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9 03:06:08

노발리스

노발리스
Novalis
파일:Franz_Gareis_-_Novalis.jpg
이름 게오르크 필리프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 남작
Georg Philipp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
출생 1772년 5월 2일, 작센 비더슈테트
사망 1801년 3월 25일, (향년 28세) 작센 베이센펠스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학력 예나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비텐베르크 대학교
프라이부르크 광산 학교
직업 시인, 작가, 철학자

1. 개요2. 생애3. 사상4. 작품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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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작가, 철학자.

2. 생애

노발리스는 작센 지방의 몇 안되는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1명의 자녀 중 둘째였으며, 그의 가족은 독실한 경건주의였다. 그는 예나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예나에 있는 동안 그는 첫번째 시를 출판했고 극작가이자 시인인 실러와 친분을 맺었으며, 피히테의 수업을 들었다. 라이프치히에선 슐레겔을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다. 1794년 22세의 나이로 법학 학위를 마쳤고, 졸업 직후 텐슈테트에서 법률 조수로 일했다. 그곳에서 노발리스는 운명의 여인 조피 폰 퀸(Sophie von Kühn)을 만난다. 이듬해 노발리스는 조피 부모의 허락을 받고 비밀리에 약혼했지만, 조피는 약혼 직후 중병에 걸려 사망했다. 조피의 예상치 못한 죽음은 노발리스에게 문학과 정신적인 면에서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노발리스는 1797년부터 프라이부르크 광산 학교에 등록하여 전기, 의학, 화학, 물리학, 수학, 광물학 및 자연 철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괴테, 셸링, 아우구스트 슐레겔 등 초기 낭만주의자들과 많은 만남을 가졌다. 이후 작센과 튀링겐에서 소금 광산 책임자로 일했으며, 이 기간 동안 노발리스는 《밤의 찬가》를 포함한 그의 주요 시 및 문학 작품을 써내 슐레겔의 《아테네움》에 발표하였다. 1800년에 노발리스는 결핵으로 의심되는 질병[1]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고, 1801년 3월 25일 28세의 어린 나이에 숨을 거뒀다.

3. 사상

4. 작품

< 푸른 꽃 > [2]

5. 여담


[1] 하지만 현대의 연구로는 유전병인 낭포성 섬유증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한다. 그 이유는 그의 형제들 중 여러 명이 그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2] 민음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