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칼 구스타브 에베르트 베테르스트룀 (Karl Gustav Evert Wetterström) |
생년월일 | 1911년 10월 15일 |
사망년월일 | 1991년 11월 16일 (향년 80세)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노르셰핑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76cm | 70kg |
소속팀 |
IK 슬레이프네르 (1931-1932) IK 슬레이프네르 (1933-1939) |
국가대표 | 7경기 7골 (1934-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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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베테르스트룀은 1931년에 1년간 고향팀 IK 슬레이프네르에서 뛰다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그는 토레 셸레르, 하뤼 안데르손 등과 함께 슬레이프네르의 1937-38 시즌의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인 알스벤스칸 우승을 이끌었다.2.1.2. 국가대표
1934년 9월, 핀란드에 4대5로 스웨덴이 4대5로 패한 경기가 베테르스트룀의 첫 A매치였다.1937년 6월 20일, 베테르스트룀은 1938년 월드컵 지역 예선 에스토니아전에서 4대2로 앞서는 상황에서부터 후반 28분부터 11분 만에 해트 트릭을 기록, 스웨덴의 본선행에 청신호를 밝혔다. 하지만 스웨덴은 독일에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0대5로 대패하며 조 2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베테르스트룀은 독일을 상대로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베테르스트룀은 IK 슬레이프네르의 팀 동료들인 셸레르, 하뤼 안데르손과 함께 본선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스웨덴은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부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는 쿠바. 스웨덴은 안데르손과 베테르스트룀의 해트 트릭을 앞세워 쿠바를 8대0으로 난도질했다.[2]
4강에서 스웨덴은 헝가리를 만났고 아르네 뉘베리가 1분도 안 되어서 골을 넣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스벤 야콥손의 자책골 이후 헝가리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헝가리는 스웨덴의 골문을 4번이나 더 흔들며 스웨덴의 첫 월드컵 결승의 꿈은 그렇게 날아갔다.
3위 결정전에서 스웨덴은 브라질에 2대4로 패배, 4위로 월드컵을 마감했다. 베테르스트룀은 브라질전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베테르스트룀은 블로굴트 유니폼을 입고 7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베테르스트룀은 팀에서 화부같은 역할을 했다는 평이 있다.4. 수상
4.1. 선수
4.1.1. 클럽[3]
- 알스벤스칸 우승 1회: 1937-38
- 알스벤스칸 준우승 1회: 1936-37
- 디비시온 2 외스트라 우승 1회: 1933-34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2]
일부 기록에 의하면 안데르손의 해트 트릭 중 하나는 베테르스트룀의 골이라고 주장하지만
FIFA는 공식 월드컵 보고서에서 둘 다 3골씩을 넣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3]
베테르스트룀은
IK 슬레이프네르의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