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21:58:48

라자르 브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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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fff>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5대 데스포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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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르 브란코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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Лазар Бранковић}}}
파일:라자르 브란코비치.jpg
출생 1421년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베오그라드
사망 1458년 1월 20일 (향년 36/37세)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스메데레보
재위 세르비아 데스포티스
1456년 ~ 1458년
아버지 주라지 브란코비치
어머니 이리니 칸타쿠지니
형제 토도르, 그르구르, 마라, 스테판, 카타리나
배우자 엘레니 팔레올로기나
자녀 옐레나, 이리나, 밀리카
가문 브란코비치 가문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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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5대 데스포티스.

2. 생애

1421년경 코소보와 코파오니크 산지, 타라 강, 모라차 강 상류를 중심으로 페치, 프리즈렌, 부치트른, 즈베칸, 코마라니, 트레프차 시를 점거하던 세르비아 영주 주라지 브란코비치 모레아 전제군주국 데스포티스 디미트리오스 칸타쿠지노스의 딸 이리니 칸타쿠지니의 4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토도르, 그르구르, 마라, 스테판, 카타리나가 있었다. 1446년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데스포티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딸 엘레니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했다. 당시 큰형 토도르는 이미 죽었고, 두 형 그르구르와 스테판은 오스만 제국군에 붙잡혔을 때 실명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그가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다.

1456년 12월 24일 아버지가 사망한 후 세르비아 데스포티스가 된 그는 1457년 1월 오스만 제국 파디샤 메흐메트 2세 대한 가신 의무 갱신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면서도 헝가리 왕국의 가신을 자처했으며, 헝가리 국왕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가 후녀디 라슬로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에 참여했다. 이후 헝가리 정계가 내전에 휘말리자, 라디슬라우스에 반기를 든 후녀디 가문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후녀디 가문의 영지에 속한 코빈 등 다뉴브 강변 요새들을 공략했다.

한편, 그는 어머니 이리니와 갈등을 벌인 끝에 어머니가 정치에 참여할 권한을 박탈하고 가혹하게 대했다. 이에 형 그르구르, 외삼촌 토마스, 여자 형제 마라가 이리니와 함께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이리니는 도중에 붙잡힌 뒤 루드니크에 감금되었고, 얼마 후 사망했다. 일부 기록에서는 라자르가 어머니를 독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1457년 12월 오스만 제국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라디슬라우스에게 구원군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라디슬라우스의 응답이 오기 전인 1458년 1월 20일 스메데레보에서 급사했다.

라자르는 생전에 아내 엘레니 팔레올로기나와의 사이에서 옐레나, 이리나, 말리카를 낳았다. 옐레나는 세르비아 전제군주국의 마지막 데스포티스이자 보스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인 스테판 토마셰비치의 왕비가 되었다. 이리나는 알바니아의 영주 스컨데르베우의 아들인 존 2세 카스트리오티의 아내가 되었다. 밀리카는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마지막 데스포티스인 레오나르도 3세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