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다카가키 유츄(高垣雄柱) |
본관 | 제주 고씨[1] |
출생 | 1923년 12월 1일[2] |
강원도 정선군 정선면 봉양리[3] | |
사망 | 1943년 7월 (향년 19세) |
김천소년형무소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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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강원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춘천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독서운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벌였다. 민족서적을 통한 항일의식 강화를 목표로 했다. 1941년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네이버사전
2. 생애
1923년 12월 1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면(현 정선읍) 봉양리에서 아버지 고연욱(高演郁, 1887. 12. 21. ~ 1938. 2. 21.)[4]과 어머니 정선 전씨(1887 ~ ?) 전정현(全正鉉)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고연욱은 1921년부터 1928년까지 정선군 속(屬),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영월군 속(屬)으로 근무했으며, 이후 정선군 농회 평의원, 평창세무서 소득조사위원 등으로 근무하다가 1938년 2월 21일 별세했다.그는 춘천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8년 가을, 이 학교의 항일 학생 비밀결사인 상록회(常綠會)가 일본 제국 경찰에 발각되어 전회원이 체포된 뒤, 고제훈(高濟勳)·권혁민(權赫民)·김영근(金榮根)·박영한(朴泳漢) 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독서운동을 전개하면서 항일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이들은 민족서적을 구입해 돌려가면서 읽은 뒤, 회원들 간에 독후감을 교환하거나 토론 등을 통해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상록회의 후신 역할을 하였으나, 상록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조직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1941년 3월, 독서회의 회원인 고제훈·박영한· 원후정 등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일제의 민족차별에 분개해 춘천고등보통학교 교내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대규모로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싸움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일본 제국 경찰까지 개입해 한국 학생들을 탄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독서운동 조직도 발각되고 말았다.
고웅주 역시 이때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1년간 고문을 받은 끝에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단기 1년 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