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독트린(Doctrine)은 국가의 수반[1]이 향후 국가의 외교 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국제 사회에 표방하는 정책상의 원칙이나 교리를 뜻하는 정치용어다.독트린은 다른 나라와의 협상이 아니라 자국의 외교방침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그 나라의 국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 열강들로부터 '땅은 크지만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신생국'으로 취급받았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계기가 먼로 독트린이었으며, 후술할 역대 독트린을 선언한 국가들의 면면을 봐도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물론이고, 개중에 가장 국력이 약했던 서독조차도 세계 어디에서나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다.
2. 세계사의 역대 독트린
2.1. 미국
-
먼로 독트린 (Monroe Doctrine)
최초의 독트린이자 가장 오래 유지된 독트린.
1823년 12월에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에 의해 제창된 미국의 외교 방침으로서, 유럽 열강으로 하여금 더 이상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거나 미국이나 멕시코 등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주권 국가에 대한 간섭을 거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역시 유럽 문제에서 한 발을 빼게 되면서 잘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침은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메리카 대륙은 전부 미국의 것이라는 속뜻이 깔려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유럽 열강의 간섭은 줄었지만, 이를 대신해서 미국의 영향력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크게 퍼지기 시작한 것도 먼로 독트린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
스팀슨 독트린 (Stimson Doctrine)
1932년 헨리 L. 스팀슨 국무장관이 발표한 미국의 외교 방침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 만주국을 수립하자 미국 정부에서는 중국에 대한 문호개방정책과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의 만주국 수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
트루먼 독트린 (Truman Doctrine)
냉전의 시작을 알린 독트린.
1947년 3월에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이 의회에서 선언한 미국의 외교 정책에 관한 원칙으로서, 그 내용은 공산주의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의 정부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즉 공산국가와 싸운다면 미국이 돕겠다는 뜻. 따라서 당시 이 원칙에 따라 그리스 왕국과 튀르키예에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원조를 했고, 마셜 플랜도 비슷한 취지였다.
-
아이젠하워 독트린 (Eisenhower Doctrine)
1957년 1월에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의회에 보낸 중동특별교서이다. 1956년의 수에즈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물러난 다음, 중동을 지원해준 소련에 전체적으로 우호적으로 변한 중동에서의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중동지역에 미군의 주둔 권한을 대통령에게 줄 것, 중동지역에 대한 경제원조로서 이후 2년 사이에 4억 달러를 지출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중동지역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
케네디 독트린 (Kennedy Doctrine)
1961년에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에 의해 제창되었다. 남미( 카리브해) 지역의 연안국을 대상으로 한 공산세력에 대한 봉쇄정책을 말한다. 쿠바의 공산 혁명에 식겁해서 만들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함께 해결.
-
닉슨 독트린 (Nixon Doctrine)
1969년에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발표한 고립주의 정책이다. 주한미군 감축 발상과 데탕트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미국은 아시아 제국(諸國)과의 조약상 약속을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그에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 국가’로서 그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지만 직접적, 군사적 또는 정치적인 과잉개입은 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사를 가진 아시아 각국의 자주적 행동을 측면 지원한다. 아시아의 각국에 대한 원조는 경제중심으로 바꾸며 여러 나라 상호 원조 방식을 강화하여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아시아의 각국이 5∼10년의 장래에는 상호안전보장을 위한 군사기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
카터 독트린 (Carter Doctrine)
1980년에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에 의해 제창되었다. 페르시아 만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반응이다.
-
레이건 독트린 (Reagan Doctrine)
1986년에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제창되었다. 미국의 공산세력에 대한 신(新) 봉쇄정책, 우익혁명 지원, 경제봉쇄, 군사력 우위 등으로 냉전 종식을 꾀했다. 이란 - 콘트라 사건이 중남미의 우익혁명을 지원한 대표적인 예다.
-
클린턴 독트린 (Clinton Doctrine)
1995년에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 의해 제창되었다. 아프리카와 동유럽 인종학살에 대한 국제적 조치 강구가 주된 내용으로 르완다 내전 개입, 유고 내전( 보스니아 내전) 개입이 이루어졌다.
-
부시 독트린 (Bush Doctrine)
2001년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에 의해 제창되었다. 선제 공격 독트린(Preemptive Attack Doctrine)이라고도 한다. 이전의 미국 국가안보전략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예방적 억지전략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나, 테러리스트 같은 비국가행위자의 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위협이 가시적이지 않고 예측가능하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 선제공격전략을 채택하게 되었다. 국제핵안전조사활동(ABM), 교토 의정서 채택으로 인한 환경보호, 테러지원국에 대한 차단 및 전쟁 수행이 주된 내용이었다. 악의 축 발언으로 대표되는 선악(善惡) 이분법과 네오콘( 신보수주의)으로 대표되는 적극적 군사 개입주의가 대표적인 예다.
-
오바마 독트린 (Obama Doctrine)
2009년에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 의해 제창되었다. 주된 내용은 인권 관련 정책으로, 관타나모 죄수 석방문제, 전쟁포로 대우문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2.2. 소련
2.3. 서독
-
할슈타인 독트린 (Hallstein Doktrin)
1955년 서독의 외무차관이었던 발터 할슈타인의 이름을 딴 외교정책으로, 독일의 유일한 합법 정부는 독일연방공화국[2]이며, 독일민주공화국[3]을 국가로 승인하거나 동독과 수교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내용[4]이다.하나의 독일동방 정책으로 유명무실해졌고, 1972년에 동서독기본조약 체결과 함께 폐지되었다.
2.4. 핀란드
-
파시키비-케코넨 독트린 (Paasikiven-Kekkosen Linja)
핀란드 제7대 대통령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과 제8대 대통령 우르호 케코넨의 외교 정책으로 핀란드가 소련으로부터 자주적으로 국토를 보호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도록 이전부터 이어져 온 수동적인 중립국의 위치보다는 능동적인 중립국으로서 외교 정책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3. 창작물에서
-
은하제국 -
타킨 독트린 (Tarkin Doctrine)
은하제국의 대총독 윌허프 타킨이 언론 인터뷰에 발표한 성명서. "공포에 의한 질서"라는 표제 아래 은하 제국이 어떻게 데스 스타를 위시한 공포정책으로 가게 되었는지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
칭기즈칸 독트린
작중 주인공을 위시한 대한제국이 결성한 '범아시아 조약기구'라는 범국가단체를 작품의 미국이 칭기즈칸 독트린으로 명명한 것으로 '아시아주의'에 입각한 대한제국이 아시아의 번국(or 일본과 같은 독립국)을 감독하고 통치하는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잘 써먹고 있다.
-
세계대전Z - 창 독트린
레데커 플랜을 밴치마킹하여 대한민국에서 사용한 것으로 작전의 세부사항은 레데커 플랜과 유사하다. 대한민국은 국가의 특성 땨문에 레데커 플랜을 쉽게 적용시키지 못했고, 좀비 때문에 국가가 붕괴될 위험에 처했을 때 겨우 시행되어 국가를 유지시키는데 성공했다.
4. 군사용어로 쓰일 때
- 군사용어로 쓰일 때는 보통 "전투 교리"로 번역되며, 말 그대로 "군사 행동 상의 방침"을 의미한다.
- EVE 온라인에서는 작전에 사용할 함선과 피팅(장비세팅)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