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3:10:15

김판곤/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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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감독 김판곤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중경고등학교 코치

1997년 은퇴 후 1998년 중경고등학교 축구부 김강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코치로 부임했다. 1999년 백록기 전국 고교축구대회 우승을 차지, 팀 창단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기도 했다. 같은 해 중경고는 주말리그 서울 서부 리그 1위에 올라설 뿐 아니라 금강대기 전국고교축구대회 16강에 오르며 지역과 전국을 평정하는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각종 대회 호성적에 따른 김판곤의 최우수 지도자상 수상은 덤이었다.

3. 홍콩 퍼스트 디비전 1기

B급 지도자 수업을 받던 중 우연히 만난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콕카밍의 초청으로 2000년에 홍콩 세미프로 리그 소속 더블 플라워 FA 팀에서 플레잉코치직로 활약할 기회를 얻게 됐다. 4년 동안 리그 준우승, 홍콩 FA컵 우승 등의 업적을 이뤘다.

이를 기반으로 당시 리그 최약체로 꼽힌 홍콩 레인저스 FC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임 첫해 최약체로 분류된 팀을 전반기 1위까지 끌어올렸으며, 리그 종료 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며 감독으로서도 선수로서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4. 부산 아이파크 코치-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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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 감독 대행 시절[1]
2005년 귀국 후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로 재임하였다.

2006년 이안 포터필드 감독 경질 후 감독 대행을 잠시 맡아 당시 22경기 무승 부진의 팀의 체질을 개선해 4연승을 이끌며 앤디 에글리 후임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길 때까지 3개월 간 좋은 지도력을 보여줬다.

2007년 6월에는 앤디 에글리의 경질 이후 2주 간 감독 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7월에 후임으로 온 박성화 감독이 2주 만에 갑작스럽게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이동하며 감독 자리가 비어버리면서 부산 아이파크 감독 대행직을 두 시즌 사이에 세 번 맡기도 하였다. 이는 당시 K리그 최초의 사례이다.

2007 시즌 종료 후 부산이 황선홍 감독을 선임하면서 3년 만에 팀을 떠났다.[2]

본래 황선홍 감독 부임 후 홍콩에서 다시 감독 제안이 왔으나 부산에 남기 위해 해당 제안을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 부임 후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며 김판곤은 팀을 떠나야만 했다.

5. 사우스 차이나 AA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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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대표팀 감독 시절

2008년에 다시 홍콩 퍼스트 디비전으로 건너가서 사우스 차이나 AA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2008-09, 2009-10시즌 리그 2연패, 2009년 AFC 컵 4강 진출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사우스 차이나에서 두각을 보이자 2009년부터 소속팀과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그리고 U-23 연령별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등극하게 됐다.

홍콩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맡으며 2009년 동아시안 게임 우승과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 리그 자력 진출을 이끌었다. 이 공로로 2010년 홍콩 체육 지도자상을 수상하였다.

6. 경남 FC 수석 코치

2011년에는 다시 귀국하여 최진한 감독 아래 고향팀 경남 FC에서 수석 코치를 맡았다.

경남은 2011시즌 리그 8위를 차지했고, 시즌 종료 후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7.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2012년 다시 홍콩 대표팀 감독 겸 청소년 대표팀 총감독 및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 취임하였다. 사실상 홍콩 축구의 전권을 쥐었던 셈.

지난 2009년 동아시안 게임 우승 후 피닉스 프로젝트를 직접 계획하여 시행하였는데 이는 홍콩 축구의 10년 뒤를 그리는 작업으로서 홍콩 축구 저변 확대와 수비 지향적인 홍콩 축구를 공격 지향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피닉스 프로젝트 시행 후 홍콩 축구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에서 홍콩 대표팀을 이끌고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보였지만 이광종의 한국을 상대로 0:3 완패. 물론 압도적인 실력 차 및 홈 어드밴티지를 갖춘 한국이 상대였고 한국이 결국 우승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홍콩이 선전한 게 맞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 예선에서는 만만치 않은 중국 원정을 0-0으로 비기는 성과를 거뒀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과의 홈경기에서까지 무재배에 성공하며 중국에 대굴욕을 안기는 데 성공. 그리고 재계약을 성공시켰다. 홍콩 축구협회에서는 이 기세를 몰아 2019 아시안컵 진출을 생각해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시안컵 최종 예선에서 저조한 경기력으로 북한 레바논에 밀려 탈락 위기에 처하면서 홍콩 내에서의 여론도 악화되었고 관중석에는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까지 등장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영어가 상당히 유창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영어로 얘기하는 걸 보면 오랫동안 홍콩에서 생활하면서 영어를 꾸준히 배워 온 덕분인지 따로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인 듯. 직접 보면 알 수 있듯, 이때부터 이미 김판곤이 행정가로서의 장기 플랜의 계획과 목표를 짜는데 능력을 갖추었음이 보인다.

결국 2017년 말 대한축구협회에서 감독선임위원장 제안을 받고 홍콩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임한다.

8.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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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곤의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재임 시기에 대한 문서.

9. 울산 HD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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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6일,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한 후 홍명보 감독과의 갑작스런 결별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K리그1 울산 HD FC 감독 부임설이 보도되었다. 파우 마르티 비센테 수석코치도 동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이다. 울산은 여러 감독 후보 리스트를 추려 나가고 있다면서 되도록 K리그 휴식기인 8월 초에는 후임 감독을 선임하여 여유를 가지고 후반기에 임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판곤 감독은 가족들이 있는 홍콩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7월 28일 울산의 12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했다. 울산 구단 역대 최초 울산 선수 출신 정식 감독이 됐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7월 29일 한국으로 출국하여 울산 구단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선수단을 지도할 예정이며 8월 5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공식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8월 5일 취임식에서 이번 시즌 목표에 대한 질문에 리그, 코리아컵에서 우승하고, ACL 결승까지 올라가는 목표로 도전하겠다. 좋은 결과를 갖고 울산 팬들, 처용전사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의 부드럽고 선한 인상과 달리 이때는 인상이 날카로웠는데 감독 대행 당시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고 짧은 헤어스타일로 인상이 더 세보이는 면도 있었다. [2] 그리고 이 둘은 약 14년 뒤 U-23 대표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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