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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공업종합대학 Kim Chaek University of Technology 金策工業綜合大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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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 국립 |
개교 | 1948년 9월 27일 |
총장 | 박지민 |
국가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소재 | 북한 평양시 중구역 교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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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책공업종합대학은 북한의 공과대학으로, 북한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의 포스텍과 유사한 명문 공과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1] 줄여서 김책공대라고도 부른다. 이름의 유래는 김일성의 최고의 심복이었던 김책이다. 다만 공업종합대학이라 포스텍에 비해서 규모가 훨씬 크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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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숭실전문학교(현재 숭실대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폐교하자, 대동광업사를 경영하던 광산왕 이종만이 폐교된 숭실학교의 시설을 활용해서 1939년 이공계 구제전문학교를 표방하며 광산과 1개과 80명으로 구성된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세웠다( 참조). 그러나 대동공전 설립시부터 교사 신축을 위한 재원이 모자라 사채를 썼을 만큼 처음부터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대동광업은 부채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며 1940년 부채 500만 원에 달해 자본 잠식되었고, 1942년에는 부채가 800만 원으로 이미 파산 상태여서 결국 1943년 총독부의 금광 강제정리사업에 의해 해체되고 말았다.
재단을 잃은 대동공전 역시 1944년에 국립으로 이관되어[2] 관립 평양공업전문학교로 개교하였다. 대동콘체른의 사립학교로서 광업에 치중되어있던 대동공전과 다르게, 대전 말기인 1944년 일제는 전시에 긴요한 공업 전문인력을 양성하고자 평양공전에 전기과와 조선항구과를 설치했다고 한다.
평양공전은 해방 후 소련군정에 접수되었고, 1946년 의학부가 된 평양의학전문학교와 함께 김일성종합대학을 창설하고 공학부가 되었다.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 공학부에서 평양공업대학으로 독립했으나, 1951년에 한국 전쟁 가운데 사망한 김책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김책공업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1988년에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3. 학부
김일성종합대학에 비하면 출신성분을 비교적 덜 따지기도 하고 공과대학 특성상 김씨 일족과 엮기 힘들어서 그런지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이는 학과가 많은 편이다. 다만 김일성대학에서 공과대학만 뚝 떼서 세운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김일성대가 나름 종합대학을 표방하고 있는지라 겹치는 학과가 적잖이 있는편이다. 또한 한국의 공과대학에 비해 겹치는 과도 많고 전체적으로 규모가 쓸데없이 비대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그러던 2020년 말, 효율성과 조직 비대화 억제를 위해 김정은이 종합대학 체제를 접고 김일성 시대의 학부제로 돌아갈 것을 지시함으로써 김책대의 양대산맥인 기계과학기술대학과 정보과학기술대학을 모두 학부제로 격하했다. 또 영역이 겹치는 학부 몇개를 통합했다,
- 정보과학기술학부[3] -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학과, 인공지능강좌, 정보통신강좌
- 기계과학기술학부 - 동력기계학과, 기계공학과, 기계생산공학강좌
- 공업경영학부 -공업경영강좌, 기술무역강좌, 생산관리강좌
- 자원탐측공학부
- 광업공학부 - 광산개체강좌, 석탄개체강좌, 석유개체강좌, 암석채취강좌, 원유채취기계강좌
- 금속공학부 - 야금리론강좌, 흑색야금강좌, 순금속강좌, 용광로공사, 야금재료와 야금자동화 강좌
- 자동화공학부 - 정보측정공학강좌, 자동조종공학강좌, 로보트조종공학강좌, 자동조종리론강좌, 관리자동화강좌
- 동력기계학부 - 현재는 기계과학기술대학에 통합되었음. 류체기계강좌
- 재료공학부 - 용접공학강좌, 금속재료강좌, 압연설비강좌, 선반설비강좌, 베어링설비강좌, 융해설비강좌
- 전자공학부 - 공업전자강좌, 계산기강좌, 건기치료기구강좌, 신체검사기강좌, 반도체강좌, 전자부품강좌, 진공전자기구강좌, 프로그람과 집적회로강좌
- 전기공학부 - 전동기공정강좌, 전동기계강좌, 정력자동장치강좌, 결연과 케이블강좌, 전기응용강좌, 전공기술학강좌
- 선박해양공학부 - 선박설계강좌, 조선강좌, 선박동력설비와 선박자동화강좌
- 기초학부 - 응용수학과, 물리공학과, 화학공학과
- 핵물리공학부 - 핵연료강좌, 자동원자로강좌, 핵전자강좌, 물리공사강좌, 응용수학강좌, 원자로공학강좌
- 사회과학학과 - 노작강좌, 정치경제학강좌, 철학강좌, 미일침략사강좌
- 외국어학과 - 영어강좌, 로어강좌, 2외국어(중국어, 일본어)강좌
- 일용연구소 - 군수 및 국방관련 연구
3.1. 박사원(연구소)
파트타임 학생도 받는다고 하며, 현재 총 10여개의 연구소와 50여개의 연구실이 존재한다.- 나노물리공학 연구소
- 로보틱스 연구소
- 반도체 연구소
- 정보기술 연구소
- 일반금속분석 연구소
- 정보도안(Designing information) 연구소
- 기기 분석 연구소
- 재료 연구소
- 전기전원체계(electrical power system) 연구소
- 전기공학 연구소
- 정보 코뮤니케이션 연구소
- 전자계산기 연구소
- 자동화연구소
- 수치조종 연구소
4. 학교 내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학교는 1988년부터 종합대학으로 변경되어 이공계학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도 모집한다. 그러니 이 학교에서 배출되는 졸업생은 이공계뿐만은 아니다. 현재 만 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으며, 교수는 2천여 명. 연구소는 10개, 도서관 장서수는 60만 권, 그리고 부지는 40만 평방미터라고 한다. 학생수와 교수수로 따지면 규모면에서 카이스트와 비슷한 셈.[4] 다만 캠퍼스 규모는 카이스트 대덕 캠퍼스의 1/3 수준이다.당연하게도 북한의 엘리트중 엘리트가 모인 평양에 위치하며[5], 이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공과 분야에서 수재 중의 수재들만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이곳을 졸업한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급으로 인정[6]받으며, S급 공학자, 과학자, 연구원, 엔지니어 등으로 인정받는다.
북한도 유교 문화권이기 때문에 대학입시는 엄청나게 치열하며, 출신성분에서 결격사유가 없다면 명문대 졸업장이 곧 출세를 보장하기 때문에 비밀과외까지 존재할 정도로 엄청나게 공부를 열심히 한다.[7][8]
북한에서 이곳을 졸업한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전문가가 된다. 많은 수는 북한의 무기개발을 위한 연구원으로 일하며, 탈북자 소스에 의하면 핵무기 연구에 종사하던 핵공학 전공의 연구원들은 안전 따위를 무시한 연구때문에 백혈병이나, 기타 방사능 관련 병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여기를 졸업하면 북한체제의 기술계 고위직으로서의 출세는 보장된다. 북한은 고시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고위직은 출신성분과 함께 출신대학이 매우 중요시되며, 북한에서도 김책공대는 순수연구를 하는 김일성대와는 달리 응용과학의 전당이기 때문에 나와서 업적을 쌓으면 출신성분이 보통인 사람도 고위직으로 갈 수 있는, 출세길이 열리는 것이다. 대부분은 좋은 대우를 받는 북한의 여러 이공계 요직이 아닌 전문연구원으로 진출하여 잘 먹고 잘 산다. 하지만 출신성분을 중시 안 한 만큼 요직은 가끔 출신성분도 좋으면서 진짜 공부 잘 했는데 공돌이가 하고 싶어서 간 소수 몇 명만 요직에 근무하며 나머지는 그냥 조선시대 중인계급이다.
하지만 북한 강성산 총리의 사위 강명도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대학은 출신성분 우대 김책공대는 무조건 공부라고 한다. 또, 김책공대 출신 전철우의 증언에 따르면 국가에서 대학 원서제한을 두어서 각 지방마다 할당을 한다고 한다. 평양 같은 경우에는 많이 할당을 받지만 지방에는 원서를 거의 할당받지 못 한다고 한다. 일단 원서를 받으려면 공부도 잘 해야 하지만 출신 성분이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김일성종합대학에 비하면 출신 성분을 덜 따지는편, 바꿔 말하면 그만큼 체제 중심에는 들어가지 못 한다고 볼 수 있다. 무조건 출신 성분이 좋아야 출세하는 북한인데 그 출신 성분을 덜 따지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공돌이는 그냥 막 굴리겠다는 것이다.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 아파트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크고 아름답다.
5. 통일 이후 전망
통일 이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이 지거국 평양대학교로 개편된다면 이 학교는 평양공과대학(PyongTech-평텍-Pyongyang University of Technology)으로 개칭될 가능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평양리과대학은 PIST (피스트 - Pyongyang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로 불리게 될 수 있다.6. 기타
- 참고로 평안남도 평성시에는 북한의 최고 과학기술 기관인 국가과학원과 평양리과대학이 있는데, 리과대학은 출신 성분이나 학업 성적과 관계 없이 지능지수가 높은 천재를 선발하는 대학[9][10]이다. 평양리과대학을 졸업하면 일차적으로 국가과학원의 연구사로 배치된다. 이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졸업생이 북한의 과학기술 정부기관이나 공장의 관리자급과 같은 간부로 나가는 것과 결이 다른 것이다.
- 김책공대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주변에서는 으레 공대 아주마이로 불리는데, 수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 공부에 매달리느라 화장은커녕 제대로 씻고 다닐 시간도 없어 초췌한 몰골로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남북 평화무드가 이어지던 2002년에는 한양대학교와의 자매결연을 맺어 한양대 교수진이 김책공대에서 강의도 하였고 # 김책공대에 공학관을 지으려고도 하였으나 결론은 나지 않은 듯 하다. #
7. 출신 인물
- 김윤혁: 황해제철소 기사장, 정무원 부총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역임.
- 박남기
- 현철해 - 김일성종합대학출신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에서 김책공대 출신이라고 명시되었다.
- 로두철
- 박지민
- 한광복
- 전철우 - 북한이탈주민, 김책공대 기계제작학부에 입학했다고 한다. 동독의 드레스덴 대학에 유학갔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한국 대사관을 통해 귀순하였다.
- 주규창
- 리영호: 군인이 아닌 배우 리영호. 3학년 재학 중 배우로 스카웃되었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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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에서
KAIST에 대응하는 대학은
리과대학이 있다.
#
[2]
대동공전의 설립자 이종만 관련
신동아 기사에서 전봉관 KAIST 교수는 대동공전을 평남도청에서 인수하여 공립(도립)으로 전환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조선총독부 소관의 관립 제학교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조선총독부제학교관제에 따르면 1944년 4월 6일 개정으로 평양공업전문학교는 조선총독부 소관의 관립전문학교로 규정되었다.
[3]
김책대의 간판학부로, 최근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이 주최하는 국제 프로그래밍 대회 코드쉐프에서 이 학부 학생이 2등에 입상했다고 한다.
[4]
카이스트도 학부생 4천여 명, 대학원생 6천여 명 정도다..
[5]
잘 모르는 사람은
김책시(구 성진)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6]
사실 상 동급이라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두 대학의 학과는 서로 중첩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7]
일부는 뇌물을 주어 성적조작을 통해 입학을 한다고 한다(...)
[8]
이러한 점은
김일성종합대학도 마찬가지이다.
[9]
심지어 집안에 탈북자가 있어 성분이 가장 안좋은 사람도 천재성을 보이면 진학이 가능한 대학이다.
[10]
한국에서 칭하는 통칭 '이과'에 속하는 과들은 다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