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1:52:03

로저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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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밀러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아프리카 축구 연맹 로고.svg
1976 · 1990
파일:브론즈슈.png
1990 FIFA 월드컵 브론즈슈
[1]
}}} ||
카메룬의 축구인
파일:external/www.culturebene.com/FOOT_Roger_Milla.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로저 밀라
Roger Milla
본명 알베르 로제 모 밀레르[2]
Albert Roger Mooh Miller
출생 1952년 5월 20일 ([age(1952-05-20)]세)
카메룬 야운데
국적
[[카메룬|]][[틀:국기|]][[틀:국기|]]
|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에클레르 드 두알라 (1965~1970 / 유스)
레오파르 드 두알라 (1970~1974)
토네르 야운데 (1974~1977)
발랑시엔 FC (1977~1979)
AS 모나코 (1979~1980)
SC 바스티아 (1980~1984)
AS 생테티엔 (1984~1986)
몽펠리에 HSC (1986~1989)

JS 생피에루아즈 (1989~1990)
토네르 야운데 (1990~1994)
펠리타 자야 (1994~1995)
푸트라 사마린다 (1995~1996)
토네르 야운데 (1996~1999)
감독 몽펠리에 HSC (2001~2007 / 코치)
토네르 야운데 (2007~2011 / 감독)
토네르 야운데 (2011~2012 / 디렉터)
국가대표 77경기 43골 ( 카메룬 / 1973~199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유년기2.2. 클럽 경력2.3. 국가대표 경력
3. 평가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로저 밀러.jpg
FIFA - 로저 밀러 영상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카메룬의 前 축구 선수. 대중들에게 클럽 커리어보다는 국가대표로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상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축구의 대표적인 상징으로도 평가받고있다.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첫 아프리카 국적[3]의 선수이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3번의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FIFA 월드컵 역대 최고령 득점자[4]이면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4골을 터트리며 카메룬의 8강 진출을 이끈 검은 돌풍의 주역으로 대부분의 공격수들이 은퇴하는 나이인 38살이라는 늦깎이에 국제적 스타덤에 오른 선수이다.

골을 기록한 이후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신명나게 춤을 추는 셀리브레이션이 바로 밀러의 트레이드 마크. 틀에 얽매이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이고 재밌는 골 셀리브레이션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유년기

밀러의 아버지는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였으며 11살때 온 가족이 두알라로 이사를 갔다.

15살때 카메룬 축구 2부 리그에 속해있던 에클레르 두 두알라에서 자신의 첫 번째 경기를 치렀으며 그 후 레오파르 두 두알라, 그리고 토네르 야운데에서 뛰었다.

2.2. 클럽 경력

1977년, 프랑스 클럽 발랑시엔 FC의 러브콜을 받게 되어 유럽으로 자신의 무대를 옮겼으며 발랑시엔에서 두 시즌 동안 밀러는 리그 28경기를 뛰어 6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1979년 AS 모나코에 합류하였지만 한 시즌 동안 리그 17경기에서 2골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여주게 된다.

한 시즌만에 모나코를 떠나 SC 바스티아로 이적한 밀러는 4년간 주전으로 뛰며 리그 113경기 출전 35골을 기록하였다.

그 이후 어느덧 32살이 된 밀러는 1984년 AS 생테티엔으로 가 2년간 총 59번의 리그 경기에서 31골을 기록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몽펠리에 HSC에서 활약하였고 그렇게 몽펠리에를 끝으로 자신의 정 들었던 프랑스 무대를 떠나게 된다.

1987년 프랑스를 떠난 이후 밀러는 프랑스 소유의 인도양 섬 레위니옹 소속 리그의 명문팀 JS 생피에우즈에서 뛰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부터 1996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두 개의 팀을 뛴 이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자신의 마지막 프랑스 클럽이였던 몽펠리에에 코치로 합류하게 된다.

클럽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굵직한 임팩트를 남긴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다른 월드클래스 선수들에 비해 초라해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밀러가 전문가들 그리고 팬들의 입에서 아직까지 오르내리는 이유는 다름아닌 국가대표에서의 엄청난 활약상 덕분이다.

2.3. 국가대표 경력

파일:카메룬 축구의 전설 밀러.jpg
로저 밀러는 국가대표팀에서 77번 경기 출전 43골[5]을 기록하였으며 1973년 월드컵 예선에서 자이르를 상대로 자신의 첫번째 대표팀 경기를 뛰었다.

카메룬이 처음으로 출전한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일원이였고,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 페루와의 경기에서 밀러는 온사이드 상황에서 득점했으나 이를 오프사이드로 취소해버리는 오심으로 인해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고 결국 경기는 0:0으로 끝나게 된다. 이어지는 폴란드 이탈리아 경기에서 0:0, 1:1 무승부를 거두며 선전했으나 3무로 탈락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파일:1990년 월드컵 당시 밀러.jpg
1990년 월드컵 당시 로저 밀러
이후 대부분의 축구 선수가 은퇴했을 법한 나이인 38세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였는데 이 늦깍이 나이에 이번 대회 주요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발레리 니폼니시의 지도를 받은 카메룬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67분 프랑수아 오맘비크의 헤딩슛을 네리 품피도가 실수로 막지 못해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 이변을 일으킨다. 이후 ‘발칸의 마라도나’라 불린 게오르게 하지가 에이스로 있던 루마니아에서 밀러는 혼자서 2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고 조별리그1위를 확정 짓게된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소련에서 비록 4:0 대패를 당했으나 조1위엔 변함이 없었으며 그렇게 16강에 진출한 밀러는 16강 콜롬비아에서 연장전에만 2골을 터뜨려 2:1 승리를 이끌었고 팀이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당시 콜롬비아는 발데라마, 이기타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하였던 남미의 강호였기에 모든 이들은 콜롬비아의 완승을 예상하였으며 밀러가 선보인 이러한 활약상은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밀러는 후반전 교체로 들어가 페널티 킥을 얻어내고 하나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카메룬이 2:1로 앞서나가게 만드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였으나 두 번이나 게리 리네커에게 페널티 골을 내주며 결국 2:3 패배, 카메룬의 검은 돌풍은 8강에서 멈추고 만다. 하지만 밀러는 월드컵에서 총 4골을 넣었으며, 카메룬의 돌풍을 이끈 그의 활약 덕분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실버슈에 선정되었으며 올해의 아프리카 축구 선수상도 수상하게 된다. 더불어 카메룬은 이 대회에서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을 달성하였으며 이 8강이라는 성적은 2022년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의 월드컵 최대 성적이었으나, 모로코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진출하면서 이 기록은 깨지고 말았다.[6]

이 당시 카메룬의 선전은 그동안 세계 축구계에서 비주류로 여겨졌던 아프리카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이 이후로 아프리카 대표팀의 월드컵 16강 행진 + 올림픽 연속 우승 + 청소년 대회 최강대륙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이 이전에도 알제리, 모로코가 아프리카 팀으로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블랙 아프리카가 아니라 중동+유럽의 혼합팀에 가까웠기에 카메룬 그리고 이 시대 카메룬을 이끈 주역 밀러는 아프리카를 주목받게 한 선도주자로서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바꾸는데 엄청난 공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파일:밀라 트레이드마크 셀레브레이션.gif
상징이 된 밀러의 트레이드 마크,
코너 플래그 댄싱 세리머니[7]
거기에 더해 밀러가 콜롬비아를 상대로 기록한 두 번째 득점 당시 선보인 골 셀리브레이션은 전 세계적인 상징이 되었으며 당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코카콜라 광고에서도 나올 정도였다.
파일: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밀라.jpg
1994년 월드컵 당시 러시아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한
이후 기뻐하고 있는 로저 밀러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42세의 나이로 출전해서 월드컵 역사상 역대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웠다.[8] 러시아에서 밀러는 1골을 기록하면서 본인이 90년 월드컵 당시 세운 월드컵 역대 최고령 득점 기록을 경신[9]하였으나 경기는 6:1로 대참패를 당하고[10] 카메룬은 1무 2패로 조별 리그에서 떨어진다. 이후 1994년 12월 남아공과의 친선 경기를 끝으로 카메룬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평가

파일:로저 밀러 88.jpg
조지 웨아, 아베디 펠레, 사무엘 에투, 디디에 드록바, 야야 투레 등 아프리카 축구는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뛰어난 선수를 배출해 왔음에도 틀림없이 이들 중 가장 위대한 선수는 로저 밀러일것.
George Weah, Abedi Pele, Samuel Eto’o, Didier Drogba, Yaya Toure – African football has produced countless outstanding players over the years, the aforementioned icons merely a sample. But arguably the greatest of them all is Roger Milla.
FIFA
로저 밀러는 아프리카 국적 최초의 글로벌 스타 중 한 명이다.

밀러는 아프리카 축구의 부흥기를 이끈 장본인이자 카메룬 축구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서 아직까지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역사적인 아프리카 축구 선수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몽펠리에 시절부터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밀러가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이다. 38살이라는 매우 늦은 나이에 월드컵에 출전해 네 골을 기록하는 등 주득점으로 활약해 카메룬을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8강까지 올리는데 엄청난 견인을 하고 그다음 월드컵에서도 42살이라는 선수 생명으로 따지면 할아버지 정도 되는 나이[11]에 출전해 역대 최고령 월드컵 득점자가 되는 등 아프리카 축구 역사를 따질때 가장 먼저 이름이 등장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레오파르 드 두알라 (1970~1974)
    • 엘리트 원: 1971-72, 1972-73, 1973-74
  • 토네르 야운데 (1974~1977)
    • 아프리칸 컵위너스컵: 1975
    • 카메룬컵: 1991

4.2. 개인 수상

5. 여담

  • 프랑스 래퍼 MHD가 로저 밀러의 그 유명한 엉덩이춤 세리머니를 인용한 노래 '로저 밀러'를 발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이 곡은 MHD가 아프리카 도시에서 콘서트를 할 때 가장 인기 있는 곡이다. ( #)
  •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남아공 현지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던 차범근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 현역시절 한성격 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축구를 한단계 올리고 전세계에 아프리카 축구의 매력을 보여주었기에 그의 한성격 하는 부분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1] 게리 리네커와 공동 수상. [2] /albɛʁ ʁɔʒɛ mo milɛʁ/ [3] 국제 무대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선보인 첫 번째 아프리카 출신 선수는 포르투갈 축구의 전설 에우제비우. [4] 1994년 미국 월드컵때 무려 42살이라는 나이에 러시아전에서 터트린 득점으로 월드컵 역사상 최고령 득점자가 되었다. [5] 축구 통계 수집을 전담하고 있는 국제 기구인 RSSSF 자료 [6] 월드컵 8강을 기록한 또다른 아프리카 국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세네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가나. [7] 현재 피파 시리즈 피파 온라인에서도 펼칠수 있는 셀리브레이션이다. [8] 이후 이 기록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콜롬비아 국적의 골키퍼 파리드 몬드라곤에 의해 깨졌으며 몬드라곤의 기록 역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이집트 국적의 골키퍼 에삼 엘하다리에 의해 깨지게 된다. 하지만 이 두 선수가 늦은 나이에도 활약할 수 있는 골키퍼 포지션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공격수였던 밀러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9] 상술한 최고령 출전 기록과 달리 이 기록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10] 같은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인 올레그 살렌코가 한경기 5골(!)을 기록하였다. [11] 물론 최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경우나 잔루이지 부폰같은 선수들이 40대의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밀러가 활약했던 당시는 스포츠 의학과 스포츠 과학이 현재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1990년대 초중반이였다. 현재도 40대가 중년으로 여겨지지만, 1990년대 초중반의 42세면 현재의 50세 정도 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