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08:00:48

강규수

<colbgcolor=#0047a0> 출생 1881년 7월 2일
경기도 장단군 진남면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규수는 경기도 장단군 진남면 사람이다. 3.1 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1919년 3월 26일 밤, 진남면 동장리 성화학교(聖化學校) 뒤편에서 이창영(李昶永)과 함께 군중 100여 명을 지휘해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창영이 군중에게 진남면 면사무소로 갈 것을 제안하자, 강규수는 이창영, 한기동, 정순만(鄭順萬)[1]과 함께 선두에 서서 군중을 인솔하여 면사무소로 행진했다. 이윽고 면사무소 앞에 이르자, 강규수는 큰소리로 "면장을 죽이자, 면사무소를 부숴라."고 외쳤다.

강규수 등은 면사무소로 들어가 면장을 찾았으나 도망친 후였다. 이창영은 곤봉으로 면사무소 장지문을 쳐부쉈고, 강규수는 한기동, 정순만과 함께 군중을 이끌고 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져 유리문을 파손했다. 그 결과 면사무소는 현관 입구 좌측 유리창 17장이 깨졌고, 사무소 입구 문등 유리 4장이 파손되었다. 이후 강규수는 체포되어 1919년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강규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정순만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