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츠 선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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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3D3D3><colcolor=#000> 팔츠의 선제후 루트비히 3세 Ludwig III., Kurfürst von der Pfal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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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78년 1월 23일 |
사망 | 1436년 12월 30일 (향년 58세) |
팔츠 선제후국 하이델베르크 | |
재위 | 팔츠 선제후국의 선제후 |
1410년 5월 18일 ~ 1436년 12월 30일 | |
배우자 | 잉글랜드의 블랜치[1] (1402년 결혼 / 1409년 사망) |
사보이아의 마틸데[2] (1417년 결혼) | |
자녀 | 마틸데, 루트비히 4세, 프리드리히 1세, 루프레히트[3], 마르가레테 |
아버지 | 루프레히트 |
어머니 | 뉘른베르크의 엘리자베트 |
형제 | 마르가레테, 요한[4], 슈테판[5], 오토 1세 |
[clearfix]
1. 개요
팔츠 선제후이자 독일왕 루프레히트와 호엔촐레른의 엘리자베트(Elisabeth von Hohenzollern-Nürnberg 1358~1411)[6]의 맏아들로 부친이 사후 팔츠 선제후국을 형제들에게 분할해서 물려줄 때 팔츠 선제후 작위와 대부분의 영토를 물려받았다.2. 상세
독일왕 지기스문트의 섭정 자격[7]으로 협조하여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얀 후스를 처형하는데 일조했으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후원했다. 말년에는 맹인이 되었고 사후 차남이 루트비히 4세로 팔츠 선제후가 되었다.
[1]
헨리 4세의 장녀.
[2]
피에몬테를 통치하던 사보이아아카이아 분가의 아메데오의 딸. 사보이아아카이아의 아메데오는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 7세와 같은 항렬이다.
[3]
쾰른 선제후
[4]
칼마르 연합의 국왕
바이에른의 크리스토페르의 아버지.
[5]
프리드리히 3세부터 시작되는 지메른 분가와 나중에
바이에른 왕국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로부터 시작되는 츠바이브뤼켄 분가의 시조.
[6]
호엔촐레른 가문의 초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의 누나.
[7]
지기스문트는
헝가리 왕국,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이어서
신성 로마 제국에만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에
금인칙서에 따라
작센 선제후와 팔츠 선제후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