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2:19:21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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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문3. 여파4. 지은이

1. 개요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추모시. 지은이는 김덕규. 사건 발생 4일 후인 2010년 3월 29일, 대한민국 해군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되었다.

2. 전문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김덕규


772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漆黑)의 어두움도
서해(西海)의 그 어떤 급류(急流)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作戰地域)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1]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歸隊)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2]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浮上)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 갈 때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1988년생),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1989년생),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戰線)의 초계(哨戒)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

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3. 여파

게시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 시를 보러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한순간 해군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상당 수의 신문 1면에 전문이 실리기까지 하였다. 방송사마다 9시 뉴스에 시 전문에 웅장한 음악과 함께 나오기도 하였다. #

이 시기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도 추모시가 많이 올라왔는데 위의 시 때문에 한번 떠보려고 하는 거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 중에서 "천안함은 침묵으로 대답한다."라는 답글 형식의 시가 올라왔다고 어느 한 언론사에 올라가기도 했지만, 추모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정부 비판 내용도 있고, 수준도 낮아서 해당 신문에만 실리고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4. 지은이

필력이 워낙 좋은 시라서, 당시에는 국내 문학계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모 문학가가 가명으로 쓴 것 같다는 추측이 나왔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찾았는데, 오히려 육군 군의관 출신의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김덕규 교수로 밝혀졌다. "신문기사에서 승조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읽다보니 가슴 속에서 어떤 뜨거운 것이 생겨났다."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그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서 써내려갔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후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고 한다.


[1] '가스터빈실'이 맞지만 시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늘여썼다. [2] 박경수 중사는 제2연평해전에도 참전하였다. 제2연평해전 후유증 때문에 가족들이 그의 함선 근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음에도 박경수 중사는 다시 함선 근무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