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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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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牢人과 浪人3. 浪人의 역사4. 생활5. 재수생을 가리키는 용법6. 여담

1. 개요

로닌(ろうにん)은 일본의 떠돌이 사무라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2. 牢人과 浪人

'로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牢人과 浪人 두 가지가 있다. 한국 한자음은 각각 '뇌인', '낭인'으로 차이가 나지만[1] 일본 한자음은 로닌(ろうにん)으로 동일하다.
  • 牢人: 일본에서, 섬기는 주인 집안을 스스로 떠나거나 혹은 잃어 봉록을 못 받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로 무로마치 시대에서 센고쿠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 초기까지 다이묘와 주종 관계를 맺은 무사 사무라이들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에도 시대 중기의 부랑자(浮浪者) 이미지가 아니라, 주종 관계가 끊어져서 실직한 취직 활동 중인 무사 계급으로, 언제든 다시 재취업할 수 있도록 나름 품위를 유지했다.
  • 浪人: 일본 사무라이 중에 주군(장군)이 없는 하급 무사(하급 군인) 즉 방랑하는 무사(군인)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정의에서부터 훨씬 더 넓은 집단을 포괄하는 말이다.

에도 막부 초기, 도쿠가와 가문의 도자마 다이묘 정책으로, 주군이 가이에키[2]당해 각지를 떠도는 牢人이 급증했다. 그리고 센고쿠 시대와 달리 전쟁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무라이가 재취업할 곳도 부족했다. 이 때문에 에도 시대 중기부터는 유랑하는 牢人도 浪人으로 쓰게 되었다.

즉, 엄밀히 따지자면 에도 시대 이전의 牢人을 浪人으로 쓰는 것은 잘못이다. 이 牢人는 역사적으로 엄밀하게 사용할 때에만 浪人와 구별하고, 에도 중후기부터는 牢人으로도, 浪人으로도 썼으므로 일상적 의미에서는 거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3]

3. 浪人의 역사

중세 일본 남북조시대, 전국시대~ 에도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들 중에서 다른 사무라이 군대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패잔병이 되어 자신이 충성을 맹세할 주군(장군)에게 짤려 더이상 정식 무사로서 전쟁에 참전해 돈을 벌 수 없게 되어 방랑하는 무사가 된 군인을 낭인(浪人)이라 불렀다. 원래는 유랑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신분이 토지에 귀속되는 무사계급의 특성상 그것은 곧 아무런 직업도 섬기는 군주도 없다는 뜻을 가리켰다. 한마디로 백수

전국시대에는 그래도 일본의 만성적인 전쟁 때문에 재취직의 기회가 많았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불안요소를 없애기 위하여 도시 지역에서 이들을 쫓아내고 전투가 감소하여 신규채용의 길이 막히면서 활로를 잃게 된다. 전국시대에는 많은 가문이 몰락하고 대두하는 과정에서 주인을 바꾸는 일이 빈번하여 유명한 장수들도 경력에 로닌이었던 기간이 적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도도 다카토라만 해도 열 명의 주군을 섬겼다. 서양 역사의 자유 창잡이 프리랜서와 비슷하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놓고 도요토미 정권을 무시하면서 정국이 불안해져 다시금 재취직의 길이 열렸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는 이에야스 역시 로닌들을 단속하여 먹고살 길조차 막막해졌다. 그나마 모리나 우에스기 가문 등은 가신의 연봉을 깎을지언정 해고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이런 다이묘들은 다이묘 본인이 전봉당했어도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이 많고 사업을 잘해서 유지가 가능한 것이었으며, 가이에키로 본인의 영지를 몰수당하고 하타모토로 전락하면 본인이 먹여 살릴 수 있는 핵심 가신 몇몇 빼고는 모두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친 도쿠가와 다이묘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도쿠가와의 직신을 제외하면 더 이상 군신의 계약을 유지하지 않고 하급무사들을 방출했으며 서군에 속한 다이묘들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그 가문에 속해 있던 무사들 역시 직장을 잃고 로닌이 되어 대량의 로닌이 일본에 탄생하게 되었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대에는 로닌만 추산 50만명이 될 정도였다.

결국 에도 막부 말기에는 낭인들이 신선조에 가입하거나 유신 세력에 가담하여 보신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4. 생활

대량의 로닌의 존재는 에도 시대 일본의 잠재적 위협 요소였다. 세계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사회 낙오자는 있기 마련이지만, 로닌은 무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 문제였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범죄도 일상적으로 일어났는데, 원래 칼 좀 쥐고 싸우는 사람이었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더욱이 막부에 대한 불만은 실질적인 무력 반란(케이안의 변, 죠오의 변)으로 이어지기도 쉬웠다. 농민 반란( 잇키)이 일어날 때에도 합세하여 지휘관으로 활약해 막부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장수 버프

로닌들끼리 모여서 도적떼를 형성하여 마을을 약탈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노부시(野武士)라고 불렀다. 에도 시기의 상비군 대부분이 중앙군이나 일부 유력한 번의 사병을 제외하면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에 상대도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법률상 로닌은 무사 신분이 아니었다. 때문에 장사나 직공일을 할 수도 있었으며, 가족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본인은 하루종일 칼질 연습하고 경전만 파는 백수가 되는 일이 많았다. 먹고 살기 힘든 로닌 신분을 버리고 평민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에도 막부도 이를 권장했다. 그러나 상당 수 로닌은 이를 거부하고 무사 신분으로 남았다. 현실적으로 무사 가문 출신은 계속 무사 대우를 받기도 했고, 에도 막부 시기에 평민의 취급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뱀머리보다 용꼬리가 낫다고 버틴 것이다. 그나마 나은 사례는 유술 도장을 차리거나 자경단으로 활동하다가 실력을 인정받아서 정식으로 녹봉을 받는 사무라이가 되는 것이었다.

막부도 로닌의 고용을 권장하는 등 구제정책을 펴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무사계급의 노동시장의 경직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에도 막부가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후대 쇼군들이 가이에키를 가능한 한 자제한 것 역시 가이에키해서 한 세력이 없어지면 로닌이 잔뜩 발생하기 때문이다.

5. 재수생을 가리키는 용법

20세기 말엽부터는 일본에서 재수생 고시 낭인을 비하 또는 자조해서 표현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3수는 니로 (二浪), 4수는 산로 (三浪), 5수는 욘로 (四浪) 같은 식으로 부른다. 한편, 반수의 경우는 카멘로닌(仮面浪人)이라고 부른다. 재수생인지 고시 낭인인지는 나이 대를 보면 대충 딱 견적이 나온다는 모양이다.

하도 유명해서 고시낭인은 대한민국에서도 통용되는 말이 되었다. 고시 폐인이라는 말도 이 고시 낭인으로부터 왔을 수 있다.

사실 사무라이 사회는 시험을 보고 채용되는 그런 체계는 아니고 오히려 조선 과거 제도가 오늘날의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과 형태가 유사한데, 조선의 과거 시험은 그 문턱이 매우 좁았기에 재응시자가 실제로 꽤 있었지만 그들을 부르는 용어가 오늘날까지 그렇게 잘 알려져있지는 않다.

6. 여담

  • 일본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가신과 병사들이 다이묘 한 명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네들 목숨을 스스로 갈아바친 것 역시 로닌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주군을 지켜내지 못하면 가신과 병사들은 그 책임이 물어져 해고되고, 이런 식으로 로닌이 되면 평판이 나쁘니 재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 아무리 일본군 피해가 커도 고니시, 가토 수준의 지휘관들은 살아남은 것도 이러한 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사에서 가장 유명한 로닌(浪人)으로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있다. 유명 인물들은 다들 이름값 때문에 어딘가에 재취직이 되지만 무사시의 경우 죽을 때도 로닌이었다. 그 밖에는 로닌이면서 여러 이권을 통해 대대로 다이묘급의 권세를 누렸던 야마다 아사에몬이 유명하지만, 야마다 아사에몬 가문은 말이 로닌이지 사실상 막부에 배속된 가신이나 다름없었다.
  • 주군 없이 전국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전개하기 쉬워서 그런지 일본에서 사무라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주로 로닌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나가는 선비 포지션에 가깝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일본의 영화가 바로 낭인가(浪人街).
    이발을 하지 못해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하고 낡아서 다 헤진 옷을 입었으나 칼만은 예리한 모습으로 나올 때가 많다. 사실 일본식 헤어스타일 촌마게는 면도를 자주 해 줘야 유지가 가능하다. 현대 대중매체는 빡빡이면 오히려 비주얼이 마이너스기 때문에, 로닌으로 설정하면 머리가 길어도 개연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들은 보통 창작물에서 사연을 가진 채 방황하면서 이 마을 저 마을의 사건을 해결해주는 멋진 역할로 주로 나오지만, 로닌들끼리 모여서 도적떼를 형성하여 전자의 로닌들과 충돌하는 스토리도 종종 보인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에 나오는 도적떼가 이들이다.


[1] 후술하듯 浪人이 후대에 훨씬 더 널리 쓰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낭인'이라고 할 때는 많지만 牢人을 꼭 찝어 지칭하고자 '뇌인'이라고 할 때는 거의 없다. [2] 改易. 다이묘 하타모토가 지위를 잃고 영지를 몰수당하는 것을 말한다. [3] 그래서 '牢人 浪人 違い' 식으로 검색해보면 일본 웹의 지식인 같은 페이지에서 "둘이 똑같은 의미인 줄 알았는데 무슨 차이냐" 하는 질문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두 표기 중 하나는 그냥 아테지(갖다 붙인 한자 표기)인 줄 알았다는 반응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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