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dcdcdc> 발생일 | <colbgcolor=#fff,#1c1d1f> 1946년 4월 5일 |
유형 | 불명[1] |
발생 위치 |
[[몰타| ]][[틀:국기| ]][[틀:국기| ]] |
기종 | 빅커스 웰링턴 |
운영사 | 영국 해군 |
기체 등록번호 | HE274 |
출발지 |
[[몰타| ]][[틀:국기| ]][[틀:국기| ]] 로얄 에어 포스 할파 비행장 |
도착지 |
[[몰타| ]][[틀:국기| ]][[틀:국기| ]] 로얄 에어 포스 할파 비행장 |
탑승인원 | 승무원: 4명 |
사망자 | 탑승객 4명 전원 사망 |
지상 인원 16명 사망 | |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1946년 라바트 비커스 웰링턴 추락 사고 |
영어 | 1946 Rabat Vickers Wellington cr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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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6년에 발생한 항공사고이다.2. 사고 기체
사고기와 동일 기종. |
3. 사고 과정
3.1. 전개
1946년 4월 5일 오전 10시 50분, 사고기는 RAF 할파 비행장에서 이륙하였다. 사고기는 RAF 73 비행대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와 함께 훈련하던 중이었다. [2]오전 11시경, 할파 상공에서 마주친 두 비행기는 서로 무선통신을 주고받고 고조를 향해 비행하며 훈련을 시작하였다. 스핏파이어는 웰링턴과 비슷한 고도에서 세 번의 사격을 했으며, 조금 하강하여 4번째 공격을 하며 훈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3.2. 결말
그러나, 4~5000피트에서 사고기는 갑자기 동쪽으로 20° 각도로 하강하며 추락하였다. 사고기는 라바트의 주거 지역에 추락하였으며, 오전 11시 15분경 폭발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객 전원과 지상 인원 16명이 사망하였고[3] 지상 인원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3.3. 구조 작업
영국군, 해군, RAF 인원 등이 구조 및 수색 작업을 도왔으며 근처 민간인들도 구조 작업을 도왔다. 구조 작업 중 최소 10명의 부상자를 구조해 냈으며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또한 구조 도중 경찰관과 대원 1명이 떨어지는 석조물에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4. 사고 조사 및 웟인
4월 6일, 토지 측량부 대표가 현장을 방문하여 사고를 조사하였으며, Albert Camilleri 판사가 치안 조사를 담당하였다.추락 직전 항공기에서 연기가 났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화재의 증거가 없다는 사고조사 보고서와 모순이고, 탑승했던 승무원이 들판에 착륙 시도를 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고 직전 항공기가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아 진실일지는 알 수 없다.
사고 원인의 가장 큰 가설로는 유압유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누출되어 연기가 발생하였고, 그 연기로 조종 승무원들이 모두 기절하여 추락했다는 설이 있다.[4]
5. 사고 여파
사고의 여파로 11,000파운드[5]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고, 18채의 주택이 파괴되었으며 72가구가 주거지를 잃었다.6. 기타
- 이 사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몰타의 첫 항공사고였다.
- 사고 이후 영국의 데이비드 캠벨 부지사와 프레드릭 달림플-해밀턴 중장, 경찰청장과 몰타의 가톨릭 대주교 미키엘 곤지가 사고 현장을 방문하여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였고, 국회에서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7. 유사 사고
[1]
유압유로 인한 연기로 조종사들이 기절하여 추락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2]
스핏파이어가 웰링턴에게 가상 공격을 퍼부으면 웰링턴기는 회피 기동을 하는 훈련이었다.
[3]
이 중에는 어린이와 아기도 각각 1명씩 있었다.
[4]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이며, 조사에서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진실은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5]
1946년 기준이므로 현재로 따지면 약 40만~240만 파운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