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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고수식(高壽植) |
생몰 | 1872년 3월 11일 ~ 1940년 6월 14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사성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서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2. 생애
그는 사성리 이장을 맡으며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품고 독립운동을 구상했다. 그러던 1919년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자, 그는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했다.3월 19일 도리리 장날을 기해 시작된 대호지면의 독립만세운동에 호응하여 4월 4일의 거사일에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천의장터까지 시위대를 이끌었다.
군중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이에 일제 경찰과 헌병이 주동인물을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에는 검거되지 않았으나 이해 5월 10일에 체포되었다.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강도, 소요 혐의로 송재만· 한운석과 함께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불복 공소하여 이해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0년 6월 14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