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08:01:30

란둘프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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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ulf I
생몰년도 875년경 ~ 943년 10월 4일
출생지 카푸아
사망지 베네벤토
재위 기간 901년 - 910년( 아테눌프 1세와 협치)
910년 - 943년( 아테눌프 2세, 아테눌프 3세, 란둘프 2세와 협치)

1. 개요2. 행적

1. 개요

카푸아 백작이자 베네벤토 공국 16대 대공.

2. 행적

카푸아-베네벤토 연합 대공국의 창시자인 아테눌프 1세의 장남으로, 900년 베네벤토 공국을 장악한 아버지에 의해 901년 베네벤토 공동 대공에 선임되었다. 91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카푸아-베네벤토 연합 대공국의 단독 통치자가 된 그는 911년 동생 아테눌프 2세를 공동 대공으로 세웠다. 이후 나폴리 공작 그리고리오스 4세와 동맹 조약을 체결했으며, 동로마 제국과의 동맹을 지속하면서도 봉신을 자처한 아버지와는 달리 황제의 가신이 되겠다고 서약하지 않았다.

915년, 란둘프 1세는 아버지가 추진한 사라센에 대항한 원정을 추진하기로 마음먹고 스폴레토 공국의 알베리크 1세, 살레르노 공국 과이마르 2세, 교황 요한 10세, 바리 총독부의 스트라테고스인 니키타스 피킨기오스와 연합했다. 이때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기 위해 나폴리 전임 백작 아나스타시오스 2세의 딸 게마와 결혼했고, 동생 아테눌프 2세의 딸 가이텔그리마(Gaitelgrima)를 과이마르 2세와 결혼시켰으며, 아들 아테눌프 3세를 과이마르 2세의 딸 로틸다와 결혼시켰다. 이후 스폴레토 공국의 알베리크 1세가 총사령관으로 선임된 연합군에 지원병을 파견했다.

915년 6월, 연합군은 캄포 바카노, 비아 카시아, 티볼리 및 비코바로 등지에서 무슬림군을 연이어 격파했다. 이에 알리쿠(Alliku)가 이끄는 무슬림군은 가릴리아노 강 인근의 요충지인 트레토로 철수했다. 연합군은 트레토를 포위하여 3개월간 맹공을 퍼부었고, 동로마 함대는 해상에서 구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3개월간의 공성전 끝에 식량이 바닥난 무슬림들은 포위망을 뚫고 시칠리아로 도피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전원 죽거나 사로잡혔다.

914년 또는 916년, 아테눌프 1세는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안티파토스와 파트리키오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921년 아풀리아인들이 동로마 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이 때를 틈타 아스콜리 요새를 공략하고 바리 총독부의 새 스트라테고스인 오르솔레오스를 처단했다. 그러나 922년에서 925년 사이에 사라센와 슬라브 해적들의 습격으로 인해 캄파니아가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925년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는 의미로 제국으로부터 받은 칭호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929~934년 살레르노의 과이마르 2세와 함께 동로마 제국령 아풀리아를 침공해 약탈을 자행했다. 동로마 제국은 935년 파트리스 직책을 맡고 있던 코스마스에게 11척의 함대를 이끌고 슬라브 함선 7척과 함께 아풀리아로 파견했지만 혼란 수습에 실패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베네벤토와 살레르노 대공들을 견제하기 위해 이탈리아 국왕 우고와 동맹을 맺었다. 란둘프 1세는 이에 대응해 형제 아테눌프 2세 및 아들 아테눌프 3세와 함께 나폴리 공작 요안니스 3세와 상호 원조 협약을 체결했다.

936년, 란둘프 1세는 아풀리아 지역의 만프레도니아를 공격했지만 공략에 실패했다. 937년, 우고 왕에게 고용된 마자르족이 론 계곡을 거쳐 이탈리아로 행진해 캄파니아로 진입했다. 그는 이에 맞서 싸웠지만 격퇴에 실패했고, 마자르족은 광범위한 파괴와 약탈을 자행하고 돌아갔다. 940년 란둘프 1세가 파견한 베네벤토군이 동로마 제국에 소속된 마테라를 포위 공격했지만 공략에 실패했다.

란둘프 1세는 911년 동생 아테눌프 2세를 공동 대공으로 세웠고, 933년 아들 아테눌프 3세를 공동 대공으로 선임했다. 940년 아테눌프 2세가 죽자 조카 란둘프를 공동 대공으로 세웠지만 모종의 이유로 추방했다. 이후 또다른 아들 란둘프 2세를 공동 대공으로 세웠다. 란둘프 1세가 943년 10월 4일에 사망한 뒤, 란둘프 2세가 아테눌프 3세를 살레르노 공국으로 쫓아내고 권좌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