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8세기 경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용장계(茸長溪) 법당골에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 석조 약사여래좌상.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높이 1.1m.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 좌상으로, 연구 결과 8세기 경에 신라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래는 경주 남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불상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최초 발견되었던 직후의 모습. 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용장사계석조약사여래좌상(茸長寺溪石造藥師如來坐像)
정확히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부터 이미 불상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일단 머리가 참수되어 사라져 있었고, 불상 뒤의 광배도 예리하게 반으로 잘라져 있었다. 참수당한 머리는 한동안 찾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머리는 포석정 부근의 민가에서 타작에 사용하고 있었다. 1929년에 일제에 의하여 이 불상이 박물관으로 옮겨진 후, 다시 38년이 지나 머리도 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당시 문화재 연구의 어려운 실상 때문인지, 이 둘이 같은 불상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따로 전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1975년 박물관을 새로 지어 옮길 때 그제서야 머리 아래 부분과 불상의 목부분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합쳐 놓아 드디어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파괴된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차원에서 유학자들이 불상을 끌어낸 후 목을 치는 일이 다반했는데 이 신라 불상 역시 그때 변을 당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경내에 소장 중인 다른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불상들의 모습. 맨 앞에 있는 본 불상 등 복구에 성공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모조리 모가지를 친 것을 볼 수 있다.
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있는 약사여래상은 무릎이 넓어 자세가 평안하며 머리는 곡식 타작에 사용되었던 관계로 많이 마모되었지만 풍성한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있다. 큼직한 육계에 나발을 표현하였다. 목에는 신라 특유의 삼도를 표현하였고, 가사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이며 승기지는 나타내지 않았다. 등쪽에도 오른쪽 옆구리로 비스듬히 가사를 걸치고 왼쪽 어개에서 수직으로 드리웠다. 오른손을 무릎에 내린 항마촉지인이며, 왼손은 배 높이에서 무릎에 얹고 상당히 큰 약그릇을 들었는데 지금은 마모되어 펑퍼짐하다.
광배는 이중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따로 원형으로 조성하여 중간중간 꽃문양 장식을 하였다. 안쪽에는 당초무늬를 조각하고, 바깥에는 길고 화려한 불꽃무늬를 표현하였다. 불상 밑면이 마모되어서인지 광배가 너무 높아 어울리지 않는다. 팔각형 대좌의 하대에는 복련을 조각하고, 중대석은 모서리기둥을 새긴 팔각형이다. 상대석에는 연곷을 이중으로 앙련을 조각하였는데, 안에는 둥근 꽃장식을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으로, 신라시대의 석조공예술 및 불교미술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사진 출처 : 경주 남산 용장계 석조약사여래좌상
이 남산 용장계(茸長溪) 지역에는 똑같이 머리가 참수당한 신라시대 석조 약사여래좌상이 하나 더 있다. 본 불상과의 구분을 위해 '경주 남산 용장계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이라고 부른다. 이 절골 불상은 관리가 필요한 다른 신라시대 불상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아직 박물관 안으로 들여와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는 못하고 있고 표지만 하나 세워놓은채 그냥 지금도 용장계곡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