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0 13:28:01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

멤버
이름
포지션 관련항목/키워드
(멤버별)
숀 맥기네스 보컬, 테너 밴조, 만돌린 창립 멤버
피어스 플렁킷 보컬, 기타 2013년경 합류
톰 밀러 서브보컬, 베이스 2008년경 합류
홈페이지: http://dublincityramblers.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ages/Dublin-City-Ramblers-Fan-Page/223644963693

Dublin City Ramblers. 약자는 DCR 디시인사이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1. 개요2. 역사

1. 개요


1963년 조직되어 1970년 현재 체제로 개편한 아일랜드 포크 음악 그룹이다. 근래에는 숀 맥기네스 외의 나머지 두 멤버는 시도때도 없이 바뀌는 통에 마치 유라시아 대륙 반대쪽 끝에 있는 반도 국가 모 걸그룹이나 모 걸그룹처럼 창립 멤버인 숀 맥기네스(Sean McGuiness) 1인 그룹이나 다름없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1980년대에는 아일랜드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자주 오르내리며 포크 음악계의 진정한 최종보스라 할 수 있는 클랜시 브라더스 더블리너스에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고 울프 톤스(The Wolfe Tones)와는 거의 막상막하의 인기를 끌었던 그룹.

해당 항목에서 서술한 대로 클랜시 브라더스가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소녀시대, 더블리너스가 2NE1이라면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는 전성기 때를 기준으로 카라 씨스타 정도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은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숀 맥기네스 1인 그룹이라는 점에서 영락없는 포미닛이나 미쓰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도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일단 현 멤버는 위에 나온 대로 세 명. 이 가운데 베이스 연주자인 톰 밀러는 이청용에게 살인 태클을 걸었던 그 악명 높은 축구선수와 동명이인이다. 그런데 위에 나온 멤버별 정보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숀 맥기네스만 빼면 합류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한 합류 시기도 그냥 아일랜드 현지 언론에 기사 나온 것을 보고 대충 짐작만 한 것이다. 이것은 2002년 이후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라는 그룹이 끊임없이 멤버가 교체되고 있어서 도무지 겉잡을 수가 없기 때문. 어느 정도냐 하면,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도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 멤버 명단이 없다. 숀 맥기네스 한 명의 이름만 올라와 있고 나머지 두 멤버 이름은 없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자주 바뀌길래 공식 홈페이지에서조차 이름마저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도 톰 밀러는 몇 년간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 멤버로 눌러앉은 모양인데, 나머지 한 명은 문자 그대로 겉잡을 수 없이 자주 바뀐다. 심심하면 바뀌는 것이 이 한 자리인데, 이 포지션이 정말 흔하디 흔한 보컬 및 기타 포지션이라 더더욱 그러한 듯.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나온다. 어쨌든 현재의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는 심심하면 멤버가 공식 발표도 없이 교체되어서 도무지 겉잡을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분위기는 아마 숀 맥기네스 은퇴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1]

그렇다고 해서 결코 수준이 낮은 그룹이냐 하면 절대 아니다. 한때 차트 1위를 석권했던 그룹이고 <The Rare Old Times>, <The Ferryman>, <Flight of Earls> 같은 주옥 같은 곡들로 아일랜드 포크 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1990년과 1994년 월드컵에 출전한 아일랜드 축구 대표팀의 응원가도 불렀으니 결단코 폄하할 수는 없는 것. 포미닛 현아, 미쓰에이 수지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라 해서 포미닛과 미쓰에이를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현아와 수지의 스타일은 문자 그대로 정반대지만

요약하자면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는 클랜시 브라더스나 더블리너스 같은 레전설급은 아니라도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이라 할 수 있겠다.

2. 역사

일단 그룹 이름을 몇 차례 바꾸었고, 게다가 처음부터 프로였던 것도 아닌 관계로 그룹 역사가 좀 복잡하다. 공식 데뷔 연도는 DCR 홈페이지에서 밝혔듯 1963년. 이 때 맥기네스 나이가 몇이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본인이 생년월일을 비공개로 하고 있어서(...)) 사진이나 여러 정황을 볼 때 10대 후반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2]
이 때 이름은 졸리 팅커스(The Jolly Tinkers)였고, 멤버는 숀 맥기네스와 형제인 맷 맥기네스(Matt McGuiness), 팻 커민스(Pat Cummins) 이렇게 3명이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jollytinkers.jpg
1963년경의 졸리 팅커스. 왼쪽부터 팻 커민스, 숀 맥기네스, 맷 맥기네스.

그런데 이런 이름을 가진 그룹이 하도 많은 관계로(...) 1966년에 이름을 퀘어 펠러스(The Quare Fellas)로 바꾸었다고. 그리고 이보다 전인지 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숀 맥기네스와 함께 DCR 고정 멤버로 인기몰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 패치 워천(Patsy Watchorn)이 그룹에 합류했다. 퀘어 펠러스라는 이름은 아일랜드의 저명한 극작가 브렌단 비언의 연극 제목에서 따온 것. 아무튼 이렇게 숀 맥기네스(밴조, 만돌린, 보컬), 맷 맥기네스, 팻 커민스, 패치 워천(밴조, 보컬) 라인업으로, 1969년에 퀘어 펠러스는 첫 앨범을 냈다. 제목은 <At Home>.


1969년 발매된 퀘어 펠러스의 첫 앨범.

1집 발매 이후 팻 커민스가 그룹을 탈퇴하고, 브렌단 리슨(Brendan Leeson)이 합류했다. 그리고 1970년에 두 번째 앨범인 <A Fond Tale>이 나왔다. 그러나 같은 해, 그룹은 해체되었다. 그리고 숀 맥기네스와 패치 워천, 믹 크로티(Mick Crotty)와 케빈 제라티(Kevin Gerahty) 4명이 현재의 이름인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란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졸리 팅커스, 퀘어 펠러스, DCR 모두 아마추어 그룹이었다. 1972년 DCR은 마침내 프로로 전환을 했다. 2012년에 DCR 40주년 투어를 한 것도 이 때를 그룹이 본격 활동을 시작한 시점으로 잡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프로로 전환한 후, DCR은 1974년까지 5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포크 음악계에 자리를 잡았다.

1972년경의 라인업.
패치 워천. 믹 크로티.
숀 맥기네스. 케빈 제라티.

1976년경 믹 크로티가 그룹을 탈퇴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필립 매카프리(Philip McCaffery)가 그룹에 합류했다. 케빈 제라티도 그룹을 탈퇴하고, 성만 다른 케빈 몰로이(Kevin Molloy)가 기타 및 메인보컬을 맡은 멤버로 합류했다.[3] 1977년에 DCR은 <Guinness Record of Irish Ballads — Volume Three>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이 때부터, 패치 워천과 숀 맥기네스, 필립 매카프리와 케빈 몰로이로 구성된 DCR의 리즈시절이 시작되니...

1978년경의 라인업.
패치 워천. 숀 맥기네스.
케빈 몰로이. 필립 매카프리.

DCR이 1977년에 발표한 싱글 <Rare Ould Times>는 아일랜드 차트 22위에 오르며 DCR의 히트 곡으로 등극했다. 물론 이 곡은 DCR 말고도 다른 가수들도 많이 불렀으니 그렇게까지 DCR을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 곡으로 DCR은 일약 스타덤에 등극했다. 1980년에는 (뒤에 더블리너스 멤버이며 전속 PD가 되는)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의 먼치킨 PD 에이몬 캠벨이 프로듀싱을 맡은 <Rare Ould Times> 앨범을 발매했고, 이듬해 1981년에는 싱글 <The Ferryman>과 <The Punch And Judy Man>으로 아일랜드 차트 6위 자리를 두 번이나 차지했다. 이렇게 슈퍼스타가 된 DCR은 1980년대 초반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클랜시 브라더스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더블리너스, 토미 메이컴 리엄 클랜시 듀엣, 그리고 울프 톤스와 함께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 뒤에는 먼치킨 PD 에이몬 캠벨이 한몫했다.

1987년 <Flight Of Earls> 싱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차트 6위에 오른 DCR의 인기는 문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에이몬 캠벨이 1988년 더블리너스 멤버로 합류한 뒤에도 DCR 앨범을 계속해서 프로듀싱을 했던 것. 그러나, 1989년 필립 매카프리와 케빈 몰로이가 그룹을 탈퇴했다. 졸지에 DCR에는 고정 멤버인 숀 맥기네스와 패치 워천만 남은 것. 바로 전 해까지 발리콘(The Barleycorn)에서 기타와 메인보컬을 맡고 있던 패디 스위니(Paddy Sweeny)가 그룹에 합류했고, 그룹은 일단 3인조로 활동을 재개했다. 1990년 DCR은 싱글 <Que Sera, Sera>로 아일랜드 차트 3위에 오르며 예전의 인기를 회복했다. 물론 역시 PD는 에이몬 캠벨.


1989년경의 DCR.

그리고 이 무렵, 아일랜드 축구 대표팀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여기에 맞춰서 DCR은 <Boys In Green>이라는 아일랜드 대표팀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 1992년 베이스 기타를 치는 셰이 캐버너(Shay Kavanagh)가 네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DCR은 예전의 4인조 체제로 복귀하여 <Live At Johnny Fox's Pub>이라는 라이브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에이몬 캠벨이 아닌 다른 PD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1994년, DCR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아일랜드 대표팀 응원가가 포함되어 있는 앨범 <Irish Football & Pub Songs>를 발매했다. 역시 PD는 에이몬 캠벨. 그리고 이듬해에는 <The Craic & Porter Black>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으나...

같은 해, 30년 가까이 그룹의 고정 멤버이자 메인 보컬을 맡고 있었던 패치 워천이 그룹을 탈퇴했다.

패치 워천이 그룹을 탈퇴한 이후 DCR은 슬슬 예전의 슈퍼스타 자리를 내주는 분위기가 되어 갔다. 대부분의 히트 곡들이 패치 워천이 메인보컬을 불렀기 때문에, 그룹에서 패치 워천이 차지하는 비중이 하도 높았던 것. 숀 맥기네스는 주로 반주를 담당하기 때문에 그룹을 처음 결성한 멤버이긴 해도 그렇게까지 비중이 높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바이올린과 틴 휘슬을 다루는 브렌단 도일(Brendan Doyle)이 그룹에 합류했고, DCR은 1998년 아일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널리 불리는 곡들을 수록한 <Raise the Roof>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발매한 이후 브렌단 도일은 그룹을 탈퇴했고, DCR은 다시 3인조가 되었다.


2000년경의 DCR. 왼쪽부터 패디 스위니, 셰이 캐버너, 숀 맥기네스.

2000년 DCR은 <On Holy Ground-A Tribute to the Clancy Brothers and Tommy Makem>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클랜시 브라더스가 불러서 인기를 끈 곡들을 자기네들 버전으로 불러서 녹음한 앨범이다.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클랜시 브라더스라는 레전설이 불러서 히트를 기록한 곡들, 다시 말해 검증된 곡들이니 DCR 입장에서는 나름 괜찮은 앨범이었던 셈. 그러나...

2002년, 셰이 캐버너와 패디 스위니가 그룹을 탈퇴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창립 멤버이며 그룹 결성을 주도한 숀 맥기네스 한 명뿐... 이거야말로 진정한 1인 그룹. 이후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는 문자 그대로 이 멤버 저 멤버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끊임없이 멤버가 교체되기를 11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는 들어올 때도 마음대로고 나올 때도 마음대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셈. 멤버 교체가 하도 심해서 앨범이 나오지 않은 해의 멤버는 한국 상황에서는 인터넷 신문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렇게 멤버가 쉴새 없이 교체되는 바람에 심지어 DCR 홈페이지에도 멤버 이름은 숀 맥기네스 한 명밖에 안 나온다!

사실상 2002년 이후의 DCR은 고정 멤버로 운영되는 음악 그룹이 아니라 숀 맥기네스와 나머지 2명의 유동 멤버로 구성된 숀 맥기네스와 아이들이 되어 버린 셈. 포미닛 현아와 아이들, 미쓰에이가 수지와 아이들이란 소리를 들어도 DCR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듣보잡으로 추락한 것은 아니고, 여전히 활발하게 콘서트를 열고 콘서트 한 번 하면 인기가 폭발하긴 하지만, 그룹 구성은 사실상 숀 맥기네스 1인 그룹이 되어 버린 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전에는 주로 반주를 맡던 숀 맥기네스가 과거에 DCR이 불렀던 곡에서는 메인 보컬을 부르지 않았던 곡들에서도 메인 보컬을 부르는 등(<Rare Ould Times>, <The Ferryman>, <Floght of Earls> 등등) 사실상 그룹에서 숀 맥기네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져 버렸다. 멤버가 얼마나 자주 교체되는지, 홈페이지에도 멤버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서 신문 기사를 보지 않으면 멤버 이름을 알 수가 없고, 멤버가 교체되어도 홈페이지에 공지도 뜨지 않는다. 기사 보고서 멤버 이름 나오는 걸 토대로 DCR 멤버 바뀌었구나 할 정도. 이쯤 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대충 앨범 크레딧이나 신문 기사를 토대로 연도별 멤버를 정리하면...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숀 맥기네스(밴조, 만돌린, 메인 보컬), 피어스 플렁킷(Pierce Plunkett-기타, 메인 보컬), 에디 린치(Eddie Lynch, 키보드)가 멤버였던 것 같다. 2005년경 피어스 매칼로럼과 에디 린치가 그룹을 탈퇴하고, 스티븐 리슨(Stephen Leeson)과 프레디 오코너(Freddie O'Connor)가 그룹에 합류했다. [4] 그런데 2008년에 나온 앨범 <Saint Patrick's Day>의 크레딧을 보면 멤버가 숀 맥기네스, 데릭 킨(Derrick Keane-기타, 메인 보컬), 이청용이나 나비 효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톰 밀러(Tom Miller-베이스, 보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5] 2005년에서 2008년 사이에 스티븐 리슨과 프레디 오코너가 그룹을 탈퇴하고 데릭 킨과 톰 밀러가 합류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009년 말 신문기사에도 이 라인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6] 이 라인업이 한동안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2010년 12월 신문기사에는 데릭 킨이 탈퇴하고 마이클 펀지(Michael Funge)가 합류했다고 나온다.[7] 이로 보아 데릭 킨은 2010년 초 무렵 탈퇴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012년 기사(가장 최근 기사)를 보면 마이클 펀지가 탈퇴하고 숀 콘웨이(Sean Conway)가 합류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2011년 중 또는 2012년 초에 마이클 펀지가 그룹을 탈퇴했다고 볼 수 있겠다. [8] 그리고 2013년경에 숀 콘웨이가 빠지고 전 멤버였던 피어스 플렁킷이 합류했다(...)


2005년경의 DCR. 왼쪽부터 스티븐 리슨, 프레디 오코너, 숀 맥기네스.

그나마 2008년 이후로는 톰 밀러가 그룹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끊임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이쯤 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끊임없이 멤버가 교체되는 포지션을 보면 기타에 메인 보컬 포지션이다. 아무래도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렇게 된 듯. 어쨌든 현재 멤버는 피어스 플렁킷, 숀 맥기네스, 톰 밀러 이렇게 3명이라고 말하면 된다.

현재 DCR은 정규 앨범은 2008년 이후로는 내지 않고 있으며, 컴필레이션 앨범만 내고 대체로 공연 다니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으로도 공연을 가는 듯. DCR 홈페이지를 보면 공연 예약하는 용도로 아주 많이 쓰이는 듯하다. 게속해서 공연을 다니고 공연 때 인기도 꽤 괜찮은 걸로 봐서, 비록 예전만큼은 못해도 DCR이 완전 듣보잡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는 없을 듯. 그리고 DCR, 정확히 말하면 숀 맥기네스는 엄청난 대인배라고 할 수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자기네 노래를 그것도 무료로 다운받아 가라고 풀었다!!!
DCR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숀 맥기네스가 만돌린 켜고 있는 사진 옆에 있는 'Listen to music and songs from'이라는 글자를 누르면 DCR 노래들을 무료로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하면 다운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다운도 무료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화면 상단의 'Latest CD'라는 글자를 누르면 아예 자기네들 최신 앨범을 무료로 스트리밍에 다운로드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쯤 되면 거의 대인배계의 최종보스.

숀 맥기네스 나이도(생년월일을 공개하지 않았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데(패치 워천이 1944년생이니까 대충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도 공연 일정까지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것으로 보아 아직도 활발하게 공연 다닐 모양이다. 페이스북 채널도 숀 맥기네스 본인이 직접 관리하는 듯. 아무튼 DCR은 비록 예전처럼 정상의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공연을 활발하게 다니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전 멤버들의 근황은 다음과 같다.
* 필립 매카프리: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9]
* 패치 워천: 2005년까지 솔로 가수로 나오다가, 2005년 가을 더블리너스 합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패디 스위니: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 셰이 캐버너: 2010년 클랜(The Clann)이라는 그룹이 조직되었을 때 멤버로 합류해 활동하였다. 그러나 클랜은 메인 보컬인 폴 워천이 탈퇴하고 더블린 레전즈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해체된 듯하다.

[1] 여기 나온 라인업 정보는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것. [2] 출처: http://murphguide.blogspot.kr/2010/11/spotlight-artists-dublin-city-ramblers.html [3] http://www.eofeasa.ie/goodgigs/philipmccaffrey.htm [4] 출처: http://www.martindardis.com/dublin_city_ramblers_lyrics_chords.html [5] http://www.theballadeers.com/dcr_d30_st_patrick.htm [6] http://jacksonville.com/tu-online/stories/090308/nes_326294892.shtml [7] http://mayportmirror.jacksonville.com/community/shorelines/2010-12-11/story/bolles-students-learn-about-ireland-and-many-other-countries [8] http://www.chronicleonline.com/content/dublin-city-ramblers-share-songs-saturday [9] http://www.eofeasa.ie/goodgigs/philipmccaffre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