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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昌洞, テチャンドン / Daechang-dong
1. 개요
부산광역시 중구의 법정동이다.대창동1가, 대창동2가로 나누어져 있으며, 대창동1가는 행정동인 중앙동 관할, 대창동2가는 행정동인 영주(瀛州)1동 관할이다. 중구의 동부, 부산 북항 연안지역에 있으며, 중앙동, 영주동, 신창동(新昌洞) 및 동광동(東光洞)과 이웃한다.
조선시대에는 동래현(東萊縣)의 부산포와 다대포(多大浦)의 경계에 있었던 '논치'라는 어촌이었다. 1678년 두모포(豆毛浦)의 왜관(倭館)이 초량(草梁)으로 옮겨져 용두산 자락 약 11만평이 일본인 거주지가 되면서 이에 포함되었으며, 1877년에는 이곳이 일본 조계지(租界地)가 되었다. 1914년 부산부(釜山府) 영정(榮町)이 되었으며, 1946년 대창동1가, 대창동2가로 개칭되었다. 1951년 부산시 중부출장소 관할, 1957년 중구 관할이 되었다.
부산 북항 제1, 제2부두 연안마을이다. 해안을 따라 중앙로가 통과하고, 부산지하철 1호선의 중앙역이 있다.
부산중부경찰서, 부산은행, 마린센터, 러시아영사관, 독일문화원이 있다.
대창동(大昌洞)은 1913년 대규모 매축지가 조성되며 부산항과 인접한 지역으로 인구가 급증하여 2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감소하여 대창동 1가는 행정동인 중앙동 관할로, 대창동 2가는 행정동인 영주동 관할로 되었다.
동쪽으로 중앙동, 서쪽으로 대청동과 영주 2동, 북쪽으로 초량 1동, 남쪽으로 동광동과 접해 있다. 남서쪽에 복병산이 연접하고, 동쪽으로는 남해안과 임한다.
1.1. 부산 도시 철도 1호선 근접
대창동 1·2가는 동쪽으로 중앙 대로와 부산 도시 철도 1호선이 지난다. 행정적으로 중앙동과 영주 1동에 편입되어 정확한 인구수나 면적은 나오지 않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상업 밀집 지구이다. 서북쪽 고지대는 주거 지역이며, 저지대에는 중앙 대로와 접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상업 지구를 형성하고 있다.2. 역사
대창동은 일제 강점기 제1 부두와 관련된 하역을 위한 큰 창고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본래 초량 왜관에 인접한 바닷가였는데, 1876년(고종 13)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부산항 개항으로 초량 왜관이 폐쇄되고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되면서 북빈(北濱)으로 불렸다. 일본인들은 바닷가의 용미산(龍尾山)[현재는 착평 공사로 사라지고 없음]을 기준으로 남쪽의 자갈치 지역은 남빈(南濱), 북쪽은 북빈이라고 불렀다. 이후 거류지 확대 과정에서 북빈 매축 공사와 영선산 착평 공사가 진행되며 대규모 매축지가 조성되었는데, 이를 새마당[새로 생긴 넓은 땅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101.12㎡[30.55평] 토지가 조성되고 중앙로가 만들어짐]이라 불렀다. 이 지역의 매축지 조성은 1913년 완공되었는데, 공사가 진행되던 1910년에 제1 부두가 완공되었다.
1914년 부산부 관할이 되었으며, 이후 일본인의 주택가와 상가가 들어서 영정(瀛町)이 되었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한국식 동명으로 변경하며 영정은 대창동 1·2·3가[대창정과 영정이 인접해 있었으며, 동명 개칭 과정에서 대창정이 중앙동으로 바뀌며 대창동이 된 것으로 보인다]로 개칭되었다.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승격하였고, 1951년 중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
1956년 법정동인 대창동 1가는 행정동인 중앙동에, 대창동 2가는 행정동인 영주 1동에 편입시켜 관할하게 되어 현재 행정적으로는 분할된 법정동으로만 존재하게 되었고, 대창동 3가는 사라졌으나 어느 법정동으로 흡수 통합되었는지는 자료상에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1957년 중부출장소가 중구로 승격하였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중구 대창동 1·2가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