려진 것인지, 그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에 있다면[4]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순수문학과 거리가 먼 대중 입장에서 판단하기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당장 일부 평론가나 동료 시인들이, '고은의 성추행은 옹호받을 수 없지만 그 문학성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가 하면, 네티즌들 사이에선 '부족한 실력을 양으로만 때웠다.', '노가다 시집일 뿐이다.'와 같은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는 문학 분야가 기술이나 여타 학문들보다도 그 성취의 계량화가 더 어렵고 주관적인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신경숙 표절 사건과 맞물려[5] 한편으로는 오히려 더 개방적이고 공정해야 할 문학계가 대중에게 신뢰를 주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도 문학성은 있다.'는 문학계의 평가에 독자들을 포함한 대중은 쉽사리 수긍하지 못하는 것.

사실 이 작품에 대해 후한 평을 주기에는 꽤 망설여진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엮어낸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 맞지만 분량이 많다고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 않은가? 말하자면 히트곡이 없는데 앨범은 엄청나게 많이 낸 가수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대를 뛰어넘은 '좋은 시'들은 분명히 독자와 대중들의 입에서 살아남는다. 서정주가 친일행적과 독재찬양으로 그토록 비난받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어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김소월 황지우 기형도 등의 시 애송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아아, 님은 갔습니다와 같은 시구들은 한국인의 입에 그대로 담겨 있다. (시는 아니고 드라마 대본이지만) 노희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모의고사에 출제되었을 때 시험을 보던 학생들을 울려 버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좋은 문학 작품은 독자가 먼저 알아본다는 얘기.

그런데 과연 ≪만인보≫에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시가, 아니 시어 단 한 구절이라고 있는가 하면 답할 수가 없다. 그나마 알려진 게 ' 머슴 대길이'지만, 그마저도 시 자체가 뛰어나다기보다는 교과서에 실리는 등 그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것에 불과하다.

'예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해석에도 어폐가 있다. 고은은 문학인으로서 이미 누릴 만큼 다 누리고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은은 초야에 묻힌 예술가가 절대 아니었다. 생색내며 나서기를 좋아했고, 문단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다. 위의 가수 비유로 더 말해보자면, 소속사에서 밀어줄 만큼 밀어줬는데 히트곡을 못 낸 가수인 것이다. 물론 예술성과 대중성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지만, 모든 명작은 베스트셀러였기 마련이다. 문단의 원로로 칭송받고 매 연말이면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두고 언론에서 설레발을 쳤는데, 정작 시인 본인의 대표작이자 필생의 역작인 30권, 4001수에 달하는 시 중 한국인의 기억에 깊이 남는 작품이 한 수도 없다니 너무나 이상한 일 아닌가?

물론 상술하였듯 이 작품의 문학성을 평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고 전작을 다 읽어야 올바른 평가와 자리매김이 가능하겠지만, 일단 나무위키 몇몇 문서에도 실려 있는 시들을 살펴보면(지금은 많이 삭제되었다.) 다음과 같은 형식적·내용적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그저 산문을 행갈이한 것 이상의 기법을 보여 주고 있지 못하며, 종결 표현 정도에서나 다소 예스러운 말들이 반복되고 있을 뿐 특별한 내재율이 발견되지 않는다.

내용적으로는 아무래도 한물간 문학 사조인 민중주의,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다[6]. 특히 그나마 작가가 겪은 시대인 현대에 비해 조선조 사상에 대한 이해가 처지며, 관념 대 실제, 허학 대 실학, 지배층 대 피지배층, 사대 대 자주 등의 얄팍하고 낡은 구도가 자주 보인다. 태산북두 같은 옛 문인들에 대해 감히 동질성이 느껴진다는 식의 감상을 표하는가 하면, 유교철학 담론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헛된 공리공담'쯤으로 폄하하곤 한다.

특히 시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매우 뽐내며 내려다보듯 특정 인물에 대한 단안을 내려 버린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사회적인 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고은에게 과연 그런 평을 내릴 수 있을 만한 안목이나 식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는 웬만한 인문학자로서도 어려운 일이며 문학·역사·철학 전반에 통달해야 시도 정도라도 해 볼 수 있는 일인데[7], 고은에게 그런 학문적 통찰력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각 인물의 제대로 된 일대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기보다는(물론 그런 시도 있지만 의견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시도 꽤 있다) 고은 본인의 해당 인물에 대한 '감상문' 모음집이라고 봐야 한다. 확실한 건 일단 고은이 역사학과 인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그쪽 학문에서 인정받는 학사나 박사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인물평들을 남겨서 문학으로 읽혀지는 것은 스노비즘에 포함된다.

일단 호평을 내린 인물들에 대한 부분도 어느정도 독자가 걸러들어야하고, 혹평을 내린 인물들도 고은 개인의 인물평이다. 당연히 고은의 글귀들이니 고은의 사상과 생각이 담겨있겠지만, 그 사상과 생각을 읽어보기엔 나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 읽으려하면 무리가 많은 작품이다.


[1] 원래 보(譜)란 한자는 '분류하여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그래서 가문의 사람을 정리한 책을 '족보'라 부르는 것이다. [2] 출처: 김정선 (2010-04-09),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연합뉴스. [3] 일례로 5.18 유공자 가족이자 후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엮인 고영태의 가족을 다룬 시도 있다. # [4] 아주 대략적으로, 저명성 있는 시인이지만 노벨 문학상 후보는 아니다 정도. [5] 안타깝게도 표절이 맞다는 것이 중론이다. 표절 옹호론은 문학 분야의 주관성 때문이 아니라 진영 논리에 기인했다고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사실 이 논란의 진정한 문제는 표절 자체도 있지만 표절 사실이 밝혀진 이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문단 권력을 동원해 묻어버리려 했던 신경숙 측의 추잡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그와 별개로 '외딴방' 등에서 이뤄낸 신경숙 문학의 성취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6] 그가 백낙청 진영에 속한다는, 문학계 진영논리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7] 오히려 학문적으로 성취가 높은 학자일수록 그런 단순한 평가를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대 역사학계는 인물을 한두 줄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인물의 업적자체가 한 두줄로 퉁쳐버릴 수 없고,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기에 둘 다 서술하는 것이 공정한데, 한 두줄이라면 빛도 그림자도 충분히 묘사하고 서술할 수 없기 때문. 인물이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는가를 알지 않고 단순히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를 불러왔다고만 적으면, 마치 짧게 줄거리를 요약해놓은 독서감상문을 보고는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