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농구를 할 때 편하게 만든 운동화의 한 종류다.
2. 특징
격한 움직임이 많은 농구 특성상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발목까지 올라오는 스타일이 많다.[2] 일반적인 신발보다 접지력이 좋으며, 충격 흡수력도 뛰어나다. 다만 발목까지 올라오는 농구화가 실제로 부상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실내용 농구화는 접지력을 올리기 위해 내구력을 희생하여 내구도가 별로다. 실내용 농구화를 아스팔트 같은 곳에서 굴리면 말 그대로 갈린다. 반면 야외용 농구화는 아스팔트나 모래 등에서 막 굴리는 걸 예상하고 만들기에 내구도가 괜찮다. 과거 리복의 블랙탑 시리즈, 아디다스의 스트릿 볼 시리즈가 바로 아웃도어 농구화.
농구화를 고를 때는 그 제품이 어떤 선수의 시그니쳐인지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자신의 신체조건이 센터에 가깝다면 센터 포지션인 선수가 신는 농구화를, 가드에 가깝다면 가드 포지션인 선수가 신는 농구화를 선택하는 게 좋다.
본래 농구를 할 때 신는 신발이지만, 일반 운동화로 신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 일상 생활에서 편하며, 농구화 디자인이 일반 운동화보다 화려하고 멋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농구화가 패션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다만 농구화는 일반 운동화로 신기에 단점이 많다. 먼저 통풍이 안돼서 땀이 찬다. 그리고 대부분 발을 고정하기 위해 타이트해서 신을 때마다 신발끈을 풀었다 다시 묶어야 해 번거롭다. 여느 신발이 그렇듯 걸어다니다가 신발끈이 풀리는데 발목까지 끈을 묶을 수 있는 농구화는 끈이 길어 그냥 둘 수도 없다. 이런 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동으로 끈이 조여지는 농구화도 출시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3. 여담
- 최초의 농구화는 놀랍게도 컨버스 올스타이다. 쿠셔닝이 전혀 없다보니 현재는 농구화는커녕 그냥 일상화로 신기에도 그리 편한 착화감이 아니지만, 출시되던 시기만 하더라도 이만한 농구화가 없었기 때문.
- 의외로 현재는 그냥 패션 스니커즈로 널리 신는 신발들이 처음 출시 당시에는 농구화로 사용되었던 경우가 많다. 나이키 에어포스 원이나, 나이키 덩크, 아디다스 슈퍼스타 또는 아디다스 포럼 등. 게다가 앞서 말했듯 컨버스 올스타의 경우도 본래는 농구화로 출시되었다. 또한 에어 조던 시리즈 역시 초기 모델들은 현 시점에선 패션화로 더 많이 애용되고 있다.
- 1970년대 이전엔 군인도 많이 신었다. 당시 한국군 여건상 가죽 전투화 두 켤레를 줄 여력이 안 되니, 가죽 전투화 한 켤레와 '통일화'라는 신발을 장병들에게 줬다. 당시 가죽 전투화가 질이 형편없다 보니 편한 통일화를 많이 신었고, 이 통일화를 농구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요즘 세대에게 농구화라고 하면 나이키 에어포스나 에어 조던 같은 신발을 떠올리기 때문에 언뜻 농구화를 신고 군생활을 했다면 놀라는 경우도 많지만, 그냥 카키색에 목이 긴 컨버스 신발이었을 뿐이다. 실물 사진이 있는 블로그 물론 당시에는 진짜 컨버스 올스타가 농구화로 사용되던 시기이긴 하나, 엄밀히 말하면 통일화가 농구화라는 서술은 바닥창을 보았을때 올바른 이야기는 아니다. 뒷굽이 높고 울퉁불퉁한 아웃솔은 전형적인 군화나 작업화 스타일이다. 농구화가 아니라 미군식 정글화, 사막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들 농구화라고 불렀고, 북한 무장공비들이 전투화 대용으로 신은 수입산 컨버스 신발들도 우리나라에서는 농구화로 불렀다.[3]
- V-리그 배구 선수 중 농구화를 신는 선수가 있다. # 황민경( 나이키 PG 3, 나이키 코비 시리즈 3, 4 ) 정지석( 나이키 코비 시리즈 5, 6, 10 ) 이민규( 나이키 코비 9 엘리트 로우) 문성민( 나이키 코비 시리즈 1, 2, 7, 8 )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 참고로 규정상 농구화를 신는것은 제한이 없지만 스폰서 문제로 인해 로고는 가리고 경기를 치러야한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은 세계에서는 튼튼하고 격한 움직임에도 오래 쓸 수 있기에 군화나 부츠 다음으로 애용되는 신발로 나온다. 도로헤도로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많이 신는 모습으로 등장.
4. 1990년대 농구화 유행
1990년대 NBA의 글로벌 진출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농구대회인 농구대잔치가 인기를 끌었고, 1994년에 MBC에서 방송했던 드라마인 마지막 승부와 애니메이션 슬램덩크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농구 유행이 더욱 가속화되어 청소년층에 농구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이 유행은 청년층까지 퍼진다.나이키 에어 포스를 시작으로 마이클 조던의 시그니처 에어 조던, 찰스 바클리 농구화 에어 포스 맥스, 샤킬 오닐의 시그니처 리복 샤크 어택이 인기를 끌었다. [4]
국산 브랜드로는 프로스펙스의 슈퍼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이키보다 저렴한 가격대에 발로 벽을 찍고 덩크하는 장면이 나오는 CF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켜 농구화 대유행에 기름을 부었다. 슈퍼볼 후속제품인 헬리우스도 연세대학교 농구팀이 신어 인기가 많았다. 코오롱 스포츠 브랜드였던 액티브 농구화도 인기가 많았으며 르까프 터보Z 농구화도 기아자동차 농구팀이 착용하여 인기가 있었다. 나이키, 리복에 밀렸던 아디다스도 1995년 엑신을 출시하여 빛을 보게된다. 현대전자 출신 이충희가 CF모델을 했던 나이키 에어 발리스틱 포스와 나이키 에어 플라이트, 아식스의 젤 스카이 라이트 등도 인기가 있었다. 1990년대 농구화 대유행의 열기는 등골 브레이커의 원조였지만 1993년 NBA 농구선수 패트릭 유잉이 농구화 판촉홍보차 내한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한국과 다를 바 없이 미국에서도 농구화는 등골 브레이커인 듯하다. 일례로 NBA 슈퍼스타인 하킴 올라주원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싸구려 농구화를 신는 걸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비싼 농구화를 신으면 어린 팬들도 너나 할것 없이 따라 신을테니 부모 입장에서 부담이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추가로 동시대 라이벌인 패트릭 유잉도 저가형 농구화를 신었는데, 이쪽은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런칭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추가로 동시대 라이벌인 칼 말론도 저가형 농구화를 신는 걸로 유명하다.
이 방면으로 유명한 선수가 바로 뉴욕 출신의 스테판 마베리. 2000년대 초반 뉴욕 닉스 시절부터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여 단돈 15달러 정가에 자신의 시그니처를 제작하고 판매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트릿 볼러 출신답게, 가난한 길거리 농구인들도 시그니처 농구화를 신을 수 있도록 시리즈를 초저가에 발매했다. 자세한 사항은 스테판 마베리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