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1월 7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통영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같은 해 11월에 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0년 11월에 귀국한 그는 자신의 박상건 등 동지들로부터 받은 돈과 자신이 재산 1000원 등 총 1400원을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1] 이후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그는 1921년에 다시 한 번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 귀국하였다. 당시 그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배포해 인심을 동요시키고 자금을 상하이에 송달하기로 협의를 하고 독립을 계획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일경에게 체포되었고 결국 1921년 8월 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2] 석방된 이후 그는 통영에서 머물다가 1935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