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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레이 토로 Ray Toro |
|
|
|
본명 |
레이먼드 마누엘 토로-오티즈 Raymond Manuel Toro-Ortiz |
출생 | 1977년 7월 15일 ([age(1977-07-15)]세) |
미국 뉴저지 주 커니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85cm[1] |
직업 | 기타리스트 |
악기 | 기타 |
가족 |
부인 : 크리스타 토로(Christa Toro) 슬하 2남 |
소속 | 마이 케미컬 로맨스 |
링크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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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릴 때부터 클래식 록 음악을 들어왔으며, 브라이언 메이, 랜디 로즈, 지미 헨드릭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
1977년 10월 15일에 뉴저지주 커니에서 푸에르토리코 계/ 포르투갈 계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엔 푸에르토리코에서 자랐지만 집 주변 호수나 공원엔 항상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많이 놀지 못했고, 클래식 록 음악 등을 들으며 자라왔다. 이후 뉴저지로 돌아와 키르니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가 키르니 고등학교로 들어갈 때, 음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레이의 형은 그에게 기타리스트가 영향을 받을 만한 몇몇 밴드에 그를 소개시켜 주었고, 손재주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기타 레슨도 받았다. 그 후 여러 밴드 활동을 하다가 1994년에 결성된 '로드니'는 1998년에 처음이자 유일한 앨범"Soccertown USA"를 발매했다. 하지만, 1995년에 고등 학교를 졸업한 후에, 레이는 음악 대신에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그는 뉴저지 주 웨인 파터슨 대학의 편집 과정에 등록했고, 그의 유일한 음악적인 활동은 밴드 '데드 고 웨스트'에서 드럼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2.2. 마이 케미컬 로맨스 활동
로드니의 프론트맨 이였던 숀 딜런은 1990년 후반에 제라드 웨이에게 레이를 소개시켜준다. 레이는 맷 펠리시어의 다락방에서 주로 열리는 연습 세션에서 제라드 웨이는 보컬로, 맷 펠리시어는 드러머로, 레이 토로는 리드 기타리스트로 함께 일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제라드의 동생 마이키 웨이가 베이스를 독학하여 베이시스트로 합류하게 되고,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결성한다.이후 레이는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음악 반주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며, 대부분의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또한 대부분의 곡들에서 백 보컬을 담당한다. 메인 보컬인 제라드보다 더 잘 부를 때도...
또한 3집 후반부에 밴드 활동을 그만 둘 생각을 하던 제라드를 설득한 장본인으로, 마이 케미컬 로맨스가 4집까지 나오는데 꽤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3. 여담
- 트레이드 마크인 아프로 머리는 1집때부터 길러온 머리이며, 이 머리를 누군가가 함부로 만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드물게 풀린 머리를 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섹시하다.
- 다른 멤버들한테는 차고 넘치는 루머들이 레이에게는 거의 없다. 실제로도 정신적, 건강적 문제로 한 번씩 몸살을 앓았고 약물이나 술로 고생한 적 있는 다른 멤버들[2]과 다르게 레이 본인은 꽤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사실상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냈다. 해체 당시 다른 멤버들이 크고 작은 비난을 들을 때에도 레이에겐 별 말이 없었다.[3] 인성 역시 멤버들 중에서 가장 좋다보니 '우린 모두 지옥에 가지만 레이는 아니야.'라는 밈도 존재한다.
- 이런 레이에게도 굴욕이 있다. 레이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멤버들이 레이를 두고 간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정작 레이는 별 다른 소리 안하고 바로 합류했다. 또한 라이브 공연 때 제라드가 휘두른 스탠드 마이크나 프랭크가 휘두른 기타에 맞아 몇 바늘 꿰매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 밴드 중에서는 아이언 메이든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며, 아직도 클래식 록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