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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정사 고윤석 高允錫 | Koh YoonS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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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colbgcolor=#fff,#121212> 1927년 1월 13일 |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 |
사망 | 2022년 1월 4일 (향년 94세) |
법호 | 보산(譜山) |
법명 | 문국(文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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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물리학자이자 前 서울대학교 부총장, 교수 겸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초대 총장. 생전 대한민국 과학계와 원불교에서 큰 업을 이뤘다.2. 생애
1927년 1월 13일,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서 아버지 고중봉 교정과 어머니 예타원 김성덕 정사 사이에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원불교 집안이라 원기 24년(1939년), 어머니의 연원으로 총부교당에서 입교해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1954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1963년 네브래스카 대학교 링컨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이론핵물리학을 전공했고 귀국 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로 강단에 섰고,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1960~197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 현대 물리학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 크게 공헌한 학자로 꼽힌다. 특히 핵물리학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핵물리학상을 직접 제정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상은 매년 핵물리학을 전공한 젊은 연구자 가운데 연구 업적이 탁월하고 국내 핵물리학 발전에 기여할 인물을 선정해 상금과 상패를 수여한다.
과학계 후진 양성을 하면서도 종교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15년 간 원남교당 교도회장을 지냈고, 원기 67년(1982년)에 서울교구 교의회의장을 시작으로 원불교청운회연합회 초대회장으로서 전국 청운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데 역할을 했다. 그 후, 원불교교수협의회회장, 재가수위단원으로 당선되어 재가교도로서 교단 법규의 규격화를 위해 힘썼다. 또한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난관에 처했을 때, 무보수로 관장직을 맡아 일을 해결하고 정상화시켰다.
1998년 우리나라에서 학자로서는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원이 됐다.
1990년 대한민국과학기술상을, 1992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각각 받았다. 아이적뉴턴(1970), 자연과학개론(1972), 현대물리상(1992) 등 그외 다수의 상을 받기도 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의 리하이 대학교의 초빙연구원으로 있다 같은 해에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원광대학교의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원기 87년(2002년),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초대총장을 역임했다.
2021년 12월 7일,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나란히 딴 고윤석, 박종숙 장학기금 10억 원을 쾌척했다. 이에 서울대는 고은희 덕성여대 명예교수, 사위 최명언 서울대 명예교수 등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세정 서울대학교 총장이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당시 오세정 총장은 "고윤석 명예교수님은 높은 경륜과 학덕으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시고 물리학자로서 학문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해오셨다"며 "나눔과 배려의 미덕으로 지식인의 공적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해주신 고윤석, 박종숙 장학기금은 자연과학대학이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동력으로 소중히 사용하겠다"는 표부를 밝혔다.
2022년 1월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1]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날은 1월 6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전라북도 익산시 원불교 영모묘원이다.
[1]
안타깝게도 생일을 9일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