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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슈셉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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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이클 윌리엄 슈셉스키
(Michael William Krzyzewski)
생년월일 1947년 2월 13일([age(1947-02-13)]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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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일리노이 시카고
출신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지도자 경력 인디애나 대학교 어시스턴트 코치 (1974~1975)
미국육군사관학교 감독 (1975~1980)
듀크 대학교 감독 (1980~2022)
국가대표 경력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어시스턴트 코치 (1979, 1984, 1992)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1987, 1990, 2006~2016)

1. 개요2. 생애
2.1. 출생~사관학교 생도 시절2.2. 지도자로서의 시작2.3. 듀크 대학교 감독직과 업적2.4. 미국 국가대표 감독
3. 기타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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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농구인. 전 듀크 대학교 남자농구팀 및 미국 국가대표 농구 감독으로, NCAA 통산 최다승수와 5번의 NCAA 토너먼트 우승 기록을 가진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농구 감독중 한 명이다. 국제 무대에서는 1984 LA,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코치로서 금메달에 기여하고 2010 터키, 2014 스페인 세계선수권 대회 및 2008 베이징, 2012 런던,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감독으로 우승했다.

후술하듯 폴란드계이며 이름이 폴란드식이라 대부분 사람들이 감독의 알파벳 철자를 쓰는 것조차 어려워하기 때문에 맨 앞글자만 따서 코치 K라는 닉네임으로 부른다.[1]

2. 생애

2.1. 출생~사관학교 생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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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 생도 시절. 왼쪽이 당시 감독인 밥 나이트.오른쪽이 아니고??

1947년 2월 13일 미국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였던 윌리엄과 에밀리 슈셉스키 부부 슬하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집안 태생이어서 시카고의 가톨릭계 사립고교에 재학했으며 졸업후 장교가 되는 것을 꿈꿔 미국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여기서 또다른 명감독 밥 나이트를 만나 그에게 조련되었고 졸업반이던 1968년 팀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동년 모교를 내셔널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NIT)에 진출시켜 4위로 입상시켰다. NIT는 NCAA의 플레이오프인 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에 진출하지 못한 팀들을 초청해 여는 토너먼트 대회로 현 68강 진출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애초에 농구 유망주 스카웃같은 것이 불가능한 육군사관학교에서 농구로 플레이오프 코앞까지 진출한뒤 NIT 4강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졸업 후, 1969년에서부터 1974년까지 5년간 군 복무를 한다. 한국에서도 군복무를 한적이있다고 한다.

2.2. 지도자로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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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 감독 시절.

1974년 군에서 제대한 그는 그의 대학교 시절 감독이던 밥 나이트가 재직하던 인디애나 대학교 남자농구팀 보조코치로 활동했고 그 뒤 모교인 웨스트포인트의 감독직을 맡아 5년간 감독으로서 73승 59패의 성적을 올리고 모교의 NIT진출을 이끌었다.

2.3. 듀크 대학교 감독직과 업적


1980년 취임 당시 모습. 이름하야 전설의 시작.

1980년 3월 18일, 그는 톰 버터스(1939~2016) 체육부장의 부름을 받아 듀크 대학교 남자농구팀 감독으로 영전되었다. 장기간의 리빌딩 기간을 지나면서 그는 듀크대 농구팀을 상징하는 명장이 되는데 지난 30년간 무려 29번의 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 진출을 이뤄냈는데 그 중에는 1996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0회 연속진출이라는 미 대학농구 역사상 2번째로 최장기록 역시 포함되 있다. 여기에 34년 듀크 감독경력 중 무려 31번이나 전국 챔피언십에 진출시킨 기록과 함께 86승 25패, 승률 7할6푼7리로 현역감독 중 최다 플레이오프 승리를 기록했으며. 소속된 ACC 챔피언십 우승 13회, 파이널 포(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 4강)12회 진출, 그리고 NCAA 남자농구 챔피언십 우승 5회라는 대기록을 차례로 이뤄낸다.

2010년 2월 3일, 그는 듀크대 감독으로서 1000회째 경기를 치렀으며, 2011년 3월 20일, 자신의 통산 900번째 승을 이뤘다. 그러다가 동년 11월 15일, 자신의 903번째 승을 이뤄 자신의 스승이었던 밥 나이트를 넘어선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1월 25일, 뉴욕의 세인트 존스 대학교와의 경기에서 77대 68로 승리, 자신의 통산 1,000번째 승리를 기록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2021-22년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했으며 #, 3월 6일 경기가 그의 마지막 홈경기인데, 이 경기의 입장권을 얻기 위해 듀크대 학생들이 1월부터 홈구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2] 일반인 대상 티켓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가장 비싼 티켓은 약 1억 2천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고 한다. # 다만 경기는 아쉽게도 패배.

2021-22 시즌, 슈셉스키는 듀크를 이끌고 3월의 광란 파이널 4까지 살아남았지만 4강전에서 숙적 노스 캐롤라이나에게 81-77로 아쉽게 석패하며 47시즌간의 장대한 커리어를 마쳤다.

2.4. 미국 국가대표 감독

국가대표 감독이 되기 이전에 1992년 드림팀에 어시스턴트 코치 자격으로 함께 한적이 있다. 드림팀이 대학 농구팀에게 패한 경기를 실제로 옆에서 같이 관람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패배를 척 데일리가 지나치게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던 팀의 정신을 깨우치기 위해 일부러 망쳤다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던 사람.

대학농구 최고의 감독으로써 2000년대 초반 드림팀이 세계 농구계의 도전으로 인해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우승에 실패하는 최악의 부진을 맛보자, 미국 농구위원회는 NBA라는 이름값이 아닌 FIBA룰을 잘 이해한 아마추어 농구계의 감독을 찾았으며, 대학농구의 레전드로 NBA 스타들의 존경의 대상인 마이크 슈셉스키를 선임했다. 이는 단순히 전략전술적인 면모만이 아닌, NBA에서도 슈퍼스타급만 뽑히는 국가대표를 통솔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원한 것.

시작은 좋지 않았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르브론 제임스 등 NBA의 내로라하는 슈퍼스타들을 코트에 세웠지만, 골밑에서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부족했다. 크리스 보시, 드와이트 하워드, 브래드 밀러 3명의 빅맨이 주전 센터로 나섰지만, 애초에 하워드를 제외한 두 명은 정통센터가 아닌 스트레치형 빅맨이어서 골밑 장악력에서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2006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4강에서 그리스에게 제대로 일격을 당했다. 빠른 공수전환과 달리는 농구가 유리한 NBA룰이 아닌 FIBA룰로 4강전을 맞은 그리스는 그리스의 샤킬 오닐로 불리던 비밀병기140kg 흑돼지센터 소포클리스 쇼르챠니티스를 깜짝 카드로 내세웠고, 이는 미국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쇼르챠니티스의 무지막지한 엉덩이 밀어내기 신공에 보시와 하워드가 골밑을 탈탈 털리면서 17분동안 14점을 얻어맞는등 크게 휘둘렸고, 골대 밖으로 밀려난 미국의 오펜스가 유럽 최고수준의 지역방어 조직력을 보여준 그리스의 수비에 말려서 허둥댔고, 그리스의 침착한 하이스크린 롤을 이용한 조직적인 모션 오펜스에 대응하지 못하고 수비력도 무너지면서 95:101로 충격적인 업셋을 당하고 말았다.

이때 당한 충격적인 패배로 정신이 번쩍 든 미국팀은 이제 더이상 드림팀 네임밸류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적인 게임을 해야겠다고 판단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는 리딤팀이라는 새로운 구성을 하게 된다. FIBA룰이라는 이유만으로 정통 센터를 중앙에 세워놓고 하프코트로 여유있는 게임을 하기엔 미국의 센터진이 너무 약하니, 아예 미국의 강점인 제임스,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등 빠르고 묵직한 체력 빵빵한 스윙맨들이 앞선에서부터 압박수비로 밀어붙이는 전원이 기동력과 협력수비에 참여하고 공 잡으면 일단 속공 달리는 스몰볼&수비로 컨셉을 바꾸었고[3], 그렇게 심기일전한 리딤팀은 06년의 망신을 덮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절정의 전력을 과시하던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유럽과 남미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호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올림픽 농구 금메달을 따냈다.

코치 K의 지도력이 완전히 자리잡은 미국 대표팀은 2010년 세계선수권 및, 차기 올림픽인 2012 런던 올림픽,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에서도 미국 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얻어냈다.

2016 리우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마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국가대표 감독직도 금메달로 장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후임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명감독 그렉 포포비치.

국가대표 감독이 되기전에는 국가대표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기도 했었는데 그 팀중 하나가 리딤팀의 모토가 되는 드림팀이다. 초반의 부진을 극복하는데는 그때의 경험도 어느정도 작용했을 거라 추측이되는데 드림팀 역시 다들 개성이 강한 팀으로 초반에 대학 선수들에게도 깨지는 굴욕을 당했으나[4] 팀 워크를 맞춘후부터는 다른 팀들을 우습게 처참할 정도로 발라버렸다.

3. 기타

  • 그의 코칭 트리에 속한 인물로는 애제자인 토미 아마커[5](현 하버드 대학교 감독)를 비롯 마이크 브레이(전 노터데임 대학교 감독), 크리스 콜린스(현 노스웨스턴 대학교 감독), 스티브 워조하우스키(전 마케트 대학교 감독), 제프 카펠 3세[6](현 피츠버그 대학교 감독) 등이 있다.
  • 위에 게시된 사진과 실제 출생년도를 봐도 알겠지만 77세라는 나이에 비해 꽤 동안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뒤를 이어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자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명장인 그렉 포포비치가 외견상으로만 보면 슈셉스키보다 더 경력과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포비치가 1949년 생 75세로 슈셉스키보다 더 어리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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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 스포츠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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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브리스 팻 서미트[7] & 마이크 슈셉스키 르브론 제임스


[1] 유사 사례로는 제자인 스티브 워조하우스키(전 마케트 대학교 감독)가 있다. [2] 미국 대학 경기의 "스튜던트 섹션" 티켓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싼 대신 수가 제한적이라고 한다. [3] 여담이지만, 이렇게 제임스, 웨이드, 보시라는 2003년 드래프트 동기이자 같은 시기에 FA대어로 주목받던 세 선수를 한 팀에 몰아넣고도 3명의 강점을 모두 살린 팀을 만든 코치 K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마이애미 히트의 빅 3 시대의 밑그림이 되었다. [4] 척 데일리 감독이 이건 노골적으로 게임을 망치긴 했다. 일단 조던을 빼고 다시 집어넣지 않은것부터 시작해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슈셉스키 코치는 그것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인터뷰에서 노골적으로 척 데일리가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고 인터뷰도 했다. [5] 제레미 린의 스승. [6] 전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감독 제프 카펠 2세(1953~2017)의 아들로 오클라호마 대학교를 지휘할 적 블레이크 그리핀을 육성한 바 있다. [7] 38년 동안 테네시 대학교 여자농구부 감독을 맡으며 통산 1098승 208패 승률 .841을 기록했으며 8차례의 대학농구 플레이오프 우승을 비롯해 미국 여자농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1984년 LA 올림픽 금메달, 1979 서울 FIBA 세계선수권 금메달등 그야말로 미국 여자농구계의 레전드였던 감독이다. 말년에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 2016년 6월 28일 타계. 한마디로 이 표지는 미국 대학농구를 상징하는 레전드 감독 콤비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