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Der Neunte Tag, 2004
다하우 집단수용소에서 끔찍한 날들을 보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낸 장 베른하드의 일기 <신부 바라크 25487>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004년작이다. 베른하드는 실제 프랑스에서 나치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논문을 써 나치에 의해 체포됐고, 다하우 수용소로 보내졌다. 양철북의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가 감독했다. 액션신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충분히 명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 다운폴에서 괴벨스 역으로 열연한 울리히 마트데스가 여기선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된 헨리 크레머 신부를 맡았다는 점인데 마트데스는 다운폴 촬영과 이 영화의 촬영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는데[1] 엄청난 퀄리티의 연기력을 보여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배우의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진짜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수감자라 해도 믿을 정도이기 때문에(...)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수감자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현실성 있는 연기를 위해 다이어트에 들어갔지만 이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여담으로 배우가 감독에게 '나도 다이어트 할까요?'라고 묻자 아니, 님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란 대답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울리히 마트데스 외에도 게슈타포 소위 게하르트 역을 맡은 아우구스트 딜의 연기도 역시 호평을 받았다. 참고로 그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영화에서 선역으로 출연하다가 이 영화에선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의 연기를 보였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아우구스트 딜은 수많은 영화에 나치 독일군 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한다.
2. 줄거리
영화는 다하우 수용소로 들어오는 수감자들의 행렬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나치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논문을 써서 발표했다가 프랑스 국경에서 체포된 룩셈부르크의 헨리 크레머 신부도 그들 중 하나인데 그는 수용소에 들어온 첫날 신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길이라고 말한 SS 장교에게 형제?라고 되묻다가 모자 벗으란 폭언과 함께 안면을 구타당해 쓰러진다.그와 함께 잡혀온 동료 신부인 난센은 노역 중인 그에게 물을 전달하고 어머니의 사진을 보는 그에게 안부를 묻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수용소에선 수용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 수감자들에게 물공급을 중단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마찬가지로 갈증에 허덕이던 크레머는 어느날 낡은 수도관에서 떨어지는 녹물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목마름을 해결한다.
수용소의 지옥과도 같은 환경과 처우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매일같이 구타를 당하는 지옥같은 나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던 1942년 1월 크레머는 수용소장으로부터 9일간의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지역 게슈타포 책임자인 게하르트 소위와 만난 크레머는 그가 휴가를 받은 이유에 대해 알게된다. 룩셈부르크 대주교를 설득시켜 독일에 협력하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게하르트는 크레머에게 회유에 실패하면 다시 다하우 수용소로 보내질 것이고 도망치면 강제수용소의 룩셈부르크 출신 수감자들을 모두 죽일것이라 협박한다. 대신 대주교를 회유하는데 성공하면 자유의 몸이 되어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란 감언이설도 빼놓지 않는다. 크레머는 생존의 욕구와 종교적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게하르트는 크레머에게 소련 당국에게 학살당한 소련의 종교인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의 정당성에 대해 역설하고 그에게 초콜릿을 주며 회유를 시도한다. 하지만 크레머는 그에게서 받은 초콜릿을 게슈타포 건물 밖에서 놀던 소녀에게 준다. 게하르트는 사실 SS 소위가 되기 이전에 신부가 될 운명이었으나 신학교의 현실에 불신감을 품고 전향하여 SS에 전향한 인물.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종교적 신념과 근거를 대며 크레머를 회유하면서도 상관인 지역 나치당 지도자로부터 회유에 실패하면 다시 동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듣는 처지였다. 나중에 나오지만 그는 동부 수용소에 있었는데 그곳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묘사로 보아 동부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 영화에서도 그런 내용이 곳곳에서 은밀하게 암시된다.
룩셈부르크 교구 사무장인 메르시는 그에게 히틀러에게 협력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하고 대주교는 그에게 양심을 지키라는 말만 한다. 크레머는 둘에게 자신이 다하우에서 본 것들에 대해 토로하며 자신도 신에게 수십번은 기도했지만 신은 아무 말도 없었다며 괴로워한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가족들도 처제는 그가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여 피하려고 하고 형은 자신을 위해 게하르트를 고급 식당에 초대해 전쟁 중엔 먹기 힘든 계란 스크램블을 대접하며 로비를 시도하지만 게하르트는 크레머의 협조만이 그가 살길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로비가 실패로 돌아가자 형은 자신을 데리고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로 도망치려고 한다. 이와중에 크레머가 형을 따라 도주한 것으로 안 게하르트가 게슈타포들을 이끌고 그의 집을 찾아와 임신한 여동생의 뺨을 때리는데 문가에 나타나 이를 항의하는 크레머를 보곤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디데이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크레머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데...
마침내 9번째 날,결심을 굳힌 크레머는 파티가 열리는 나치당사로 찾아가 게하르트와 다시 만난다. 게하르트는 크레머가 전향한 것으로 알고 기뻐하며 그에게 술까지 대접하며 잘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곤 그가 가져온 편지를 뜯어 내용을 확인하는데....
크레머가 가져온 것은 백지였다. 어안이 벙벙해하는 게하르트에게 크레머는 끝내 자신은 본능보다 양심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게하르트는 분노하여 그에게 권총을 겨누지만 크레머로부터 동부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란 질문에 끝내 총을 다시 내리곤 유유히 사라지는 크레머를 그냥 보기만 한다.
사실 크레머에겐 숨기고픈 비밀이 있었다. 그는 수도관의 녹물을 마시곤 목숨을 건졌는데 이 물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 때문에 자신보다 허약한 난센에게는 수도관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고 결국 난센은 탈수증으로 죽고 만다. 그때의 일이 양심의 가책이 되어 그를 무겁게 짓눌러왔던 것. 진실을 안 그의 여동생이 크레머의 잘못이 아니다며 위로하지만 그래도 크레머는 그 일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자신의 이기심이 지금으로 하여금 마지막 양심을 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그는 결국 자신의 양심을 택함으로써 그때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에 대해 사죄를 하고 싶었다.
다시 수용소로 돌아온 크레머. 그는 자신의 소집품을 검사하는 동료 죄수자에게 담배를 뇌물로 주곤 몰래 소시지를 숨겨 들어간다. 동료들은 물론 수용소장조차 다시 돌아온 그를 내심 놀란 눈치로 쳐다본다. 저녁에 되고, 크레머는 자신이 숨겨서 들어온 소시지를 숟가락으로 잘라 동료들에게 배급한다. 이후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실존인물인 장 베른하드는 살아남았다는 크레딧을 끝으로 영화는 끝난다.
3. 기타
-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성공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을 물론이고 엑스트라 정도인 단역들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것이 중평. 특히 수용소장의 악랄한 모습[2]크레머가 양심에 고뇌하는 모습이나 게하르트도 그를 회유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장면들이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 영화 귀향이 개봉했을 때 영화의 완성도를 비판하면서 이 영화를 예시로 든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은 정말 차이가 넘사벽이다.
- 수용소 촬영 첫파트가 끝난 뒤 재소자 역의 배우들과 수용소장과 독일군 역의 배우들이 같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다(...) 그것도 시간 문제인지 촬영 때 입었던 옷 그대로! 물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 기타 실존인물에 대한 뒷 이야기나 감독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 사이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