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베스트팀 | ||||
|
1976 · 1977 |
|
|
이름 | 김진국 (金鎭國) |
출생 | 1951년 9월 14일 ([age(1951-09-14)]세) |
경기도
화성군 (現 경기도 화성시)[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공격수[2] |
신체 | 165cm[3] |
학력 |
경신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76 / 학사) |
소속 구단 |
기업은행(1970~1976) 육군 축구단 (1974~1976) 건국대학교 축구부 (1976~1979) SV 다름슈타트 98 (1980~1981) 보르마티아 보름스 (1981~1982) 국민은행 까치 (1983~1984) |
코치 | 국민은행 까치-국민은행 축구단 (1983~1989) |
감독 | 국민은행 축구단 (1990~1992) |
행정 |
대한축구협회 (2001~2011 / 유소년위원장) MBC꿈나무축구재단 (2002~ / 이사장) |
국가대표 | 97경기 27골 ( 대한민국)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은행원,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2. 경력
19세 때 청소년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축구 국가대표로 뽑힌 김진국은 정규풍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 레프트 윙으로서 오래 활약했다. 키는 당시 대표팀에서 최단신이었으나 스피드가 빨랐고 기술이 뛰어난 선수였다 원래 오른발잡이였으나 왼발을 꾸준히 연습한 결과 왼발을 더 잘 쓰게 되어 오른발은 강하게 찰 때, 왼발은 정확하게 차거나 드리블 할 때 썼다고 한다. 오른쪽 차범근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차범근의 신체능력과 비교할 수는 없었으나 기술로 상대를 제칠 수 있었고 코너 킥이나 크로스패스등은 차범근보다 정확했다고 한다.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에 진출한 두 번째 한국인 선수가 되기도 했다.[4]
독일에서 귀국한 후 당시 새롭게 창설된 수퍼리그에 참가하는 국민은행 까치에 선수로 입단했다. 1984년까지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다가 이후 코치로 전향해 계속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근무했다. 1990년부터 3년 간 감독을 하기도 했다.
1992년 7월부터 축구계를 떠나 국민은행 여의도지점 차장으로 은행원 직무를 시작했고 1999년 7월 국민은행 수원 매교동 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
그럼에도 축구계에서 꾸준히 일해왔다. 서울시 생활체육 여자축구단 창단 직후부터 자원봉사로 감독직을 맡았으며 1995년부터 서울 양천구에서 김진국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5]
또한 대한축구협회에서 꾸준히 일해왔는데, 여성분과위원회 멤버로 구단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1년부터 유소년위원장과 기획실장, 전무까지 하며 우수 유소년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6]
이외에도 선수시절부터 관심을 갖던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으며 2002년부터 MBC꿈나무축구재단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힘쏟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