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7:50:58

대갈치기

1. 개요2. 문제3. 해법4. 기타

1. 개요

인물의 머리만을 그린 그림 혹은 그리는 행위. 머리는 인물화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보통 캐릭터를 그릴 때는 십자선을 긋거나 눈을 시작으로 머리를 먼저 그리게 마련이다. 전신 샷을 아무리 잘 그려도 얼굴이 이상하면 그림 전체가 이상해 보이기 때문. 그림, 특히 캐릭터 그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 혹은 시작한 지 꽤 지난 사람 중에도 습관적으로 대갈치기를 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취미 영역에서 그림을 그린다면 대갈치기라도 상관 없다. 다만 프로, 하다못해 커미션으로 용돈벌이 할 목표라도 있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다.

2. 문제

수많은 화가들[1]이 인물화를 연마하는데, 문제는 아마추어 그림쟁이들 대부분이 습관적으로 머리 그리기에만 골몰하여 머리 잘 그리는 수준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러하다. 일단 몸을 제대로 그리기는 얼굴 제대로 그리기보다 훨씬 힘든데[2], 그림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선 대부분 얼굴만 제대로 그리기만 해도 되기 때문이다. 보통 그림 그려달라고 부탁한다면 얼굴을 그려달라고 하지 전신을 그려 달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주 안 좋은 경우의 사례는 대갈치기 + 목도 그리다 말고 + 왼쪽 보고[3] + 살짝 웃는 얼굴[4]에 그린이가 가장 선호하는 헤어 스타일 조합이다. 이렇게만 그리다보면 몇 년이 지나도 실력이 안 는다. 더 나쁜 것은 여기에 헬멧+대형 방패까지 조합한 경우. 이런 인물 그림은 눈사람과 비슷해서 인체가 아니라 방패나 헬멧을 그린 꼴이 될 수 있다. 이런 성향을 더 심화시켜 얼굴을 제외하고는 중장갑 수준 방어구나 펑퍼짐한 옷, 장갑 등으로 둘둘 싸 인체 묘사를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왜곡시켜 개성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길티기어 시리즈 이시와타리 다이스케의 초기 일러스트들, 주름 하나하나, 흠집 하나하나 그려넣는 세밀한 의복과 장비 묘사와는 대비되는 조잡한 인체비례표현이 개성일 정도로 특징적이다. 손 그리기 싫다고 죽어라 장갑을 씌우기로 악명 높은 헬싱의 작가 히라노 코우타도 비슷하다. 참고로 손 그리기 싫다고 장갑을 씌운다는 것은 작가 본인의 증언.(...)

이렇게 대갈치기만 죽어라 판 그림쟁이 치고 인체에 해부학적으로 접근하여 공부하는 이들은 거의 전무하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체비례를 묘사하는 솜씨가 올라가기 매우 힘들기에 다른 우회적인 수단으로 인체 묘사를 피하려고 한다.

이런 행태는 만화 창작에 있어 구도 연출에도 좋지 않다. 만화 그리기에서 가장 정석적인 연출은 캐릭터들이 있을 배경을 위주로 보여주는 일명 '구축샷' 컷 이후에 캐릭터들의 전신에 포커스를 맞춘 컷을 거친 뒤 대갈치기 컷을 넣어주는 식으로 점점 좁혀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대갈치기만 죽어라 넣으면 독자들이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5] 서스펜스를 연출하기 위해 이 틀을 깨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다고 닥치고 대갈치기만 넣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대갈치기만 익힌 그림쟁이들이 만화를 그릴 적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액션씬을 아예 못 그린다는 것. 액션씬 특유의 화려하고 현란한 연출, 그리고 스피드감 있고 긴박한 분위기를 대갈치기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6] 다만 길티기어 시리즈 헬싱처럼 오히려 스타일리쉬해 보이는 지경까지 극단적으로 왜곡하여 역동감 넘치는 액션 묘사가 되게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물론 이 경지까지 가려면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센스와 묘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3. 해법

가장 쉬운 편법으로 졸라맨 먼저 그리고 살 붙이기가 있다. 과거에 이영신 김충원등의 작가들도 제시한 방법으로, 인체비례 정도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그러다가 선으로만 그렸던 몸을 구슬 꿰듯이 원의 조합(즉 목각인형)으로 그리면 대략적으로 관절이나 근육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때까지는 겹쳐서 그려도 상관없다. 그러다 원근법을 고려하여 겹치는 부분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그리기 시작하다보면 그에 따라 몸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전신그리기에 대한 거부감을 떨치기 위한 대책일 뿐 정석은 아니다. 위의 방식은 인체의 골격을 완전히 무시한 방법이라 (특히 여성의) 어깨와 골반처럼 쉬워 보이지만 은근히 어려운 부분은 어색해진다. 특히 다리뼈가 척추 중심에 달라붙어서 어딘가 기형적인 그림이 나온다. 인체해부학이 미술의 기초인 이유가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명심해야 할 점들은 다음과 같다.
  • 전신을 다 그린다.
  • 앞태만 그리지 말고 뒤태도 그린다. 즉 전후좌우 방향을 모두 고려해봐야 한다.
  • 로우앵글, 하이앵글을 연습한다.
  • 머리카락으로 를 가리려고 하지 말라.
  • 가능하면 까지 그리는 연습을 한다.
  • 다양한 모양을 연습한다. 특히 뒷짐 진 포즈는 최대한 피한다.[7] 손가락 끝이나 손바닥 뒷부분이 관찰자의 시선을 향하거나 손등 또는 손바닥이 낮은 각도로 보일 경우 난이도가 높다. 예를 들어 작가나 독자를 향해 삿대질하는 장면.
  • 을 그린다. 특히 발의 정면 각도가 그리기 어려운 편이다. 과하게 데포르메해 작게 그리지 말 것.
  • 겨드랑이 표현을 연습한다. (민소매티나 수영복 등)
  • 쇄골 그리기에 도전하라. 특히 하이앵글. 모자, 펑퍼짐한 옷이나 갑옷 따위로 어설프게 가리려 하지 말 것.

손, 발, 귀, 겨드랑이 등 신체부위는 난이도가 높아서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데, 의식적으로 이런 부위에 도전해서 그려봐야 실력이 늘어난다. 특히 위에서 손과 발의 특정 각도가 유달리 어렵다고 했는데, 이는 각도에 따라 생기는, 눈에 보이는 물체의 길이 차이를 2D로 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체 원근법이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8] 우선 위에 제시한 것들을 충분히 연습한 뒤, 여기서 더 나아가 패션잡지 같은 걸로 잡지떼기 한 번 하면서 옷의 주름 표현, 명암 표현을 연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경 그리기까지 연습하면 완벽.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원피스 입은 긴 생머리의 여자 캐릭터가 맨발로 해변을 달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화면을 향해 손을 뻗는 포즈(일명 '나잡아봐라' 포즈)가 난이도 최상급이다. 그리기 어렵다는 (쇄골, 가슴, 허리, 겨드랑이, 무릎 뒤편, 손, 발, 발바닥, 머리카락, 귀, 엉덩이 등등) 모든 신체부위를 다 그려야 하는데 포즈마저 비틀린 인체이다. 특히 손을 화면 한가운데 커다랗게 그려야 하는데, 손이 가리는 부위는 그리기 쉬운 배 부위뿐이다!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리는 데다가 옷의 주름이 인체의 비틀림을 따라가야 한다. 발도 맨발에 모래가 날리는 것도 표현해야 하고 해변이므로 물 표현, 광선 표현, 렌즈 플레어 효과에 음영까지 뚜렷하다. 거기에 땀까지... 헬멧 쓰고 방패 든 캐릭터의 완벽한 대척점에 있는 그림이다. 그에 버금가는 난이도는 비치발리볼 씬.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옷 주름 표현이 빠지는 대신 거의 알몸여럿다양한 구도에서 그려야 하니까.

4. 기타

한국 웹툰에서 과용된다고 종종 지적되는 기법으로, 특히 신의 탑은 갈수록 의존도가 더욱 심해진다. 사실 대다수의 웹툰은 주간연재+풀컬러+최소 5~60컷[9]이라는 문제로 그리기 쉬운 컷을 애용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현란한 구도와 연출을 보여주는 작품의 작가는 대개 어시스턴트를 여럿 고용한다.

파생형(?)으로 가슴치기가 있다. 말 그대로 가슴까지만 그리는 것. 이쪽은 보통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 얼굴로 시작해서 몸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 혹은 일부 소년만화에서 원고 마감을 위해 남용하기도 한다. 물론 같은 가슴치기라도 극단적인 하이/로우앵글이라면 얘기가 아예 다르다.

간혹 아예 반대되는 케이스로 특히 남학생들이 근육질이 가득한 작화 스타일에 심취해 인체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케이스로 접어들게 되는 이유는 인체를 공부하는 데 쓰이는 교재나 서적들이 서양 쪽에서 고전 인체묘사에 기인한 이상적인 비례의 근육질 모델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들뿐이기 때문. 실제 인체 공부용 교재들을 찾아보면 그 이외에 수수하거나 이형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것을 다룬 서적은 한 줌도 안 될 정도이다. 언급해봐야 '이런 것도 있다.' 하는 팁 정도로 한두 쪽 다룸이 고작인 정도. 액션물이나 히어로물 같은 남자 취향 만화, 게임 일러스트를 그릴 때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그리는 그림마다 다 근육질이 되기에 일반인이나 여자, 아동 캐릭터를 제대로 못 그리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10] 또한 근육에 집착하는 경향 때문에 인체의 전체적인 형태가 되려 더 부자연스러워지고 심각하게 과장되어서 소위 말하는 '근육돼지'가 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인체와 얼굴 구조는 사람이나 다른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므로 여기에 집착해서 전체를 잃음은 좋지 않다. '기본기'는 두루두루 연마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기인 것이다.

반대 유형으로 미소녀에 심취하여 여성의 인체 공부만 죽어라 하여서 여자 묘사는 상당한 수준인데 남자 묘사가 개판 5분 전인 경우가 있다. 주로 순정만화 계통에서 아마추어나 프로 할 것 없이 자주 나온다. 남성향 작품에서도 미소녀 묘사에 집착하느라 아주 당연하게도 남성 묘사에 신경을 쓰지 않아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작가 스스로가 미소녀 동물원이나 여자 그려놓고 남자라고 우기기라는 괴이한 형태로 나아가기도 하는 지경.


[1] 순수 미술뿐 아니라 게임 원화가 등 사람을 그려야 하는 계통이라면 거의 전부. [2] 물론 현실적 화풍을 추구한다고 하면 사정이 좀 다르다. 얼굴은 사람의 신체부위를 통틀어서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게 생긴 부위이기에 사실적으로 잘 그리려면 많이 연습해야 한다. [3] 오른손잡이 기준으로는 인지구조상 인물이 왼쪽을 보게 하는 그림이 일단은 그리기 편하다. [4] 혹은 웃는 눈매, 코, 입을 다른 컷으로 그리는 경우. 혹은 입술 양 끝 점 2개로 처리하거나 등. [5] 동인지 등에서는 사건 전개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대갈치기 컷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6] 물론 어느 정돈 그릴 수가 있긴 한데, 더럽게 읽기 힘들고 무조건적으로 셀프 내레이션이 필요한 액션씬이 된다. 그래서 작중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전달할 수 있도록 눈과 얼굴 일부분을 액션 효과와 함께 사이드 컷신으로 박아넣는 연출로 때우는 새로운 변종 눈갈치기(...)도 등장했다. 아마 토미노 요시유키 등이 만든 메카물에서 파일럿이 말하는 장면에 착안한 듯. [7] 손 모양 참고하기엔 격투 만화가 최고다. [8] 정면에서 살짝 뒤쪽(시선 반대쪽)으로 다리를 든 것을 그렸더니 졸지에 숏다리가 나오는 게 그 예다. [9] 70컷 안 되면 분량 적다고 욕 먹는데 [10] 이 부작용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격투기특성화사립고교극지고의 작가 허일. 연재 초반에는 여캐 작화가 정말로 형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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