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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메레티 왕국 5대 군주 როსტომი | 로스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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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로스톰 |
조지아어 | როსტომი | |
라틴어 | Rostom | |
가족 |
바그라트 3세(할아버지) 콘스탄틴(아버지) 기오르기 3세(이복 형제) 티나틴 자바케티(아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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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년도 | 미상 ~ 1605년 | |
재위 기간 |
1588년 ~ 1589년(1차 재위) 1590년 ~ 1605년(2차 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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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차 이메레티 왕국 5대 군주.2. 생애
2차 이메레티 왕국 2대 군주 바그라트 3세의 차남 콘스탄틴의 아들이다. 2차 이메레티 왕국 3대 군주 기오르기 2세는 1583년 3남 레반을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동생 콘스탄틴이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해 콘스탄틴과 조카인 글를 유페했다. 1585년 레반이 왕위에 오르자, 콘스탄틴은 유폐지에서 탈출한 뒤 반기를 들어 한때 스칸다, 카츠키, 아르게티를 포함한 리오니 강 동쪽 영토를 장악하고 왕을 자처했다. 그러나 1587년 밍그렐리아 공국의 마미아 4세 다디아니의 도움을 받은 레반에게 패하고 아르게티의 영주가 되었다.1588년, 카르틀리 왕국의 군주 시몬 1세가 일전에 기오르기 2세가 오스만 제국과 연합하여 자신을 쳐서 하마터면 축출될 뻔했던 일에 복수하고자 이메레티 왕국으로 쳐들어왔다. 고판토 전투에서 참패한 레반은 레흐쿠미 지방으로 도피했다. 시몬 1세는 오스만 제국군이 카르틀리로 쳐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철수했지만, 마미아 4세는 레반 대신 그를 왕으로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1589년, 일전에 마미아 4세에 의해 구리아 공작에서 축출된 기오르기 2세가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고 쿠타이시로 쳐들어와서 그를 몰아내고 마미아 4세를 전사시킨 뒤 바그라트 4세를 왕위에 앉혔다.
얼마 후, 시몬 1세가 재차 이메레티를 침공해 바그라트 4세를 몰아내고 쿠타이시를 장악한 뒤 수비대를 배치하고 떠났다. 로스톰은 밍글레리아로 달아나 새 밍그렐리아 공작 마누차르 다디아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누차르 다디아니는 즉시 군대를 거느리고 쿠타이시로 진군해 쿠타이시를 장악하고 그를 왕으로 세웠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몬 1세는 군대를 동원하여 쿠타이시로 쳐들어갔고, 그는 산악 지대로 달아나 오디시에 숨었다. 시몬 1세는 스칸다, 크바라, 카츠키, 스베리 등 여러 요새를 장악하고 수비대를 배치한 뒤, 로스톰이 달아난 오디시로 진군해 그를 붙잡았다.
1590년, 마누차르 다디아니는 옵슈크비티 전투에서 시몬 1세를 격파했다. 시몬 1세는 잔여 병력을 수습해 카르틀리로 철수했고, 마누차르는 쿠타이시를 탈환하고 로스톰을 왕위에 복귀시켰다. 이후 로스톰은 시몬 1세와 평화 협약을 체결하고 포로와 인질을 교환했다. 1597년 삼츠헤-자바케티의 군주 마누차르 2세의 딸인 티나틴 자바케티와 결혼했으나 자식을 보지 못했다. 1605년 그가 사망한 뒤 이복 형제인 기오르기 3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