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항일 빨치산 출신의 북한의 군인.2. 생애
1916년 1월 15일에서 현재의 량강도 혜산시 지역의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빨치산 투쟁에 참가하여 김일성 부대에서 싸웠고 해방 이후 조선인민군에 입대, 1950년에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1963년, 조선인민군 구분대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66년, 제1집단군 정치위원을 거쳐 1967년에는 최고인민회의 4기 대의원에 선출된다. 1968년에는 인민군 중장으로 진급하였으며, 1970년 11월, 조선로동당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된다. 1976년 1월 14일, 환갑 기념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1977년 10월, 평양방어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74년 2월 장길부 장의위원, 1977년 2월, 지병학 장의위원을 지냈다.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재선되었다. 죽을 때까지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직함을 유지한다. 1982년에는 최고인민회의 7기 대의원에 보선된다.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6년에는 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하였으며, 같은해, 최고인민회의 8기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86년 6월, 북소 친선대표단원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0년,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같은해 5월에는, 만경대혁명학원 원장을 맡는다.
1992년 4월 23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을 기념하여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진우, 최광, 김철만, 전문섭, 백학림, 리을설, 주도일, 리두익, 최인덕, 황순희, 태병렬, 최용진, 리종산과 함께 공화국 2중영웅이 되었으며 최고사령관 명령 0024호에 따라 태병렬, 조명선, 리종산, 리하일, 리병욱, 리봉원, 리동춘, 장성우, 조명록, 김일철, 김영춘, 김봉을, 전재선, 박기서, 김리창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92년 9월, 서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맡았다. 1995년 10월 7일, 모범적 군인으로 선정되어 김정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1997년 2월, 최광과 김광진 장의위원을 맡았으며 1998년,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1998년 9월 8일, 조선로동당 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공동결정에 따라 리용무와 함께 조선인민군 차수로 진급하였다. 1998년 12월, 전문섭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다. 2006년 1월 24일, 90세 생일을 맞이하자 김정일이 친히 생일상도 내려주는 등 정권의 원로로 대접받았다.[1] 이후로도 2.16 경축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조선소년단 입단식에서 선창을 한다거나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장병들의 김정일 충성맹세식에 참여하는 등 고령에도 여러 행사에 다녔다. 그러다가 2008년 3월 19일에 사망하였으며 김정일이 애도를 표하면서 화환을 보내주었다. 원로 1세대인것치고는 부고 발표라던가 화환 전달 소식에서 공적이 언급되지 않는 등 다소 초라한 최후였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통일정책국 정치사회분석과, 북한의 주요인물 2009(서울: 통일부, 2008)
[1]
김정일이 이날 생일상을 내려줘서 통일부도 1월 24일로 생일을 파악했지만 북한이 생일날 칼같이 생일상을 내려주지 않는다는 점이 간과된 부분이다. 조선향토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1월 15일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