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2-14 02:17:17

고용진(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50년 10월 1일
전라도 흥덕현 일남면 가평리
(現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1]
사망 1922년 2월 26일 (향년 71세)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
본관 제주 고씨[2]
자 / 호 운서(雲瑞) / 송재(松齋)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850년 10월 1일 전라도 흥덕현 일남면 가평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시기의 의병장 고경명의 후예이며 독립유공자 고예진의 사촌 형이다.

1906년 6월 4일 최익현 을사조약 체결에 반발해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강회를 열어 태인 일대의 유생들을 규합했을 때, 고용진은 강종회 등 포수 30여 명을 거느리고 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익현의 의병이 끝내 패하자 고향에 잠적했다.

1913년 9월 임병찬이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각도에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할 때, 고용진은 다시 참가했고 1914년 2월 고종으로부터 종품 가선대부 독립의군부 회계총관으로 임명되어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가 독립의군부의 정체를 간파해 임병찬 등 지휘부를 모조리 잡아들이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자 낙담한 채 고향에 은거했다. 이후 1919년 4월에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해 호남지방 유림서명운동을 전개했다. 1922년 2월 26일에 사망했으며, 송천집(松川集)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고용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제주 고씨 장흥백파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고석진 고제천도 이 마을 출신이다. [2] 장흥백파 19세 진(鎭)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