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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7a0> 출생 | 1902년 3월 15일 |
황해도 황주군 | |
사망 | 1998년 6월 6일 (향년 96세)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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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1 운동 당시 황해도 황주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2005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김두성은 1902년 3월 15일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3.1 운동이 일어나고 1919년 3월 2일 황해도 황주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천도교 신자였던 그도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제가 천도교 지도자 등 주도자들을 체포하자 김두성은 석방을 요구하고 시가행진에 참여하였다. 이에 일제는 경찰과 소방관까지 동원하였고 천도교들이 있던 교구실로 들이닥쳐 시위 참가자들과 천도교도들을 모두 체포하였고 김두성도 이 과정에서 체포되었다.1919년 5월 29일 김두성은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는데, 상고 취지서에서 “나는 한일합방 이래 조선 독립을 연면(連綿)히 포회(抱懷)하고 있던 중, 민족자결과 영토 해제 소식에 접하여 3월 2일 황주 군민과 함께 황주 읍내를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던 중 체포되었다”고 하여 독립을 갈망하였음을 당당히 밝혔다.[1]
결국 그해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고 수감되었다. 이후 1942년에는 고향인 황주군 화동리로 돌아와서 사립화성학원을 설립하였고, 천도교 화동교구의 교구장으로 재임하며 교육과 종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2]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