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21:28:16

강화 가릉

{{{#!wiki style="margin: -15px -10px -15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colbgcolor=#315288> 강화 가릉
江華 嘉陵
Gareung Royal Tomb, Ganghwa
소재지 <colbgcolor=#fff,#1f2023>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6-2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려시대
수량/면적 2,656㎡
지정일 1992년 3월 10일
시대 고려 고종 31년( 1244)
소유단체 산림청
관리단체 강화군 }}}
파일:강화 가릉_전경.jpg
2015년 촬영된 가릉의 전경[1]



1. 개요2. 상세



1. 개요

嘉陵/가릉

고려 제24대 국왕 원종의 제1왕후 순경태후가 안장된 왕릉.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자리하고 있다.

2. 상세

파일:강화 가릉_석실 입구 .jpg
파일:강화 가릉 석실 내부.jpg
가릉의 석실 입구와 석실내부[2]
왕릉의 양식은 돌방무덤으로 특이하게 지하가 아닌 지상에 돌을 쌓아 석실을 만들었다.[3] 석실 상부에는 할석을 넓게 덮고 그 위에 봉분을 얹었으며 석실 윗면은 8각으로 봉분 지대석을 둘렀는데, 8각 지대석은 가릉과 석릉에서만 발견된 특이한 양식이다.[4]

석실 내부에는 원래 회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박리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떨어져 나간 회벽에 그림을 그린 흔적이 남아 있어 고려가 석실 내부에 벽화를 그리던 전통을 따랐음을 알려준다.

파일:강화 가릉_석호.jpg
파일:강화 가릉_문인석.jpg
가릉의 석호와 문인석[5]
능역에는 등신대 크기의 석인상 2개와 석수 2마리가 남아 있다. 석릉의 석인상보다 상태가 좋아서 신체 부분의 조각선이 살아있다. 얼굴은 제주도의 돌하르방이나 여타 장승과 다를 바 없으나 손에 홀(笏)을 들고 있어서 애초에 문석인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발굴 당시 석인상의 하부에서 시멘트가 발견된 반면 이를 세우기 위한 토대인 적심이 확인되지 않았다. 때문에 1974년에 능역을 정비할 때 가릉과 가까이 있는 능내리 석실분에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6]

석수의 경우 사각기둥 몸체에 눈, 코, 입만 세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석호(石虎)로 추정된다.

파일:가릉 은제나비장식.jpg
파일:가릉 옥장식.jpg
가릉에서 출토된 은제나비장식과 옥장식
또한 태후의 무덤인 만큼 당송시대 동전, 은제나비장식, 은제경첩, 새 모양 옥 장식품, 호박 구슬, 석간(石簡) 등 금속 유물과 여성용 장신구 등 출토되었다.
현재의 가릉은 1974년에 처음 보수한 이후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재정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고려 고종 홍릉, 고려 희종 석릉, 고려 강종 비 원덕태후의 곤릉과 함께 남한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고려왕릉 중 하나이다.


[1]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2]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3] 현재까지 조사가 이루어진 고려왕릉들 중 석실을 온전히 지상에 조성한 왕릉은 가릉이 유일하다. [4] 일반적인 고려왕릉은 12각으로 지대석을 두른다. [5]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6] 출처: 국가유산청 월간국가유산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