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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fff> 2019년 영국의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가 The 20 greatest British rock bands of all time를 발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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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 레드 제플린 | 라디오헤드 | 핑크 플로이드 | 롤링 스톤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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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미스 | 오아시스 | 더 큐어 | 더 클래시 | 스톤 로지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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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잼 The J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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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릭 버클러 · 브루스 폭스턴 · 폴 웰러 | ||||
<colbgcolor=#225084><colcolor=#fff>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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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 1972년 | |||
영국 서리주 워킹 | ||||
데뷔 | 1977년 4월 29일 | |||
싱글 <In the City / Takin' My Love> | ||||
해체 | 1982년 12월 | |||
멤버 |
폴 웰러 (기타 & 보컬, 1972-1982) 릭 버클러 (드럼, 1972-1982) 스티브 브룩스 (기타, 1972-1976) 데이브 월러 (기타, 1972-1973) 브루스 폭스턴 (베이스 & 보컬, 1973-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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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모드 리바이벌, 뉴 웨이브, 펑크 록 | |||
레이블 | 폴리도르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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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활동한 모드 리바이벌, 펑크 록 밴드이다.2. 상세
초기에는 모드 리바이벌로 더 후와 킹크스로 비롯되는 60년대 영국 로큰롤을 재해석한 버즈콕스 풍의 펑크를 했다.후기에는 파워 팝, 뉴 웨이브, 포스트 펑크 등의 느낌이 나는 음악도 선보였다. 이러한 음악적 행보는 이후 등장하는 더 스미스나 리버틴즈, 스톤 로지즈 등 자국 출신의 후배 밴드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브릿팝의 대부이자 모드족의 화신이라 불리는 폴 웰러가 처음 음악 활동을 한 밴드이기도 하다. 더 잼은 폴 웰러의 원맨 밴드같은 면이 있었는데[1][2], 그가 프론트 맨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곡을 썼기 때문이다.[3]
대표곡은 'Town Called Malice', 'That's Entertainment', 'Going Underground', 'Eton Rifles' 등이 있다. 특히나 'Town Called Malice'는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며,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등장하기도 했다.[4] 'English Rose'라는 곡이 있는데 그들의 몇 안되는 어쿠스틱 곡이다. 하지만 웰러는 이 곡을 매우 쪽팔려 했다고...
대표 앨범은 < Sound Affects>, < All Mod Cons>. < The Gift>가 있다.
7-80년대를 다룬 모 영국 소설에서 음악에 관심없는 꼬맹이가 좋아한다고 할 정도로, 당대엔 국민 밴드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UK 싱글차트에서 1위곡을 네 곡이나 배출했을 정도. 그러나 반대로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제로. 주로 명반선이나 오아시스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클래시하고는 사이가 안좋았다고 한다. 정확히는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더 클래시는 '(White Man) In Hammersmith Palais'라는 노래에서 펑크 록을 한다는 애들이 혁명을 갖다 버리고[5] 돈만 좇아 양복을 갖춘다고 디스했다. 음악 성향도 극과 극였기도 했다. 다만, 해체한 지 세월이 지나고 나선 화해를 한 것 같다.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 In the City (1977)
- This Is the Modern World (1977)
- All Mod Cons (1978)
- Setting Sons (1979)
- Sound Affects (1980)
- The Gift (1982)
[1]
심지어 더 잼 해산 후 만든 스타일 카운실도 비슷했고 90년대에 들어서면 아예 솔로 데뷔를 해버린다.
[2]
브루스 폭스턴은 해체 당시에 더 잼에는 3명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폴 웰러가 아니었다고 발언했다.
[3]
그런 면에서 훗날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자기도 폴 웰러처럼 밴드 내의 메인 작곡가라면서 비슷한 처지라는 말을 한다. 특히 노엘 갤러거는 음악적으로 더 잼과 폴 웰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폴 웰러와 노엘 갤러거는 서로 사이가 굉장히 좋다. 같이 투어도 다니고, 서로의 공연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게다가 집도 옆집이다! 그래서 폴 웰러가 문자로 '야야 재밌는거 보여줄께 옆 창문 봐봐' 라고 날릴 때마다 봐야돼서 난감하다고도 했다
[4]
주인공이 혼자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이 음악에 맞추어 춘다.
[5]
실은 폴 웰러도 상당히 정치적인 가사를 많이 쓴 편이긴 하다. 후신인 스타일 카운실도 노동당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다만 솔로 이후로는 그런 성향이 살짝 줄어드는데, 스타일 카운실때 열심히 해도 별로 효과가 없는거에 좌절해서라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