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7 20:58:15

공손책

1. 개요2. 상세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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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孫策

1. 개요

소설 삼협오의,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 등장하는 인물로 포청천의 휘하에서 참모 노릇을 하고 있다. 흔히 공손선생이라고 부른다. 비중은 포증과 전조 다음으로, 지낭(꾀주머니)라 불리울 정도로 높은 학식과 명석한 두뇌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며 의술에도 매우 조예가 높다.

2. 상세

그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포증과 함께 사건을 추리하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포증이 왜 그렇게 추리했는지를 시청자들을 대신해서 물어보는 역할이다. 포증이 공손책이 없을 때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추리를 푸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술에 조예가 깊어서 부검 등의 법의학 분야를 담당하며 재판 중에는 서기를 맡기도 한다. 관리는 아니고 그냥 서생[1]일 뿐이지만 높은 학식 때문에 이름은 많이 알려졌다. 다른 버전에는 5품 주부로 나온다. 주부라는 직책 자체가 문서 담당하고 관리하는게 주 업무이다. 일단은 데스크 업무가 주이지만 떠돌이 의사나 도사 등으로 위장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이 나온다.

옛날에 과거를 보았으나, 억울한 사정으로 장원에서 밀려나자 과거를 때려치고 서생으로 남았다가 포증에게 발탁되었다. 99년작 포공기안 노찰공손 편에서의 묘사를 보면 공손책은 가명이고 본성은 손(孫), 이름은 대충(大蟲)[2]이라고 한다. 보래현에서 약방을 하는 명의의 촉망받는 제자였다가 환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의료사고 사건에 휘말려 약혼녀를 두고 고향을 등지고 이름을 바꾸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3]

93년판에서는 포증에게 왜 그렇게 추리했는지를 묻는 송나라판 존 왓슨 정도의 역할이었지만 2008년판 이후의 공손책은 '꾀주머니(지낭, 智囊)'라는 별명에 걸맞게 포증에게 이런 저런 계책을 내기도 한다. 일단 포증의 상징인 작두를 제안한 것이 공손책이다. 원래는 황제에게서 받은 3개의 처형권인 어찰삼도(御札三道)는 3명만 처형이 가능했으나, 공손책은 삼도를 三刀로 해석, 그 유명한 용작두, 호작두, 개작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리메이크 판 안락후 사건에서는 처음에 황제가 포증을 사건 조사차 진주로 내려보낸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허락하지 말고 흠차대신으로의 임명과 상방보검을 내어 달라는 조건[4]을 걸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소년포청천에선 똑똑한 정도가 아니라 초천재급으로, 대송제일총명인(大宋第一聰明人)이라는 호칭까지 갖고 있다.

3. 여담

  • 여러 시리즈에서 이 역할을 맡은 배우 판홍쉔(范鴻軒)은 시나리오에도 참여했다.
  • 93년판 한국어 더빙은 포증 역할을 맡은 노민의 선배인 김태연이 맡았다.
  • 1974년 대만 방영판에서 이 배역은 여러 시리즈에서 포증 역을 맡은 김초군이 맡았다. 그리고 당시 판홍쉔 황제 역을 맡았다.


[1] 본인을 칭할 때 ' 학생'이라는 명칭을 쓴다. 정확하게 따지면, 공손책은 막우(幕友)로서 포청천과 같은 지방관들을 보좌하는 비서이다. 막우는 송대에 처음 등장했으며 공손책처럼 지방관의 업무를 보조하고 재판에서 지방관을 대리할 권한을 부여받기도 했다. 실제 막우들은 공손책처럼 과거 준비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장수생 내지는 과거낭인(...)들이 많았고, 간혹 사고를 쳤다거나 높으신 분들에게 밉보이는등의 여러 이유로 실직한 전현직 관리들도 있었다. 막우의 업무와 활동에 대해서는 '명 · 청시대 사회경제사'와 드라마 '우성룡'에 잘 드러나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에 비장이라 하여 중국의 막우와 비슷한 지방관의 막료 집단이 형성되지만,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막우나 비장이나 생소한 개념이기에 드라마에서는 주로 고문이나 비서로 많이 번역한다. [2] 고양이과의 표유류로 호랑이와 흡사하며 조선시대에 호랑이를 대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문제는 섬세한 공손책의 이미지에 맞지않는 야수를 뜻하는 이름이라는 것이 반전이다. [3] 환자는 여성으로 음식에 조금씩 들어간 광물인 연사를 장기간 복용해 연사가 쌓여 담석이 되었고 급성 담석증으로 죽었던 것이다. 공손책도 처음에는 담석증으로 인한 병사로 보았지만 무엇때문에 발병했는지는 몰랐다. 환자의 남편은 애처가였는데 아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첩을 들이긴 했지만 본처를 아꼈기에 첩을 둘째 정실로 올려줄 수 있는데도 자기 부인이 상처 받을까봐 첩을 정실로 맞이하지 않았다. 그러자 첩은 정실이 되기 위해 음식을 자신이 손수 요리해서 대접하면서 서서히 죽게 만든 것이다. 첩의 아버지는 광부였기 때문에 연사의 이용에 능숙했던 것. 첩은 정실부인이 죽은 뒤에 남편에게 공손책(당시 손대충)이 치료를 잘못해서 죽은거라고 모함했는데, 이는 자신이 정실부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냈다는 구실로 정실부인으로 올라가기 위함이었다. 이를 믿은 환자의 남편이 현령에게 고발을 했으나 현령은 손대충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환자의 가족이 괜히 난리를 피운다고 여겨 병사가 맞다고 통보했으나, 남편은 판결에 불복해 손대충을 죽이려고 해서 현령의 당부로 손대충이 잠시 피신했고, 이 사이에 손대충의 사형이 손대충이 죽었다고 둘러대고 사매인 손대충의 약혼녀를 어떤 왕야에게 시집을 보냈다.낸 것이다. 손대충의 약혼녀는 손대충이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터에 왕야의 구혼을 받자 시집가게 된 것. [4] 흠차대신은 황제의 전권위임을 받은 대신이라는 뜻이므로 해당 사건에서는 황제 밑으로는 죄다 잡아넣을 권리를 얻게 된다는 의미다. 상방보검은 그 증표 정도 되는 물건이고. 흠차대신이 되지 못할 경우 상대가 포증보다 높으면 잡아넣기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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