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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라디오)
이름 | 장기호 |
예명 | 키오(Kio) |
출생 |
1961년[1] 서울특별시 |
데뷔 |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
학력 |
영등포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응용미술과 / 중퇴)[2] 버클리 음악대학 미국 오클랜드 오이코스대학 명예박사 2024.9 |
직업 | 가수, 작곡가, 교수 |
소속 | 빛과 소금 |
소속사 | RICH Music |
종교 | 개신교( 예장합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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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베이시스트, 가수, 작곡가,교육자1986년에 김현식의 3집 음반 중 <그대와 단둘이서>라는 곡으로 참여한 뒤 1989년에 < 빛과 소금>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박성식, 한경훈과 같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95~1999 미국 유학 이후 개인활동의 예명으로 키오(Kio)를 사용한다.
2. 활동 내역
언더에서 활동하다가 1986년, 김현식에게 픽업되어 김현식의 백밴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로 데뷔했다. 당시 멤버는 김현식(보컬),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장기호(베이스), 유재하(키보드)였다. 이들과 3집 앨범 작업을 함께했고 장기호는 <그대와 단둘이서>를 작사/작곡해 김현식에게 주었다. 3집 앨범 작업 중 유재하는 김현식과의 이견 차이로 중간에 나가고 박성식이 새 멤버로 영입되어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 곡으로 활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현식을 리더로 알고 있었지만 라스에서 전태관이 말하길 장기호가 리더였다고 한다.허나 이듬 해인 1987년 김현식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면서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져 개인활동을 시작했다. 김종진과 전태관은 기존의 봄여름가을겨울을 2인조 밴드로 재편했고, 3집 활동 도중 팀을 나갔던 유재하는 솔로 1집 앨범을 발매한 뒤 얼마 안가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장기호는 팀이 해체된 뒤 박성식과 함께 밴드 사랑과 평화에 영입되어 4집 앨범에 참여했으며, 이 후 독립해 기타리스트인 한경훈과 함께 빛과 소금을 결성해 활동했다. 대표곡으로는 ' 샴푸의 요정'[3],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4] '오래된 친구' '그대 떠난 뒤' 등이 있다.
1996년 빛과 소금 5집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하다가 2011년 5월 오랜만에 공연을 가지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서울예술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2011년에 나는 가수다의 자문위원단장으로 활동했다.
3. 기타
- 나가수 1기에서 심사위원으로 있었을 때 그의 극찬을 받은 가수들은 모두 '하차'하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1라운드 2차 경연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나와 같다면'을 부른 김연우가 하차의 고배를 마셨으며 조규찬(8라운드), 장혜진(9라운드), 인순이(10라운드)도 모두 해당 라운드에서 하차했다. 반면 비판받았던 박완규의 하망연은 1위를 했다.
* 2024년 9월 미국 오클랜드 오이코스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동기간 동안 다수의 명곡들을 발표, 교육자로서 다양한 활동과 저서 등의 업적을 인정받아 학위가 수여되었다.
* 저서로는 "실전 재즈화성" "내 노래는 내가 만든다" 내 노래는 내가 꾸민다" "나는 모드로 작곡한다" 만화로 보는 실용음악"팝 잇 업" "찬송가 재즈편곡집" 등이 있다.
[1]
정확한 날짜는 불명이다. ([age(1961-12-31)]~[age(1961-01-01)]세)
[2]
현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학과
[3]
사랑과 평화 4집(1988)에 먼저 발표된 뒤 빛과 소금 1집(1990)에 재수록되었다.
[4]
이소라가 자신의 3집 앨범에 리메이크했으며 편곡은
유희열.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신명난다 에헤라디오가 커버했다.
[5]
성악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