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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2025 시즌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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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1919><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No.29 | |
니시노 유지 西野勇士 / Yuji Nish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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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91년 3월 6일 ([age(1991-03-06)]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도야마현 타카오카시 |
학력 | 신미나토고교 |
신체 | 183cm / 90kg |
포지션 | 선발 투수[1]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8년 NPB 육성선수 드래프트 5라운드 ( 롯데) |
소속팀 | 치바 롯데 마린즈 (2009~) |
등장곡 | WILYWNKA - Soul One |
연봉 | 2024 / ¥85,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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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야구선수.육성선수 출신으로 한때는 시즌 0블론을 기록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 자리까지 오르며 육성선수 신화를 이루었으나, 팔꿈치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20대 후반에 이미 전성기가 끝나버린줄 알았다. 하지만 2023년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여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주고 있는 투수이다.
2. 선수 경력
5세부터 형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때는 소년 야구팀 「카와하라 타이거스」, 중학교 시절은 경식 야구 클럽 「타카오카 보이즈」에 소속되어 뛰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외야수 겸 3루수였고,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진학교인 타카오카 고교 진학을 권유받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야구 강호인 신미나토고교로 진학하였다.고등학교 시절에는 1학년 때부터 투수로 전향하였고 3학년 봄 현대회에서 8강에 올라 야구 전문지에 토야마현의 주목 선수로 소개되기도 하였으나 코시엔 출전은 없었다. 3학년 여름 현 예선 결승에서 패배한 것이 최고기록. 감독으로부터 토요대학 진학을 권유받았으나 프로야구에 대한 갈망으로 거절하고 2008년 드래프트에 참여하였으나 육성선수 드래프트 5라운드라는 하위픽 중의 하위픽으로 뽑혔다.[2] 당시 등번호는 131번.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1.1. 2009~2012 시즌
입단 이후 4년간 육성선수로 2군에서만 뛰었는데 2009년에는 2군 등판 자체가 없었으며 2010~2011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ERA 2점대로 준수했고 2012년에는 주로 불펜으로 나와 3점대 평균자책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2년 시즌 후에 성적은 떨어졌지만 배짱있게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배 등록되었다.[3] 이 때 등번호가 67번으로 변경되었다.2.1.2. 2013 시즌
지배 등록된 첫 시즌인 2013년, 시범경기에서 호투를 계속하여 개막전 선발 후보로도 언급되었지만 3월 30일 오릭스전에서 중간계투로 2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1군 데뷔를 이루었다. 이후 4월 8일 라쿠텐전에서 프로 첫 선발[4]로 출전하여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프로 첫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후 6월까지 7승 2패 ERA 2.15의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나가기도 했다. 올스타전에는 3차전에 등판해 2이닝 무실점을 하였고 후반기에는 체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깨 통증으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기도 하였으나 시즌 최종성적 139.2이닝 9승 6패 ERA 3.80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육성선수 신화를 시작하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중간계투로 전향해 4경기 ERA 1.42로 활약하였다. 시즌 종료 후 연봉이 440만엔에서 2640만엔으로 상승하며 구단 역대 최고인 500%의 인상률을 기록하였고, 등번호도 29번으로 변경되었다.2.1.3. 2014 시즌
이후 2014년에는 개막 직전 마스다 나오야가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하며 대체 마무리가 되었다. 4월 5일 니혼햄전에서 통산 첫 세이브를 올렸고, 개막부터 5월 3일 세이부전까지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결국 마스다 나오야가 복귀한 뒤에도 마무리 자리를 지켰다. 시즌 최종 성적 57경기 1승 1패 31세이브[5] 9홀드에 ERA 1.86을 기록, 육성선수 최초의 30세이브 선수가 되고 미일야구 대표팀에 뽑혀 국가대표로도 출전하게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연봉이 6천만엔으로 상승하였다.2.1.4. 2015 시즌
2015년에도 마무리를 계속하여 시즌 막판에 골절로 이탈하기는 했지만 54경기에서 ERA 1.83에 1승 2패 34세이브 4홀드, 무엇보다도 블론세이브 0개에 시즌 피홈런 1개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기면서 리그 최고의 마무리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시즌 종료 후 연봉이 1억엔으로 상승하였다.2.1.5. 2016 시즌
2016년에도 마무리로 1군 개막을 맞이하여 감독 추천으로 3년만에 2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교류전 무렵부터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시작되었으며 5월 말부터는 블론세이브가 많아지게 되었다. 6월 말부터 7월 초순까지는 4경기 연속 실점을 하기도 했고 결국 7월 30일 라쿠텐전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후 31일 팔꿈치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2개월만인 9월 27일에 1군 복귀하기는 했으나 이미 마무리 자리는 다시 마스다 나오야에게 넘어간 후였다. 결국 시즌 최종 성적 3승 6패 21세이브 5홀드 ERA 3.35라는 이전 2년에 비해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연봉도 1억엔에서 9500만엔으로 소폭 삭감되었다.2.1.6. 2017 시즌
2016 시즌 후 선발투수에 재도전할 것을 선언했고,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었다. 4월 13일 오릭스전에서 6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4년만에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여 결국 5월 3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수술도 고려했지만 '그렇게 중증은 아니며 쉬면 나아질 것이다'라는 판단으로 한달 반동안 실전 등판을 하지 않고 재활을 하였다. 이후 2군에서 13경기 등판해 3승 4패 ERA 4.88을 기록, 9월 30일 라쿠텐전에서 1군 복귀해 6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2실점을 기록하였다. 결국 시즌성적 5경기 2승 3패 ERA 4.73으로 매우 부진한 시즌을 보냈고, 연봉도 2천만엔이 삭감된 7500만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1.7. 2018 시즌
중간계투로 복귀한 2018년에는 14경기에서 ERA 6.19를 기록하며 커리어 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시즌 종료 후 연봉이 3년 연속 감소해 2천만엔 감소한 6천만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이에 니시노 본인도 충격을 받았는지 시즌 종료 후 시애틀의 드라이브 라인 베이스볼에 자비로 방문하여 영상을 통해 투구폼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2.1.8. 2019 시즌
시즌 개막 직전 인터뷰에서 팔꿈치 통증이 사라지면서 예전처럼 피칭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시즌 초에는 주로 추격조로 나왔으나 나올 때마다 두들겨맞으면서 1-2점차로 뒤지던 경기를 4-5점차로 벌리면서 추격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피칭을 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점차 안정적으로 1이닝 씩 막아주었고, 종종 필승조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세이브 상황에 등판했을 때 의외로 안정적으로 세이브를 따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5월 말부터 이구치 타다히토 감독은 니시노를 종종 마무리로 투입할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셋업으로 등판한 5월 29일, 1이닝 2실점으로 바로 장렬하게 털리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6월 1일 기준 21경기 20이닝에서 2세이브 4홀드 ERA 4.05를 기록중. 전성기 때만큼은 못해 주지만 나름대로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6월 4일 추격조로 나와 추격의 의지를 끊어버리는 투런 홈런을 맞았다.
6월 23일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서 또 안타를 처맞았다. 이 안타가 결승점이 되어 패전 투수가 되었다. 나름대로 재기했다지만 예전만큼의 실력은 못 나오는데 필승조처럼 믿고 쓰는 감독이 문제다.
전반기가 끝나고 2군행. 전반기 성적은 31경기 30.2이닝 0승 1패 2세이브 5홀드 ERA 3.52. 추격조 위주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일어서는 중이다.
뜬금없이 선발 전향에 재도전한다고 한다. 실제로 7월 24일 2군 경기에서 선발로 나왔는데 4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8월 5일 뜬금없이 선발로 나와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2년 만의 선발승.
8월 16일 1군에 다시 돌아와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날 타자들이 단체로 침묵하면서 2대1로 졌다.
9월 8일 소프트뱅크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 전날에 당한 노히트노런 패배를 그대로 갚아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7경기(5선발) 70이닝 2승 3패 2세이브 5홀드 ERA 2.96. 작년에 갔다온 드라이브 라인 연수로 투구폼을 교정하면서 패스트볼 스피드가 증가하고 변화구의 날카로움이 돌아오며 전성기만큼은 못해도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한 한 해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1000만엔 증가한 7천만엔으로 연봉 계약을 갱신했다.
2.1.9. 2020~21 시즌
2020 시즌 시작 전 4선발로 내정되었으나 팔꿈치 이상으로 검진을 받았고, 토미존 수술을 받게되면서 한 경기도 못 던지고 시즌아웃을 당했다. 수술의 여파로 2021년까지 쉬게 되면서 2년동안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고, 연봉도 4250만엔까지 삭감되었다.2.1.10. 2022 시즌
시범경기에선 5경기 5이닝 1승 무패 ERA 3.60을 기록하고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3월 29일 연장 10회에 올라와서 온갖 뻘짓 끝에 1이닝 1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2019년에도 그렇고 부진한 선수를 중요할 때마다 올리는 팀이 문제다.
4월 24일 1점차 상황인 8회에 올라와 1이닝 무실점 홀드를 기록했다.
이후 추격조와 세컨더리 셋업을 겸하고 있다.
6월 12일 안타-안타-번트-볼넷으로 1사만루를 만든 후 4번 마키 슈고를 상대로 3-0까지 갔으나 거기서 마키가 무리하게 투수 땅볼을 치는 덕분에 기적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 홀드가 추가되었다.
시즌 성적은 37경기 36.1이닝 ERA 1.73 3승 3패 15홀드 35삼진을 기록했으며 부상의 리스크가 있어서 관리는 필요하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의 성적을 기록했다.
2.1.11. 2023 시즌
선발로 복귀한다고 했다. 2016년 이래 1년 잘하고 2년 날리고를 반복했는데[6] 올해 그 주기를 끊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6년 만에 개막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4월 4일 닛폰햄전에서 약 3년 반 만에 선발 마운드에 올라 5이닝 4실점하며 1305일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그 후에는 10일 정도의 등판 간격을 두면서 선발 등판이 계속되었고, 계속해서 호투를 보여주었다. 7월 4일 세이부전에서는 7회 무실점을 기록하며 이 시점에서 10경기 6승 2패 ERA 2.53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오른쪽 어깨의 위화감을 호소해 7월 12일에 1군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이후 후반기 첫 경기인 7월 22일 소프트뱅크전에서 1군 복귀하였고, 8월 26일 오릭스전에서는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 18경기 8승 5패 ERA 2.69를 기록하며 자신의 완전한 부활을 알린 해가 되었다. 소프트뱅크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에서는,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등판했지만 이번 시즌 최소이닝인 3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고, 결국 패전 투수가 되었다.
2.1.12. 2024 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고 있으나 5월 이후 ERA 5점대로 계속해서 부진하다. 다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상대 한정으로는 강한모습을 보여주고있어 세이부전 표적선발로 나오고 있다.7월부터는 3번 등판 모두 승리 투수가 됐으며, 7월 이후 월마다 세번 등판 중 두번은 적어도 퀄스피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승운이 좋지않아 9월 23일 기준 평자 3.36 8승 8패를 기록 중이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ERA | ||
2009 | 치바 롯데 마린즈 | 1군 기록 없음 | |||||||||||||
2010 | |||||||||||||||
2011 | |||||||||||||||
2012 | |||||||||||||||
2013 | 24 | 9 | 6 | 0 | 0 | 139.2 | 140 | 5 | 40 | 3 | 106 | 3.80 | |||
2014 | 57 | 1 | 1 |
31 (3위) |
9 | 58 | 33 | 4 | 15 | 0 | 63 | 1.86 | |||
2015 | 54 | 1 | 2 |
34 (3위) |
4 | 54 | 44 | 1 | 12 | 1 | 71 | 1.83 | |||
2016 | 42 | 3 | 6 |
21 (5위) |
5 | 43 | 39 | 4 | 11 | 1 | 36 | 3.35 | |||
2017 | 5 | 2 | 3 | 0 | 0 | 26.2 | 31 | 2 | 14 | 0 | 17 | 4.73 | |||
2018 | 14 | 0 | 0 | 0 | 0 | 16 | 20 | 2 | 6 | 0 | 19 | 6.19 | |||
2019 | 37 | 2 | 3 | 2 | 5 | 70 | 56 | 6 | 23 | 0 | 64 | 2.96 | |||
2020 | 1군 기록 없음 | ||||||||||||||
2021 | |||||||||||||||
2022 | 37 | 3 | 3 | 0 | 15 | 36.1 | 28 | 4 | 17 | 0 | 35 | 1.73 | |||
2023 | 18 | 8 | 5 | 0 | 0 | 117 | 109 | 4 | 23 | 4 | 92 | 2.69 | |||
NPB 통산(9시즌) | 288 | 29 | 29 | 88 | 38 | 580.2 | 500 | 32 | 161 | 9 | 503 | 3.02 |
4. 피칭 스타일
패스트볼 최고구속은 152km/h, 평균구속은 143km/h이고 결정구는 포크볼이다. 포크볼을 '카운트를 잡는 각이 작은 포크볼'와 '헛스윙을 끌어내는 각이 큰 포크볼'로 구분해서 던진다. 이외에는 슬라이더, 커브, 투심 등의 변화구를 던진다.
전성기에는 0블론을 할 정도로 철벽이었으나 부상 복귀 후에는 대놓고 1-3점씩 내주는 피칭을 보이게 되었다. 2016년 이후로는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선발로 나오거나 1점 정도는 줘도 되는 롱릴리프, 추격조를 맡는 편.
5. 여담
- 현재 드래프트 동기들 중 롯데에 남아있는 유일한 선수이다. 13명이나 지명했는데 결국에는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도 하위권에 뽑힌, 거의 기대치가 없었던 선수가 제일 오래 살아남은 셈.[7]
- 2024년 기준 육성선수 드래프트 출신 현역 선수들 중 프로 최고참이다.[8] 다만 홀로 남은 건 아니고 동년 육성선수로 호크스에 입단한 니호 아키라가 아직 현역이므로 유이하게 생존했다. 공교롭게도 니호 역시 원소속팀에서 방출당한 후 입단 테스트를 거쳐 2024년 롯데에 입단하여 팀메이트가 되었다.
- 지배선수로 등록된 첫 해인 2013년, 우라와에 있는 구단 기숙사에서 ZOZO 마린 스타디움까지 전철로 출퇴근했다고 한다.[9] 결국 시즌 후 운전 학원에 다니면서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했다.
- 등장곡이 한때 방탄소년단의 노래였으나 2020년 토미존 수술 이후 전성기 시절 쓰던 Flo Rida - Wild Ones로 등장곡을 바꾸었다.
- 2015년 1월 일반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1]
마무리 투수 보직에서 선발로 전환했다.
[2]
다만 이때 롯데는 육성선수를 워낙 많이 뽑아서 육성 8라운드까지 뽑았다.
[3]
육성선수 동기들의 운명에 대해 말하자면 8명 중 6라운더이자 최고령이었던
오카다 요시후미는 1년만에 바로 지배 등록되었고, 8라운더인 타나카 타카히로와 7라운더인 요시다 마사시는 각각 2009년과 2011년 시즌 이후 잘려서 입단 4년차인 2012년에는 5명만이 육성선수로 남아있었다. 이 해에 모든 동기들의 운명이 결정났는데, 니시노와 3라운더
스미 코타는 지배 등록에 성공했고[10], 시즌 후에도 지배 등록에 실패한 1라운더 키미토 유키히로, 2라운더 스즈키 아키라, 이쿠야마 히로토는 정리되면서 스미, 오카다, 니시노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스미 역시 지배 등록만 됐지 1군을 밟지 못하고 2014년 이후 전력외통고를 받았기 때문에 1군을 밟은 육성선수 동기는 오카다와 니시노 뿐이다.
[4]
사실 원래는 전날인 7일에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2이닝을 던졌지만 게임이 우천 취소되면서 기록에는 남지 않았다.
[5]
리그 3위.
[6]
2016, 2019, 2022년은 잘 하고 2017, 2018, 2020, 2021년은 부진하거나 아예 뛰지도 못했다.
[7]
2008년 롯데의 드래프트가 엄청난 망픽이었던게 14명을 뽑았는데 2라운더였던
쵸노 히사요시는 요미우리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입단을 거부해서 13명만 입단했다. 그런데 지배 선수로 입단한 다섯 명이 모두 폭망하면서 조기은퇴를 하게 되었다. 1라운더 키무라 유타는 즉전감으로 평가받았던 스카우팅 리포트와는 달리 1군에 가끔 올라오며 통산 47경기 1승 6패 1홀드에 ERA 5.24로 2016년에 방출당해 은퇴했고(이 인간은 심지어 2006년 드래프트에서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에 3라운드에 지명되고도 입단을 거부한 전력이 있었는데 결국은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밝혀졌다.) 3라운더 우에노 히로키 역시 즉전감으로 꼽혔으나 통산 117경기 11승 10패 2홀드 ERA 3.64을 기록하고 2015년 한국나이 30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방출당해 은퇴했다. 4라운더 츠보이 토시키는 더 폭망해 1군 경험 없이 2011년에 잘리면서 이 해 드래프트 동기 중 두 번째로 해고당했고(최초로 방출당한 선수는 육성 8라운더 타나카 타카히로.) 5라운더 야마모토 테츠야는 통산 11경기에서 ERA 5.63만 기록하고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2013년에 은퇴, 6라운더 카츠키 료지는 2015년에 커리어하이를 찍으면서 살아남나 싶었으나 2016년에 폭망하면서 통산 65경기 4승 3패 1세이브 3홀드 ERA 4.58을 기록하고 키무라 유타와 같이 방출당했다. 결국 2016년을 끝으로 이 해의 드래프트 지명자는 전멸했다. 육성선수 동기들 중 유일하게 1군 주전으로 같이 발돋움한
오카다 요시후미도 2018년을 끝으로 은퇴해서 이제 니시노를 제외하면 2008년 드래프터는 현역이 없다.
[8]
프로 16년차. 참고로 육성선수 드래프트 제도는 2005년부터 시행됐다. 즉 니시노 이전의 3년간 육성선수 드래프트로 프로에 들어온 선수들은 다 잘렸다.
[9]
이렇게 다니면 왕복 출퇴근 3시간에 교통비는 2만원 가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