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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서의 이러한 개별 교회들은 비록 예법이 다를지라도, 이를테면 전례와 교회 규범과 영적 유산이 어느 정도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똑같이 교황의 사목적 통치에 맡겨져 있다. 교황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보편 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지닌 복된 베드로를 계승하였다. 개별 교회들은 동등한 품위를 지니므로, 어떠한 교회도
그 예법 때문에 다른 교회보다 앞설 수 없고, 같은 권리를 누리고 같은 의무를 지니며, 교황의 지도 아래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야(마르 16,15 참조) 할 같은 의무를 지닌다.
9.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들은 특별한 명예를 지니며 아버지와 수장으로서 자기 총대교구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각 교회의 옛 전통과 세계 공의회들의 교령에 따라, 총대주교들의 권리와 특전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현대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야 하겠지만, 이 권리와 특전은 동서의 교회가 일치되어 있던 때에 널리 누렸던 것이다.
총대주교들은 자기 교회회의와 더불어 최고 권위를 이루고 총대주교구의 모든 문제를 다루며, 총대주교구 지역 안에서 자기 예법의 새로운 교구를 설립하고 주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진다. 다만, 모든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교황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는 유지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Orientalium Ecclesiarum)』 중
9.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들은 특별한 명예를 지니며 아버지와 수장으로서 자기 총대교구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각 교회의 옛 전통과 세계 공의회들의 교령에 따라, 총대주교들의 권리와 특전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현대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야 하겠지만, 이 권리와 특전은 동서의 교회가 일치되어 있던 때에 널리 누렸던 것이다.
총대주교들은 자기 교회회의와 더불어 최고 권위를 이루고 총대주교구의 모든 문제를 다루며, 총대주교구 지역 안에서 자기 예법의 새로운 교구를 설립하고 주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진다. 다만, 모든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교황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는 유지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Orientalium Ecclesiarum)』 중
라틴어 | Ecclesiae Catholicae Orientales |
그리스어 | Ανατολικές Καθολικές Εκκλησίες |
우크라이나어 | Східні католицькі церкви |
프랑스어 | Églises catholiques orientales |
이탈리아어 | Chiese cattoliche di rito orientale |
영어 | Eastern Catholic Churches |
1. 개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여 가톨릭 교회의 일부를 이루는, 그러면서도 동방 예법을 따르는 그리스도교- 가톨릭 교회들의 총칭.2. 가톨릭과의 일치
동방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의 일부이므로 교리는 전체 가톨릭 교회와 완전히 동일하지만 예법에서 고유한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자체적인 교구의 설립 및 주교의 임명이 가능한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1] 전례형식 등 “외양”은 일부 예외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라틴 전례보다는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전례와 공통점이 많다.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를 제외한 모든 동방 가톨릭 교회는 기혼자도 사제로 서품받을 수 있다.[2]그러나 당연하게도 가톨릭교회와 다른 별개의 교회나 교파가 아니며 엄연히 로마의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완전한 가톨릭 교회다. 당장 한국의 일반 천주교 평신도도 특별한 법적 장애가 없는 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와 성사에 제한 없이 참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쉽게 말해 천주교 신자의 미사 참례 의무 문제에서 로마 전례에 따른 미사를 동방 가톨릭 교회의 미사로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학적으로 완전 동일한 미사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교회의 성찬예배는 특수한 경우에만 인정하는데 정교회나 교황청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일부 전통 가톨릭 단체들과 달리 가톨릭 교회법 상으로 성사의 합법성[3]을 온전히 인정받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로마(라틴) 예법을 따르는 교회의 비율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로마 예법이 동방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개별 예법들보다 우월하다고 간주되지 아니하고 동방 가톨릭 교회 소속 추기경[4]에겐 콘클라베의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동등하게 주어진다. 오히려 교황령으로 반포된 가톨릭 교회의 통일 교회법전은 동방 가톨릭 교회에는 적용되지 않으며[5] 자치교회별로 그 예법을 보존하기 위한 별도의 자치법규가 적용되고 있다. 동방 가톨릭 교회법으로 총 23개 동방 가톨릭 자치교회가 인정되고 있는데 동방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총 신자 수 대비 1.5% 가량인 1900~20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부가 교황수위권을 받아들이고 가톨릭 교회와 완전 상통(full communion)을 이루어 다시 일치한 경우가 많으므로 과거에는 '귀일(歸一)교회'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나 마론파처럼 공식적으로 교황좌와의 일치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교회도 있으므로 '귀일교회'는 동방 가톨릭 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적절한 명칭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 동방 가톨릭 교회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온 풍부한 전례와 전통 유산을 간직한 중요한 지체로서 재발견되고 있으며 교황청 동방교회성에서 이 교회들을 특별히 관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IS 때문에 많은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2010년대부터 존립이 위협받는 실정이다. 교황청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Aid to the Church in Need) (한국지부 홈페이지)에서는 특히 동방 가톨릭 교회의 위험한 상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며 원조한다.
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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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가톨릭 교회 중 신도 수가 제일 많은 교회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며 그 다음은 남 인도 케랄라의 시로말라바르 가톨릭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동유럽 일대 및 레반트에 몰려 있으나 시로말란카라와 시로말라바르 교회는 남인도 케랄라에, 이탈리아-알바니아 교회는 남부 이탈리아에 있다. 루테니아 교회는 원래 현재의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해당하는 루테니아가 중심지였지만 해당 지역이 소련에 합병된 후 동유럽에서는 거의 소멸하고 현재는 미국 피츠버그를 중심지로 하고 있다. 아시리아 동방교회도 이와 비슷하게 1940년 미국 시카고로 중심지를 옮겼지만 75년 만인 2015년에 이라크 아르빌로 복귀했다.
3.1. 알렉산드리아 예법
- 콥트 가톨릭 교회 -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 보유
-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
- 에리트레아 가톨릭 교회
3.2. 칼데아 예법
-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교회 - 신자 수 390만으로 2위이며, 상급대주교좌 보유(에르나쿨람-앙가말리). 인도 남부 케랄라 주가 중심이다. 이 교회 소속 프란치스코회 수녀 알폰사 무타투파다투(Alphonsa Muttathupadathu: 1910~1946)를 2008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최초의 인도인 성녀로서 시성했다.
- 칼데아 가톨릭 교회 - 바빌론 총대주교좌 보유.
3.3. 안티오키아 예법
- 마론파 - 신자 수 329만으로 3위. 레바논과 시리아에 많으며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 시리아 가톨릭 교회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교회 - 인도 남부 케랄라 주가 중심. 상급대주교좌(트리반드룸) 보유.
3.4. 아르메니아 예법
-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밀려서 큰 존재감은 없다. 킬리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3.5. 비잔티움(그리스) 예법
- 알바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교회
- 불가리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크로아티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 비잔티움 가톨릭 교회
- 그리스 비잔티움 가톨릭 교회
- 헝가리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이탈리아-알바니아 가톨릭 교회 - 이탈리아 남부에 분포하며 신자들은 15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로 온 알바니아와 그리스계 사람들의 후손이거나 시칠리아에 살던 그리스인의 후손이다.
- 마케도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신자 수 160만 명 가량으로 4위 규모이며,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 루마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상급대주교좌(퍼거라슈- 알바이울리아) 보유. 합스부르크 가문의 비호를 받으며 북부 트란실바니아를 중심으로 상당한 교세를 자랑했으나 공산화 이후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당국의 대규모 탄압을 받아 교세가 대폭 줄어들었다.
-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교세가 너무나도 작아서 자치 교회는 없고 러시아에 설정된 라틴 예법 교구 관하에 몇 개의 교회가 있는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에서는 1905년까지 동방 가톨릭이 불법이었고 소련 시대에도 엄청나게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게 없다.
-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카르파티아 산맥에 사는 우크라이나인, 루신인이 믿었던 동방 가톨릭 교회. 루테니아는 라틴어로 동슬라브족을 뜻한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의 탄압으로 본거지를 미국 피츠버그로 옮겼다. 피츠버그에 대주교구가 운영 중이다. 현재 신자는 40만명 가량이다.
- 슬로바키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슬로바키아 산악 지대의 루신인들이 믿는다. 신자 수 20~40만여 명 가량이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산하로 운영되고 있다.
-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 - 동방 가톨릭 교회 중 가장 많은 신자들이 믿는 교회이며, 신자 수 430~535만 가량. 르비우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주로 믿으며 상급대주교좌(키이우-할리치) 보유.
- 조지아 비잔티움 전례 가톨릭 교회
4. 유래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 가톨릭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파 중 일부가 다시 분열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게 된 경우, 다시 말해 한 번 분리되었다가 다시 넘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동서 교회의 분열 이전에 생겨난 마론파와 이탈리아-알바니아 가톨릭 교회는 한 번도 로마 교회와 공식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독립된 예법을 유지해 온 것으로 취급된다.4.1. 동서 대분열 이전
- 마론파: 성 마론을 따르는 은둔 수도자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그리스도론이 이단으로 단죄되면서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비칼케돈파 교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레바논 산지로 피신한 사람들이 독립교단화하면서 생겨난 교파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시리아를 정복하면서 한동안 지정학적으로 고립되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사도전승이 계속되었으므로 이는 교리적 단절이 아닌 물리적 단절에 불과했고 십자군들이 들어오면서 로마와 연결되었다.
- 이탈리아-알바니아 가톨릭 교회: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이래로 동로마의 영토였으며 11세기의 노르만 정복 이전까지 콘스탄티노플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던 남부 이탈리아의 동방 정교회 소속 교회들이 노르만 정복 이후 로마 교회의 영향하에 놓임으로써 생겨난 동방 정교회의 잔재들이다. 15세기 이후에 유입된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교회가 유지되었으며 1784년에 자치권을 획득했다.
4.2. 정교회에서 분리
대부분의 그리스(비잔티움) 예법 교회들이 여기에 속한다. 1439년 피렌체에서 열린 가톨릭-정교회 공동 공의회에서 제안된 것에 근거한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가까운 시점에서 동로마 황제와 총대주교는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당하는 와중에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교황청은 여기에 교황의 권위 아래 두 교회가 연합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동로마 제국 위정자들은 정교회를 가톨릭에 복속시키고 정교회 교리를 가톨릭 교리로 대체하는 조건에 동의하였다. 특히 이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필리오퀘, 즉 성령이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있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동로마 지도자들은 사제의 결혼 제도와 그리스어, 정교회 예배의식을 보존할 수 있었다.- 1596년 브레스트 연합으로 분리된 교회: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교회. 근세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대부분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였기 때문에 가톨릭의 영향권 하에 있었고 루테니아 일대의 정교회 신도들은 이웃 적국이자 정교회 국가였던 루스 차르국에 이반할 우려 등등의 이유로 반강제로 그리스 가톨릭 교회로 개종당했다. 그러나 나중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권을 상실하고 러시아가 들어옴으로써 이 지역은 또다시 정교회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는데 당연히 분리를 결정한 이 지역 교회들은 다시 돌아온 정교회 신자들의 박해를 받았고(...) 결국 가톨릭 세력권인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된 갈리치아, 자카르파탸 지역의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만 살아남아 큰 피해를 모면했다.
- 1646년 우즈호로드 연합으로 분리된 교회들: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와 우크라이나 교회의 일부. 브레스트 연합과 비슷하게 가톨릭 세력권인 헝가리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던 카르파티아 지역의 교회가 콘스탄티노플과 단절한 경우다. 이곳은 20세기 전반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향권에 있어서 박해를 크게 받지 않았지만 2차 대전 이후 소련이 들어오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6] 결국 루테니아 교회는 박해 때문에 본거지의 세력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고 미국의 교세가 더 클 지경이 되었다.
- 다른 시기에 분리된 교회들
-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비잔티움 가톨릭 교회: 1611년 세르비아 정교회로부터 분리. 당시 크로아티아 북부와 슬로베니아 지역은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최전선으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의 정교회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이들 이주민들을 정교회로부터 분리시켜 가톨릭 소속의 자치 교회로 만들었다.
- 루마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1698년 분리. 합스부르크 가문이 트란실바니아를 차지하면서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루마니아인 정교회 교구들이 가톨릭과 일치하게 되었다.
-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 1726년 분리. 멜키트는 시리아와 이집트 등지에서 비칼케돈파 신자( 오리엔트 정교회)들이 칼케돈파 신자들을 왕당파라고 까는 데 쓰던 멸칭에서 유래한 말이다. 1724년 선출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키릴로스 6세는 그의 친가톨릭적 성향을 우려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부터 파문당했고 이후 교황으로부터 정당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임을 인정받음으로써 시리아의 칼케돈파 동방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어졌다.
- 불가리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마케도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1861년 최초 분리. 19세기 이후 불가리아 민족주의에 의해 촉발된 일련의 독립운동에 의해 분리되었다. 이후 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에 속하게 되어 불가리아와 다른 길을 걷게 됨으로써 두 교단 사이에 분리가 일어났고 200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마케도니아 교황 직할 서리구를 설치하면서 공식적으로 다른 교단이 되었다.
- 그리스 비잔티움 가톨릭 교회: 1826년 분리(독립은 1911년). 가톨릭 선교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소수 정교회 교도들이 독립하여 설립되었다.
-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1906년 분리. 1905년까지 불법 상태에 있었던 극소수 그리스 가톨릭 신자들이 1905년의 종교 자유 칙령에 의해 자유를 얻으면서 조직화되어서 생겨난 교단.
4.3. 오리엔트 정교회에서 분리
- 콥트 가톨릭 교회: 공식적으로는 1741년에 콥트 정교회의 예루살렘 주교 안바 아타나시오스가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분리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824년 이집트 총독의 요청에 의해 콥트 가톨릭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가 설정되면서 분리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19세기 이후 이집트 총독의 허가 하에 독립 교회를 세우면서 신자 수가 늘어났다.
-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 1846년 공식적으로 분리. 참고로 에티오피아 전례가 아닌 라틴 전례의 로마 가톨릭은 이탈리아 왕국 치하에서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지만 에티오피아와 이탈리아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및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에티오피아 전례)에 비해 세가 약한 편이다.
- 에리트리아 가톨릭 교회 : 2015년 1월 19일자로 설립된 동방 가톨릭 교회로, 위에서 언급한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해서 나왔다.
4.4. 기타 오리엔트 정교회로부터 분리
- 시리아 가톨릭 교회: 시리아 정교회로부터 1781년 분리. 주변의 멜키트-그리스 가톨릭 교도, 마론파 교도들과 교류하며 친 가톨릭적 성향을 가지게 된 미카엘 자르웨가 1781년 시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로 선출되면서 동방 가톨릭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가톨릭과의 일치에 반대한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새 총대주교를 선출하여 시리아 정교회를 이어갔다.
-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로부터 1742년 분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자 중 베드로좌와의 일치를 주장한 일부 신자 집단이 1740년 다른 그리스 가톨릭 교단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인 총대주교를 세우면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
-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교회: 1930년 분리. 1655년의 말라바르 교회 분열 과정에서 시리아 정교회 측 대주교를 받아들인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소속 신자들 중 일부가 다시 가톨릭과의 일치를 받아들이면서 생겨났다.
4.5. 네스토리우스파로부터 분리
- 칼데아 가톨릭: 현재의 교단은 1692년 분리. 1553년부터 시작된 총대주교 자리의 숙질계승 문제를 두고 벌어진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분열 중 몇몇 파벌이 로마 교회와 연합하면서 분리되었다. 처음에는 숙질계승에 반대한 신파 총대주교가 로마와 일치했지만 1672년에 신파가 다시 둘로 갈라지고 그 중 정통파는 1692년 로마교회와 결별하여 다시 아시리아 동방교회로 돌아갔다. 1780년에는 구파가 로마 교회와 일치하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가톨릭 소속 신파 일부와 일치함으로써 지금의 교회 체제가 완성되었다.
-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교회: 1665년 분리. 원래 남인도의 말라바르 교회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일원이었지만 중동 지역이 이슬람화되고 15세기 말 이래로 포르투갈인이 도래하면서 가톨릭 교회와 교류가 늘어났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이 교회를 강제로 라틴 예법에 맞추게 하려는 병크를 터뜨려 다시 독립화되었다가 1655년 교황 사절이 설득하여 많은 교회가 다시 로마와 일치했다. 공식적으로 이전까지 말라바르 교회의 대주교는 시리아에서 온 대주교가 맡고 대주교가 없을 때에는 수석부제가 교회를 다스림이 일반적이었다. 가톨릭으로 돌아온 교회들은 1665년 시리아 정교회 측에서 보낸 대주교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대주교를 선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분리되었다.
[1]
여기에서 예법은 전례만을 일컫지 않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이를테면 전례와 교회 규범과 영적 유산이 속한다.
[2]
이 부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사제생활교령 16)"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3]
유효성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4]
대부분 해당 교회의 총대주교 또는 상급대주교가 겸한다.
[5]
교회법 제1조 “이 교회법은 라틴 교회에만 적용된다.”
[6]
독소전쟁을 계기로
스탈린이 소련 인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동슬라브인의 전통 신앙인 정교회는 탄압을 어느 정도 풀어줬지만 다른 종교는 그딴 거 없었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는 침략자 독일 놈들의 종교라고 해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더군다나 동방 가톨릭은 가톨릭 세력이 정교회 세력 약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정교회에서 분리시킨 교회니 더더욱 심한 박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