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141d><colcolor=#fff> 래리 엘리슨 Larry Elli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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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런스 조지프 엘리슨 Lawrence Joseph Ellison |
출생 | 1944년 8월 17일 ([age(1944-08-17)]세) |
뉴욕주 뉴욕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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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South Shore High School (
졸업) (1958 - 1962년) 일리노이 대학교/어배너-섐페인 캠퍼스 (중퇴) (1962 - 1964년) 시카고 대학교 (중퇴) (1964 - 1966년) |
현직 | 오라클 (CTO / 이사회 의장) |
직업 | 기업인, 투자자 |
신체 | 191cm, 85kg |
배우자 |
에이다 퀸(1967년 결혼~1974년 이혼) 낸시 휠러 젱킨스(1977년 결혼~1978년 이혼) 바버라 부스(1983년 결혼~1986년 이혼) 멜러니 크래프트(2003년 결혼~2010년 이혼) |
자녀 |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1983년생) 딸 메건 엘리슨(1986년생) |
재산 | 2,361억 달러 (한화 약 339조 6,600억원)[1] |
연봉 | 730만 달러[2] (20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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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업인. 오라클을 설립한 창업주이자 투자자다.2. 상세
2.1. 성장
래리 엘리슨은 1944년 뉴욕에서 미혼모였던 유대인 생모 밑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이탈리아계 육군 항공대 소속 미군이었으나 2차 세계 대전 도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 9개월 만에 폐렴에 걸리자 생모는 양육을 포기하고 엘리슨의 이모와 이모부에게 맡겼다. 이모와 이모부는 다시 시카고 사우스쇼어에 사는 독실하게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 가족이었던 엘리슨 집안에 입양시켰다.엘리슨은 양아버지에 대해 엄격하고 지원이 적으며 자주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라 했던 것과 달리 양어머니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10살 즈음해서 엘리슨은 입양 가족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양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었는지 그는 13살에 하는 유대 성년의례를 거부했다. 그는 양아버지에 대해 "제 양아버지가 제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화재가 누군가를 파멸시키지 못하면, 결국 그 화재는 사람을 더욱 단련시키기 마련이니까요."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래리 엘리슨은 성년이 되어 일리노이 대학교의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에 프리메드(Pre-Med, 의학전문대학원 준비 과정) 학생으로 입학했으나 22세가 되던 해인 1966년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만뒀다. 그는 양아버지의 설득으로 시카고 대학교에 다시 입학해 물리학과 수학, 그리고 컴퓨터 설계를 공부했으나 한 학기 만에 다시 그만두었다. 이후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이주했으며, 그곳의 히피 문화에 젖어들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약 10여년간 IBM 메인프레임 유지 보수 관련 여러 일자리들을 전전했다.
2.2. 오라클 설립
10여년간 그가 전전한 회사들 중 암펙스에서 그는 밥 마이너(Bob Miner)와 에드 오츠(Ed Oates)를 만났다. 그들과 래리 엘리슨은 1977년 회사를 그만두고 실리콘밸리에서 오라클의 전신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oftware Development Lab)를 설립했다. 그들의 회사 설립 후 첫 목표는 CIA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 계약을 따내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1970년 IBM은 에드거 코드(Edgar Codd)는 RDBMS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1974년 IBM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베이스 언어 SQL을 만들었다. 래리 엘리슨과 설립자들은 이 논문을 보고 영감을 받아 1979년 Relational Software로 회사명을 변경했고, 같은 해 SQL을 지원하는 유닉스용 RDBMS 소프트웨어 ORACLE 2.0을 발표했으며, 1982년에는 사명도 오라클로 바꿨다. 당시 RDBMS는 메인프레임에서만 동작했으나, 오라클을 비롯해 Sybase,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유닉스에 RDBMS 소프트웨어들을 출시한 뒤로 메인프레임이 아닌 미니컴퓨터, 서버에서 돌아가게 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이후 Sybase,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으로 수익률 악화, 구조조정, 분식회계로 인한 위기 등 수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로 마이크로소프트 다음으로 큰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었다. 그 이후 2010년 서버 하드웨어를 생산하고 있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 합병하는데 성공했다.
2014년, 대표이사 직책을 사퇴하면서 1선에서 물러났다.
2.3. 퇴임 이후
2018년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주식을 매입해 비상장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어나자 머스크가 테슬라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머스크를 견제하기 위한 독립 이사 2명을 선임하기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합의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래리 엘리슨이 머스크를 옹호하면서 테슬라 주식 1.6%에 달하는 300만 주를 10억 달러에 사들이고 직접 테슬라 이사로 합류한 적이 있다. 2020년 8월 주식 분할로 인해 1,500만 주로 늘어났다. 2022년까지 이사직을 맡았다. 2023년 기준으로 수익률이 10배를 상회한다.2012년, 하와이 라나이 섬의 98%를 3억 달러에 매입했는데, 2020년에 팬데믹이 터지자 아에 이곳으로 이주했다. 뿐만 아니라 대저택과 쇼핑몰을 비롯해서 섬 전체를 개발중이다.
2022년,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10억 달러를 투자하며 펀딩 과정에 참여했다.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의향을 경영진에 통보할 당시 래리 앨리슨의 하와이 섬에서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2023년 6월, 스톡옵션으로 오라클 주식 525만 주를 주당 30.11 달러에 매수한 뒤, 사흘만에 주당 122 달러에 매각했다. 사흘만에 5억 달러의 시세 차익을 거두었다.
3. 사생활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을 뿐만 아니라 20대에 1960년대 캘리포니아에 불던 히피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별난 기행을 부리며 다녔다. 그러다보니 그는 실리콘밸리의 악동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3]그는 변변치 않은 직업으로 버는 돈이 없었던 20대때부터 지금까지 사치스럽게 살고 이를 과시하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다. 20대때부터 취미 생활로 요트에 빠졌는데, 은행에서 대출 받아 요트를 구매할 정도였다. 게다가 1,000달러가 넘는 자전거도 사들였고 성형 수술도 했다. 엘리슨은 자존감을 위해 사치스런 생활로 불우한 과거를 감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첫 결혼 생활도 8년 만에 이혼하게 됐다.
젊었을 때의 요트에 대한 관심 덕에 그는 무사시 같은 선체 길이 88m에 달하는 대형 요트를 포함 요트를 여러 척 가지고 있으며, 요트 경주 팀도 운영하고 있다. 1995년에는 사요나라라는 요트를 타고 아메리카컵 경기에 직접 참여해 우승한 적도 있으며, 자신의 요트 경주 팀이 2013년 아메리카컵 결승전에 진출하자 결승전을 관람해야 한다며 오라클 오픈월드 2013 기조 연설에 무단으로 빠지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여러대의 항공기도 보유하고 있으며, 항공 운전 면허도 취득했다. 그가 보유한 군용기 중에는 이탈리아의 SIAI-Marchetti에서 만든 SF.260가 있으며 MiG-29도 구매했으나 군 당국의 불허로 반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미네타 산호세 국제공항에서 한밤에 자신의 걸프스트림 V 항공기를 이륙하다 소음 억제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적도 있다.
20대 때 히피의 영향 때문인지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요트들 중 이름이 일본어인 무사시가 있으며,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전통 일본식 대저택 별장을 지어 소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래리 엘리슨은 요트 애호가답게 주로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 여러 대저택 별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2012년에 하와이 제도에서 6번째로 큰 섬인 라나이 섬의 97%를 구입해 2020년에 이곳으로 이사했다. 참고로 오라클의 본사는 원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었으며, 2020년에 텍사스 오스틴으로 옮겼다.
여성 편력이 난잡한데 이를 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 4번의 여성과 결혼 및 이혼을 했으며 이중 3명은 젊은 금발 여성이었다. 현재는 니키타 칸이라는 우크라이나 여배우와 사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녀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딸인 메건 엘리슨은 안나푸르나 픽처스의 사장, 아들인 데이비드 엘리슨은 스카이댄스 미디어의 사장이다.
스티브 잡스와의 친분이 깊다. 그의 퇴임 이후 망해가던 시절의 애플을 50억 달러에 통째로 사서 잡스를 CEO로 복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을 정도였다. 적대적인 인수를 반대한 잡스의 의사 때문에 해당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이후 투자를 단행하고 이사로 합류하며 NeXT 인수를 통해 애플의 CEO로 복귀하도록 우회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잡스의 아들도 '부자 삼촌 엘리슨'으로 그를 부를 정도였다.
4. 기타
- 2010년 더 기빙 플레지에 서명하며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했다.
- 키가 191cm나 될 정도로 장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