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8:05:08

루이스 수아레스(1935)

루이스 수아레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9대
클럽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로고(2014~2021).svg

42대, 51대, 55대
}}} ||
루이스 수아레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베스트팀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1963 · 1964 · 196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7px-UEFA_Euro_1964.svg.png

1961 Ballond'or
수상
오마르 시보리
2위
루이스 수아레스
3위
조니 헤인즈
1964 Ballond'or
수상
데니스 로
2위
루이스 수아레스
3위
아만시오 아마로
1965 Ballond'or
수상
에우제비우
2위
자친토 파케티
3위
루이스 수아레스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1964 }}}
스페인의 前 축구인
파일:luis-suarez-miramontes.jpg
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Luis Suárez
<colbgcolor=#eeeeee,#191919> 본명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Luis Suárez Miramontes
출생 1935년 5월 2일
스페인 공화국 갈리시아 지방 라코루냐주
사망 2023년 7월 9일 (향년 88세)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국적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체격 175cm
직업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53~1954)
에스파냐 인두스트리알 (1954~1955)
FC 바르셀로나 (1955~1961)
인테르나치오날레 (1961~1970)
UC 삼프도리아 (1970~1973)
감독 인테르나치오날레 (1975)
UC 삼프도리아 (1975)
SPAL 1907 (1975~1976)
칼초 코모 (1977~1978)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78~1979)
스페인 U-21 대표팀 (1980~1989)
스페인 대표팀 (1988~1991)
인테르나치오날레 (1992)
알바세테 발롬피에 (1994)
인테르나치오날레 (1995)
국가대표 32경기 14골 ( 스페인 / 1957~1972)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3. 사망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3. 수훈
6. 평가7. 여담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인.

스페인 태생 선수 중에서는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이다.[1]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를 수없이 배출했던 스페인 축구사를 통틀어도 그와 견줄 만한 선수로는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정도만이 유일. 선수 시절 바르사 인테르에서 긴 전성기를 구가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갈리시아 지방에서 태어나 1953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데뷔했다. 데뷔 전부터 엄청난 유망주로 여겨졌던 선수였고 데포르티보는 수아레스를 중심으로 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1년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첫 시즌은 주로 바르셀로나의 2군이었던 에스파냐 인터스트리알에서 뛰었고, 1955년부터는 1군 선수로 활약했다.
파일:external/www.aguantenche.com.uy/Luis-Suarez-Balon-de-Oro-.-Mejor-Jugador-de-Europa-de-1960.jpg
'''
1960년 바르셀로나 소속 당시(25세)
'''

건축가라는 별명에 걸맞은 완벽한 롱패스와 122경기 61골[2]을 뽑아낼 정도의 득점력을 보여 주면서 당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로 대표되는 저승사자 군단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 맞서 1959년 더블, 1960년 라리가 인터-시티 페어스컵을 거머쥐면서 196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3]
파일:external/c8608cb65d0872d85202c424ea260457e8076d2f9c2ce14c97a3f790731f1b05.jpg
1963년 인테르 소속 당시(28세)[4]
1961년 당시 최고의 이적료(14만 2천 파운드)를 기록하며 인테르로 이적, 세리에에서도 3차례의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리며 라 그란데 인테르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인테르에서의 기록은 323경기 출장 55골. 1970년 UC 삼프도리아로 이적했고, 197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1957년부터 1972년까지 32경기 14골을 기록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1962년 칠레 월드컵,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호세 산타마리아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귀화시키면서 참가했으나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에서는 아만시오 아마로와 함께 팀을 이끌며 헝가리 소련을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수아레스는 이 대회에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여기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3. 사망

2023년 7월 9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후에는 인테르, 삼프도리아, 칼리아리 칼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스페인 대표팀 등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2014년까지도 인테르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 감독 시절 한국에게 1-3 패배라는 악몽을 안겨주기도 했다.[5]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3. 수훈

  • 왕립 스포츠 공로장 금메달[6]: 2001

6. 평가

루이스 수아레스는 현역 시절 라슬로 쿠발라,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 등과 함께 일명 '친코 코파스'라 불린 바르셀로나의 전성기에 주축 맴버였으며, 이탈리아로 떠나서는 라 그란데 인테르의 주축 맴버로 활약한 선수로 두 팀의 황금기에 주축 선수로 활약한 스페인의 역대급 미드필더이다.

그는 1960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61년과 1964년에 발롱도르 2위를 1965년에 3위를 기록하며 포디움에 무려 3차례나 들어본적이 있다.

이런 커리어와 기록들이 알려주듯이 그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와 더불어 스페인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7. 여담

  • 최근의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동명이인인 우루과이 루이스 수아레스가 잘 알려져있지만, 전문가들과 축구 역사 매니아들은 이 선수를 먼저 떠올리며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순위표에서도 자주 보인다.
  •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핵이빨이나 다이빙 등의 더티 플레이로 비난받을 당시에는 자신과 엮지 말아달라며 불쾌함을 나타냈지만 수지가 바르셀로나 이적한 후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기행도 줄어들자 이 양반 또한 수아레스를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인정하며 추켜세워줬다.
  • 전성기를 보낸 팀인 바르셀로나에 관련하여 단도직입적으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를 들자면 2021-22 시즌에 임대로 합류한 뤽 더용이 최악의 모습을 보이자 "어떤 머저리새끼가 더용을 추천한 건지 모르겠다" 라고 말한다거나[8], 2021년 발롱도르를 놓고 경합하던 리오넬 메시[9]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중 레반도프스키를 지지하며 "레반도프스키에게 발롱도르를 주지 않는다면 나의 트로피를 기꺼이 그에게 줄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10]

파일: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6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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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1990 1994 1998 2002 2006
2010 2014 20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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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스페인 국적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므로 스페인 '태생'으로 한정해야 최초이다. 2024년 이전까지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나, 로드리가 두번째로 수상하게 되는 영예를 안았다. [2] 정확히 2경기당 1골, 경기당 0.5골이다. [3] 페렌츠 푸스카스가 수상하는 게 타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4] 아랫줄 가운데 [5] 3골을 모두 미첼 한 명이 넣었으며, 대회 베스트 골 톱5에 선정된 황보관의 시속 114km 프리킥 골(일명 캐논슛)이 나온 경기이기도 하다. [6] Medalla de Oro de la Real Orden del Mérito Deportivo [7] 상대는 수소와 같이 제노아. 1963년 3월 10일자 경기였다. 팀은 6-0 승리. [8] 다만 후반기 들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9] 이 인터뷰를 한 시기인 2021년 하반기에는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뒤였다. [10] 발롱도르 수상 예측은 리오넬 메시가 우세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메시가 발롱도르 수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