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0 00:36:40
95식 함상전투기 (九五式艦上戦闘機 / Nakajima A4N)
형식 : 단발단좌 복엽 함상전투기
설계 : 모리 시게노부(森重信)
생산 : 나카지마 비행기(中島飛行機)
초도비행 : 1934년 9월
운용 시기 : 1936년~1941년
전장 / 전폭 / 전고 : 10.00m / 6.64m / 3.07m
익면적 : 22.89 m2
중량 : 1,276 kg~1,760 kg
동력 : 나카지마 히카리 1형(中島 光 1型) 공랭 9기통 엔진 (730 hp) 1기
최고속력 : 352 km/h
상승한도 : 7,740 m
항속거리 : 850 km
무장 : 비식 7.7mm 기관총(毘式七粍七固定機銃) 2정 / 30~60 kg 폭탄 2발
생산수 : 221대
1.1.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재도전
일본 해군이 90식 함상전투기(九〇式艦上戦闘機)의 후계 기종을 선정하는 사업에 뛰어든 나카지마(中島)와 미츠비시(三菱)는 각각 7식 함상전투기(七試艦上戦闘機)를 발표하며 맞섰으나 성능면에서 눈에 띄는 진보가 없어 두 회사 모두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나카지마 사는 포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후속 전투기 개발을 진행했다. 신형 전투기 개발은 1930년에 나카지마 설계부에서 새로 입사하여 구조 설계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신참 엔지니어인 모리 시게노부(森重信)에게 맡겨졌다. 시게노부 기사는 처음에는 90식 함상전투기 3형의 설계를 기본으로 약간 개량을 더하고, 엔진을 코토부키(寿)에서 히카리(光)로 바꾸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거의 200 kg 가까이 더 무거워진 엔진 교체로 인한 중량 증가와 그로 인해 항속 성능이 떨어지게 되자 이런 증상들을 잡아내려면 전체적으로 설계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프로토타입 1호기는 90식 함상전투기를 개조하여 1934년(쇼와 9년) 가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히카리 엔진의 초기 과열 문제와 조종석 시야가 나빠진다는 결점과 더불어 체공시간이 짧다고 지적되었고, 이에 해군의 요구에 응하기 위한 개조를 더하느라 정식 채용은 1936년(쇼와 11년) 1월에야 될 수 있었다. 그 모체였던 90식에 비하면 더 직경이 굵고 출력이 730마력으로 늘어난 엔진을 얹은 덕분에 성승 고도나 속도에서 눈에 띄는 진보를 보여주었다. 모리 시게노부 기사는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서 반구형 증가 연료탱크를 날개 하면에 부착하는 개량을 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전투기에서 자주 쓰이는 콘포멀 연료탱크와 같은 것이었다. 테스트 도중에 이 설비는 새로운 쓸모가 발견되었는데, 해상에 불시착하는 경우 보조 탱크의 개솔린을 버려서 비우고 나면 기체가 가라앉는 것을 막는 부주로 쓸 수가 있었다.
1.3. 짧은 실전 경험
이 전투기는 표준 채택까지 지연되는 바람에 정작 1936년에 해군항공대에 배치가 시작될 때는 저익 단엽기로 개발된 96식 함상전투기의 프로토타입이 눈에 띄는 고성능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에 해군항공본부는 96식 함상전투기가 채택되던 1936년 11월까지 전력 공백을 메꿔주는 징검다리와 같은 포지션이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생산수는 원형기를 포함해도 221대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지만 1937년(쇼와 12년)에 일본이 중일 전쟁을 도발하자 함대 손실분을 보충하기 위해 생산은 1940년(쇼와 15년)까지 이어졌다. 중일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95식 함상전투기가 상하이 상공을 누비면서 실전에 사용되었더라도, 96식 함상전투기의 배치를 진행할 때 맞교대시키면서 후방으로 빼냈다. 당시는 2선급으로 돌려진 전투기는 점령지에 주둔하게 되거나 자국 방공 임무로 돌려지는 것이 보통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구세대의 복엽 전투기에 불과한 95식은 훈련기 외에는 쓸만한 구석이 없었다. 95식은 태평양 전쟁 중기까지 후방의 훈련부대에서 초등 훈련기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