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탈리아어: Miracolo eucaristico di Lanciano이탈리아 란치아노 성당에서 일어난 실체변화 기적.
2. 상세
8세기경[1] 어느 날 아침, 성 바실리오 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던 중 ' 예수가 성찬 전례 중에 실제로 현존하심'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 수사 신부가 막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화를 위한 축성'을 끝낸 순간, 그는 갑자기 성체로 쓰인 제병이 인간의 살로 변하고 성혈로 쓰인 포도주는 인간의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놀란 수사 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례한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곧 뛰쳐나가서 이 소식을 란치아노 시 전체와 인근 지방들에 알렸다.1200년이 지난 뒤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럼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래된 수정 성작 안에 담겨있는 성혈은 5개의 불규칙한 형태의 핏덩어리로 응고되어 있다. 전체 무게는 16.5g이다. 얼핏 보면 빛이 바랜 것 같은데, 밝게 하여 보면 황토색 비슷한 자연적인 색을 볼 수 있다. 이 기적에 대한 소식은 널리 퍼져나갔으며, 1971년에는 과학적 검사에 이어 장엄한 공인이 있었다.
1574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서 관할 주교들에 의한 인정이 있었으나, 1970년과 1971년에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 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초(Arezzo) 병원의 수석 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Odoardo Linoli)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대성당을 맡고 있던 프란치스코회 수사 신부들의 요청에 따라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다.
검사는 2단계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리놀리 교수가 기적의 성체와 성혈의 샘플을 채취하여[2] 아레초 병원의 실험실에서 검사하는 것이었다. 2번째는 리놀리 교수가 완료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과학적인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샘플이 채취된 것은 1970년 11월 18일로 란치아노의 페란토니 대주교가 참석하였다. 아브루치 지방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및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관리하는 수도회 전체가 페란토니 대주교의 관할하에 있었다. 오전 10시 15분에 대주교는 선임자였던 프란시스 페트라르카 주교가 1886년에 만든 봉합을 열었다. 교수는 성체로부터 20mg 정도의 아주 작은 2개의 샘플을 채취했으며, 성혈로부터는 318mg을 채취하였다. 리놀리 교수는 거의 3개월에 걸쳐서 그 샘플들을 조사하였다. 그는 검사 기간 동안 시에나 대학교의 인체해부학 교수였던 로저 베르텔리의 도움을 받았다.
1971년 3월 4일,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그 성당에 수많은 학자들이 모였으며, 그곳에서 리놀리 교수는 그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의 구두 설명과 더불어 수많은 사진들과 문서들이 제시되었다. 그의 발표 내용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 성체 기적의 피는 참으로 피이며, 살은 참으로 살이다.
- 그 살은 심장 근육이다.
-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이다.
- 피와 살의 혈액형은 동일하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동일인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
- 피 안에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정상적인 비율의 단백질들이 발견되었다.
- 피에서는 또한 다음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그리고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교수는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다.
-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 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조처를 취한 흔적은 없다.
- 그러므로,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그 성체의 피의 혈액형은 AB형 이었다고 한다.
리놀리 교수의 과학적 조사는 여러 주요 의학 잡지들에 보도되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천주교를 믿는 과학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지지를 계속 받고 있다.
199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목격된 성모 마리아 성당의 성체와도 관련있다고 한다. # 흥미롭게도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교구장인 베르고글리오 대주교, 즉 프란치스코 현 교황도 해당 사건의 주요 당사자 중 일원이었다.
관련 문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