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光クラブ事件전후 일본에서 발생한 사금융 관련 사건. 전후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거론되며 사건 관련자가 도쿄대학 학생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된 동시에 도쿄대생의 흑역사로 꼽히기도 한다.
2. 사건의 전개
1948년 9월 도쿄대에 재학 중이던 야마자키 아키츠구(山崎晃嗣)는 닛폰의과대학 학생인 친구 미키 센야와 함께 도쿄도 나카노구에 '히카리클럽'이라는 사금융 회사(대부업체)를 설립하게 된다. 사장 야마자키를 필두로 전무 미키, 야마자키와 같은 도쿄대생인 상무 A, 주오대학 재학생인 감사 B라는 조직 구성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광고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한편 여기저기서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당시 히카리클럽이 내세운 광고는 다음과 같았다.연중 무휴! 천하의 히카리클럽, 저희 회사는 정밀한 과학적 경제 기관이자 일본 유일의 금융주식회사입니다.
유휴 자금을 늘려드립니다, 월 1할 보증.
유휴 자금을 늘려드립니다, 월 1할 보증.
이런 광고를 내세워 상당한 고배당으로 거액의 투자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다시 최대 30% 가량의 높은 이자로 중소기업이나 상점 등에 빌려 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계속한 결과, 개업한 지 불과 4개월만인 1949년 1월경에는 자본금 400만엔, 사원 30명을 거느리는 규모로까지 발전해 나카노에서 긴자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로서는 대학생, 그것도 명문인 도쿄대 재학생이 사장이 되어 경영하는 사금융 업체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히카리클럽은 순식간에 금융업계의 화제로 급부상했고, 긴자로 이전한 후에도 월매출이 5000만엔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히카리클럽이었으나 당시 법정 금리를 훨씬 웃도는 수준의 고배당[1]으로 인해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결국 1949년 7월 4일에 야마자키 사장이 물가통제령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결과적으로 9월에 불기소처분되기는 했으나 사장이 체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의 신용이 추락하는 데는 충분했고, 야마자키의 체포를 기점으로 히카리클럽의 영업 실적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이 일제히 돈을 돌려달라며 들고 일어나기에 이르자 야마자키는 9월에 채권자 회의를 열고 총 3600만엔[2]의 10%에 해당하는 360만엔을 11월 25일에 변제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야마자키는 투자금 반환을 위해 회사의 명칭을 바꾸고 주식 공매를 시도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투자금을 반환할 수 없게 된 야마자키는 약속된 변제일 전날인 11월 24일 히카리클럽 본사 사무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청산가리로 음독자살하면서 27세로 생을 마감했다.
3. 기타
야마자키 아키츠구는 현재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엘리트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스케줄을 분 단위로 세세하게 짜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일견 편집광적으로도 보이는 습관은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계속되었다고 한다.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푸른 시대(青の時代)》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닛폰 테레비의 '더! 세계 교텐뉴스' 2006년 6월 28일자 긴급 특별편에서 재연 드라마로 다루어졌다. 이 재연극에서 야마자키 아키츠구 역을 연기한 배우는 하기와라 마사토. 여기에는 야마자키가 관계를 가졌던 무려 8명의 여성이 나오는데, 히카리 클럽 비서부터 기독교를 믿는 술집 여성까지 직업군도 다양하다. 여성 역할 중에서는 쿠리야마 치아키가 야마자키의 마지막 여자로 분했고, 일본 오와라이(한국으로는 코미디언) 중 지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얻던 미츠우라 야스코도 나왔다. 미츠우라는 후에 방송에서 "베드신이 있다"는 말에 뭐 그냥저냥 같은 오와리이 중 하나일 거고, 코미디 풍의 작품이라 내가 캐스팅 된거겠지... 하고 별 생각없이 촬영장에 갔다가 무려 잘생기고 멋진 하기와라 마사토가 있는 데다 진지하고 허무한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후지 테레비의 3부작 특선 드라마 《우리 집의 역사(わが家の歴史)》에서 미야자키 세이시라는 도쿄대 학생이 '태양그룹'이라는 회사를 차렸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야마자키 아키츠구와 히카리클럽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TV 아사히에서 1990년대에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오도로키 모모노키 20세기(驚きももの木20世紀)' 1996년 5월 3일자에서 '도쿄대생 금융도 히카리클럽 사건'이라는 제하에 이 사건을 다루었다. 여기서는 야마자키 아키츠구가 '하마자키 코지'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