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07:40:50

노욕

1. 개요2. 상세3. 어록

1. 개요

老慾

늙어서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 유사한 단어로 과욕(過慾), 심욕(心慾), 아욕(我慾), 자욕(恣慾)이 있다.

2. 상세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라면서 경우에 따라 욕심이 생기게되지만 그 욕심이 너무 과하면 노욕으로 이어지게 된다. 노욕을 가진 이들일수록 젊은이들로부터 꼰대, 틀딱충이라는 비하적인 모욕을 듣기도 한다.

노인이라도 언젠가 죽음이 올 것이라는 알고있는 노인들은 노욕을 버리고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며 자식이나 후대에게 넘겨주는 것이 순리이지만 노욕을 가진 이들에게는 정반대의 얘기이며 이쪽일수록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서 늙어 죽는 순간이 오더라도 자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노욕이 지나쳐서 버리지 못하고 죽음이 오게 되면 남은 것들은 결국 자식이나 후대들이 자연히 가져갈 뿐이다.

노욕을 가지는 이유로는 다양하다.
  • 나는 나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게 볼 때
  • 나는 아직 살 수 있으니까 더욱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니까 아랫것들을 휘두를 힘이 있어서
  • 본인이 거만하거나 욕심끼가 있어보여서
  • 두려움을 모르거나 전혀 없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휘어잡고 떳떳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때
  •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인식을 가지며 나는 젊은애들 못지않다고 생각할 때

또한 일부에서는 아동 학대, 내리갈굼 등의 어린 시절의 좋지 않은 과거사로 인해서 성인이나 노인이 되어서 점차 성격이 변하게 되어서 어릴 때는 어른들의 눈치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못했던 것이 그 때가 되어서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욕심에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이 지나치게 스며들어서 자연히 노욕에 물들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주로 이런 성격의 사람들일수록 늦은 나이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지나치게 스며들어서 노인이 될 때까지 버리지 못한다는 습관과 왜 이걸 진작에 못했지. 어른들 눈치 때문에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자아적인 욕심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린 시절의 어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자식들이 채우지만 아래이기도 하고 만만하고 내가 부려먹을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에 어른들과는 질이 달라서 이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경우가 아니면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심하면 꼰대, 틀딱충으로 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과거 부모나 윗사람으로부터 갈굼당하고 욕을 듣는 시절에만 해도 그들의 눈치와 통제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이제 제 마음대로 아무 간섭이나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이 제 세상을 만났다는 오만과 방자함이 생기게 되어서 아랫사람에게 자신이 윗사람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할 수도 있으며 그럴수록 노욕 또한 심해져서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심하면 자신은 불사(不死)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되어서 언젠가 자기가 죽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저항심이 강한 아랫 사람들로부터 독재와 독선, 광기어린 마음을 가진 자로 전락할 수 있고 평생 역사적으로도 평가가 나쁜 인물로 남을 수 있다.

실제로도 젊은이들 중에서도 노인 중에서 가진 것 모두를 아랫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모두 넘겨주고 자신은 언젠가 죽음이 온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깨끗이 물러나고 양보하는 노인들은 존경하지만 노욕이 심한 노인들을 존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욕이 심한 노인일수록 젊은이들이나 아랫이들에게 양심도 없는 자나 제 욕심만 가득차고 관용도 없는 그런 존재로 보일 뿐이다. 굳이 노욕이 찬 노인을 존경해도 진심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나중에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결국 뒷담 까대기 대상에 오르며 조롱거리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간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보면 아무리 노욕을 가진다고한들 세월도 흘러가기에 결국은 죽음 앞에서는 노욕도 끝나게 될 뿐이다. 진심으로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을 알거나 죽음을 대비하는 노인들은 노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순리적인 심리로 노욕도 결국은 죽음 앞에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살아서 노욕을 부린다고한들 결국은 젊은이들로부터 꼰대, 틀딱충이라는 모욕을 들을 수 있다. 양심있고 정직하게 살아온 노인들은 죽음을 대비하고 마음의 정리를 하기에 젊은이들로부터 이런 모욕을 듣는 경우가 드물지만 노욕을 부리는 노인들일수록 이러한 모욕을 듣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3. 어록

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長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경계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색을 경계해야 한다. 장성해서는 혈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싸움을 경계해야 한다.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약해지기 때문에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논어》〈季氏〉
나이 먹은 사람들 점점 노욕 덩어리가 되어간다.
채현국(효암학원 이사장)
노익장(老益壯)과 노욕은 다르다. 노욕은 노추(老醜)로 노망(老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전형일(명리학자, 철학박사, 한국일보 전형일의 사주이야기 연재 저자)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세상 살면서 ‘하고자 하는(欲)’ 바가 있다. 그러한 욕구(欲求)가 없으면 개인이고 사회고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분에 넘치고 도가 지나치면 '탐욕(貪慾)'이 되고 ‘욕(辱)’이 된다. 역사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국경과 민족의 구분 없이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특히 개인과 사회와 국가를 막론하고 노년의 욕심이 문제다. 젊을 때는 왕성한 혈기로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혈기가 식어 수그러들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욕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좋은 결과를 얻으면 ‘노익장(老益壯)’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노욕(老慾)’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홍광훈(문화평론가,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 조선일보 홍광훈의 산인만필 연재 저자)
소외되고 외롭다는 푸념은 스스로 자초하는 결과다. 먼저 노욕(老慾)과 노탐(老貪)을 과감히 버리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자. 고운 심성과 바른 교양으로 살아가자. 그래야 멋진 부모, 멋진 할아버지 나아가서는 존경받고 남이 우러르는 원로가 될 수 있다.
안도(문학평론가)
말년 운이 좋으려면 노욕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탄탄(呑呑) 스님(서울 적조사 주지, 용인대학교 객원 교수)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
앙드레 지드( 프랑스 소설가)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고 탐욕을 부리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이 없다.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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