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제1백국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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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098><colcolor=#fff> 포르투갈 백작 곤살루 멘데스 Gonçalo Mend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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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925년경 |
사망 | 997년경 |
재위 | 포르투갈 백국의 백작 |
950년 ~ 997년 | |
배우자 | 일두아나 펠라스, 에르메센다 구티에레스 |
자녀 | 멘도 곤살베스, 라미루 곤살베스, 로센도 곤살베스, 디오고 곤살베스, 무마도나 곤살베스 |
아버지 | 헤르메네길도 곤살베스 |
어머니 | 무마도나 디아스 |
형제 | 디오고 멘데스, 라미루 멘데스, 오네카 멘데스, 누누 멘데스, 아리아스 멘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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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백국 5대 백작.2. 생애
925년경 포르투갈 백작 헤르메네길도 곤살베스와 카스티야 백작령에서 포르투갈 백작령으로 이주한 귀족 디오고 페르난데스의 딸 무마도나 디아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 디오고 멘데스, 라미루 멘데스, 오네카 멘데스, 누누 멘데스, 아리아스 멘데스가 있었다. 943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 무마도나 디아스가 여백작으로서 포르투갈 백국을 다스리다가 950년 후반에 여섯 자식에게 영지를 골고루 양도하면서 그를 포르투갈 백작에 선임했다.964년 아내 일두아나 파이스와 함께 모레이라 데 코네고스 와 카스타 네이라 마을을 어머니 무마도나가 세운 기마랑이스 수도원에 기부했다. 한편 레온 왕국에서 오르도뉴 4세와 산추 1세의 내전이 한창 벌어졌을 때 오르도뉴 4세를 지원했다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지원에 힘입어 내전에서 승리한 산추 1세에게 미움을 사고 말았다. 966년, 산추 1세는 그의 영지로 쳐들어가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고 그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해 12월 19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레온 왕국의 성직자이자 학자였던 삼피로의 연대기에 따르면, 신추 1세는 곤살루가 바친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독살당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뜬 소문을 그대로 믿고 적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968년 갈리시아의 귀족 로드리고 벨라스케스의 친척이자 산 마르티뇨 데 파소의 수녀원장인 군트로다가 산타 콤바 수도원을 강제로 빼앗았다. 이 수녀원의 본 주인이던 오도리노가 도움을 요청하자, 무마도나는 아들 곤살루와 라미루를 통해 군트로다에게 "volens nolens(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도원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군트로다가 이에 불응하고 로드리고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 두 가문의 전쟁이 벌어졌고, 곤살루가 로드리고를 아귀온차 전투에서 격파하면서 종결되었다. 982년 레온 왕위에 오른 베르무두 2세는 로드리고의 아들이자 이리아 프라비아 교구의 주교인 펠라요 로드리게스를 해임했는데, 그가 이 일에 관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981년, 라미루 3세가 루에다 전투에서 후우마이야 왕조의 사령관 알 하지브 알 만수르에게 참패했다. 만수르는 여세를 이어가 레온 왕국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고, 982년에 수도인 레온에 입성하여 철저히 파괴했다. 알 만수르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왕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곤살루는 갈리시아와 포르투갈 귀족들을 규합해 982년경 오르도뉴 3세의 사생아 베르무두 2세를 갈리시아 왕으로 옹립하며 반기를 들었다. 베르무두 2세는 982년 봄과 여름에 갈리시아 전역을 공략하며 위세를 떨쳤다. 라미루 3세는 이를 진압하고자 출진했고, 983년 초 양자는 갈리시아의 안타스 데 울라 근처 포르텔라 데 아레나스에서 격돌했지만 양측 모두 막심한 피해를 입었을 뿐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베르무두 2세는 이후에도 갈리시아 왕을 자처하다가 985년 라미루 3세가 사망하자 레온과 카스티야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레온 국왕에 선임되었다.
997년, 알 하지브 알 만수르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군이 레온 왕국의 서부 영토를 관통하여 포르투갈과 갈리시아를 파괴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진입한 뒤 그곳의 대성당을 비롯한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성당 대문을 가지고 가서 코르도바 모스크에 내걸었다. 곤살루는 이때 사망했다고 전해지나, 만수르와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는지 병에 걸려 사망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헤르메네길도 곤살베스의 형제인 펠라요 곤살베스의 딸 일두아나 펠라스와 결혼하여 멘도 곤살베스, 라미루 곤살베스, 로센도 곤살베스, 디오고 곤살베스, 무마도나 곤살베스를 낳았다. 983년 7월 이전 일두아나가 사망한 뒤 갈리시아 귀족 구티에레스 멘데스의 딸 에르메센다 구티에레스와 재혼했으나 자식을 낳지 못했다. 그가 사망한 후 장남 멘도 곤살베스가 포르투갈 백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